포르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 / 성열휘 기자

포르쉐에게 카이엔은 단순한 SUV가 아니다. 2002년 첫 등장과 함께 '스포츠카 브랜드도 SUV를 만들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고, 이후 브랜드의 성장을 이끈 핵심 모델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포르쉐는 카이엔을 통해 또 한 번 변화를 선언한다. 이번에는 내연기관이 아닌 전동화다. 새롭게 선보인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은 엔진을 전기모터로 대체한 모델이 아니라, 포르쉐가 전기 SUV 시대에도 스포츠카의 주행 감각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보여주는 전략 모델이다.

직접 운전대를 잡은 곳은 용인 스피드웨이. 긴 메인 스트레이트와 고속 코너, 연속 와인딩 구간을 오가며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몸은 시트에 강하게 밀착됐고, 차는 거침없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하지만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폭발적인 출력이 아니었다. 2.6톤이 넘는 차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한 차체 제어와 스티어링 감각, 그리고 코너를 돌아나갈 때 느껴지는 안정감이다. 전기 SUV의 성능을 경험했다기보다, 포르쉐가 왜 여전히 '운전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브랜드인지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 / 성열휘 기자

외관은 기존 카이엔이 가진 강인한 SUV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한층 더 날렵하고 미래적인 방향으로 진화했다. 전기차 시대에 맞춰 디자인을 완전히 바꾸기보다, 포르쉐 특유의 비율과 스포츠카 감성을 살리면서 공기역학 효율을 극대화한 모습이다.

먼저 낮게 깔린 차체와 넓게 펼쳐진 전면부가 첫눈에 들어온다. 얇아진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는 이전 카이엔보다 더욱 날카로운 인상을 만들고, 낮은 보닛 라인과 볼륨감 넘치는 펜더는 대형 SUV임에도 스포츠카와 같은 긴장감을 전달한다.

범퍼 디자인 역시 단순히 멋을 위한 요소가 아니다. 공기 흐름을 고려한 설계가 적용됐으며, 차체 곳곳의 디테일은 고속 주행 안정성과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다듬어졌다.

측면부는 포르쉐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특유의 플라이 라인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차체가 더욱 낮고 길게 보이도록 완성했다. 프레임리스 도어와 매끄럽게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은 대형 SUV보다는 높이를 키운 스포츠 세단에 가까운 분위기를 전달한다.

후면부는 최신 포르쉐 디자인 언어가 반영됐다. 3D LED 라이트 바와 조명이 적용된 포르쉐 레터링은 전기차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준다. 복잡한 장식을 줄이고 간결한 면 처리와 빛의 요소를 활용해 미래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공기역학 성능이다.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의 공기저항계수(Cd)는 0.25로, 대형 SUV 세그먼트에서는 뛰어난 수준이다. 이를 위해 차체 하부를 거의 완전히 평평하게 설계하고, 에어 커튼과 액티브 쿨링 에어 플랩, 어댑티브 루프 스포일러 등 다양한 공력 기술을 적용했다. 여기에 액티브 에어로블레이드까지 더해 고속 주행 시 공기 흐름을 효율적으로 제어한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 / 성열휘 기자

실내는 최신 포르쉐 전기차가 추구하는 디지털 방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단순히 화면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첨단 기술과 운전자 중심의 조작 감각을 균형 있게 담아냈다.

운전석에서는 14.25인치 OLED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14.9인치 조수석 디스플레이까지 더하면 포르쉐 역사상 가장 넓은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경험할 수 있다.

곡선 형태의 플로우 디스플레이는 대시보드와 조화를 이루며 실내 디자인의 중심 역할을 한다. 스트리밍, 앱 통합, 개인화 프로필, 위젯 설정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며 사용 환경도 직관적으로 구성됐다.

그래픽 품질과 반응 속도 역시 뛰어나다. 내비게이션과 차량 설정, 주행 정보 등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어 실제 주행에서도 편리하다.

다만 포르쉐는 모든 기능을 터치 방식으로 바꾸지 않았다. 공조 장치와 오디오 기능은 물리 버튼을 유지해 운전 중에도 시선을 크게 옮기지 않고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앰비언트 라이트와 시트, 디스플레이, 사운드, 공조 시스템을 연동하는 무드 모드, 새로운 열선 및 마사지 기능 등을 통해 탑승자의 편의성도 높였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 / 성열휘 기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은 강력한 성능뿐만 아니라 실용성까지 고려한 전기 SUV다. 고성능 모델이지만 가족과 함께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공간과 편의성을 갖췄다.

내연기관 카이엔보다 길어진 휠베이스 덕분에 2열 공간은 더욱 여유로워졌다. 성인이 탑승해도 레그룸과 헤드룸이 충분하며, 실제 뒷좌석에 앉아보면 장거리 주행을 고려한 편안한 공간 구성이 느껴진다.

전동 조절식 리어 시트를 통해 탑승 공간과 적재 공간을 조절할 수 있으며, 뒷좌석 폴딩 시 최대 1588리터의 적재 공간을 확보한다. 여기에 90리터 프렁크까지 더해져 전기 SUV다운 활용성을 갖췄다.

주행거리와 충전 성능도 뛰어나다. 113kWh 배터리를 탑재해 최대 642km(WLTP 기준) 주행이 가능하며, 800V 전기 아키텍처 기반으로 최대 390~400kW급 DC 초급속 충전을 지원한다. 배터리 10%에서 80%까지 충전 시간은 약 16분이다.

포르쉐 최초의 무선 충전 기능과 최대 3.5톤 견인 능력, 원격 공조 시스템 등도 갖춰 일상과 레저 환경 모두를 고려했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 / 포르쉐코리아 제공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의 진가는 역시 서킷에서 드러났다.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직접 운전대를 잡고 가속과 코너링을 반복하자, 이 차가 단순히 출력만 높은 전기 SUV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메인 스트레이트 진입 전 런치 컨트롤을 활성화하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순간 몸이 시트 깊숙이 파묻히며 차체가 앞으로 강하게 튀어 나갔다. 전기모터 특유의 즉각적인 토크가 한 번에 전달되면서 시속이 빠르게 올라갔지만, 놀라운 것은 가속의 강도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차체의 안정감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2.5초. 최대 850kW(약 1156마력)에 달하는 오버부스트 출력은 숫자로 보는 것 이상의 강렬함을 전달한다. 하지만 운전자는 공포보다 자신감을 먼저 느끼게 된다. 차체가 노면을 단단하게 누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고출력 전기차에서 흔히 느껴지는 부담감이 적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2.6톤에 가까운 차체가 보여주는 움직임이다. 일반적인 대형 SUV라면 급가속 이후 차체의 무게감이나 관성이 느껴질 상황에서도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은 한층 가볍고 정교하게 반응했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 / 포르쉐코리아 제공

코너에 진입하자 또 다른 매력이 드러났다. 포르쉐 액티브 라이드, PASM,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은 차체 움직임을 놀라울 정도로 제어했다. 빠른 속도로 코너를 통과하는 상황에서도 롤은 최소화됐고, 스티어링 조작에 따라 차체가 즉각적으로 방향을 바꿨다.

특히 리어 액슬 스티어링은 서킷에서 효과가 더욱 뚜렷했다. 연속 코너 구간에서는 뒷바퀴가 차체를 자연스럽게 밀어주는 느낌이 들었고, 큰 차체가 마치 한 치수 작은 스포츠카처럼 움직였다. SUV를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민첩한 반응이다.

제동 성능 역시 기대 이상이다. 최대 600kW 회생제동 시스템은 강력한 감속 성능과 함께 자연스러운 페달 감각을 제공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순간 회생제동과 기계식 브레이크가 이질감 없이 연결됐고, 여러 차례 강한 제동을 반복한 뒤에도 페달 감각은 일정하게 유지됐다.

일상 주행에서는 제동 에너지의 97%를 회생제동으로 처리할 수 있어 효율성까지 확보했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 / 포르쉐코리아 제공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은 단순히 빠른 전기 SUV가 아니다. SUV의 공간 활용성과 전기차의 효율, 그리고 포르쉐 스포츠카의 주행 감각을 하나의 패키지로 완성했다.

특히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직접 경험한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은 출력보다 차체 제어 능력이 더 인상적이었다. 강력한 출력을 누구나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만든 정교한 차체 제어와 뛰어난 밸런스는 포르쉐가 전동화 시대에도 지키고자 하는 핵심 가치였다.

결국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은 전기차의 성능 한계를 끌어올린 모델이면서, 동시에 '운전의 즐거움'이라는 포르쉐의 철학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기준점이다.

판매 가격은 카이엔 일렉트릭 1억4230만원부터,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은 1억8960만원부터 시작한다. 국내는 올 하반기 출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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