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 역을 맡은 배우 이정재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본다. 그렇기에 그 속에 담긴 깊이와 고민은 종종 감독과 배우 만의 이야기로 남곤 한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배우 이정재는 '다만 악'으로 임하는 레이 역을 맡았다. 맹목적인 악을 추구하는 남자에 다가가는 배우 이정재의 고민의 깊이에 인터뷰를 통해 다가가 본다.
레이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해보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이정재)는 인남(황정민)이 자신의 형을 죽인 것에 분노하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는 인남의 자취를 지우며 인남의 발자취를 쫓는다. 돼지의 배 가르듯 인간의 배를 가르는 인물. 잔인하고, 냉혹한 '다만 악'으로 가득 찬 인물을 맡아, 평소 영화에 최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려 했던 이정재는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제가 제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제 의견을 이야기하면, 영화 캐릭터가 아니라 이정재가 나와버릴 수도 있잖아요. 그걸 차단하는 것이 저에게도 좋은 게 아닌가. 그래야 좀 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레이만큼은 제 상상력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영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 스타일리스트와 협업을 하자고 제안했고, 고맙게도 의상팀이 허락해주셔서 효과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영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스틸컷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레이로서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 명확했기 때문에 한 선택이었다.
"시작은 묘한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 묘함을 어떻게 비주얼적으로 풀어낼 것인가. 그게 숙제였던 거죠. 그런데 너무 새로운 것만 추구하면 과해지고 영화와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과하지 않으면서 묘한 캐릭터, 그게 숙제였죠. 이것을 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밖에 없었고요."
"심지어 핑크색 가발까지 써봤어요. 태국에 가기 전까지 핑크색 가발을 쓰고 있다가, 태국에서 핑크색 가발이 뚝 떨어지면서 머리에 커다란 화상 흉터가 보이면 어떨까. 그래서 가발도 여러 종류의 색도 준비했어요. 그러다가 문신이란 것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오갔죠. 다행히 문신이 더운 나라에서 땀에 안 지워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돼 문신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문신은 보통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잖아요. 레이는 어떤 의미를 담을까. 여기에 이런 모양을 하고 저기에 저런 모양을 할까. 과연 그게 영화에서 보일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의미를 알 수 없게 꽉 채우자고 결정했어요. 왕창 다 채우자."

영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스틸컷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는 쉽게 말하자면, '다만 악'을 맡고 있다. 레이의 힘이 떨어지는 순간, 영화의 힘도 떨어진다. 그러기 위해 레이는 섬뜩한 인물이어야 했다.
"레이를 처음 딱 봤을 때, 쟤는 왠지 죽을 때까지 쫓아갈 거 같아. 관객에게 그 믿음을 드리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외모적인 비주얼, 표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빛 그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해진 거죠."
"그런 측면에서 레이가 인남을 쫓는 표면적인 이유인, 형을 죽였다는 건 핑계일 뿐이에요. 사냥을 해야 하는 짐승, 그중에서도 맹수인 레이에게 너무나도 고맙게도 내 형을 죽인 사냥의 대상이 생긴 거죠. 사냥감을 얻고 희열을 느끼는 묘한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어요. 묘함을 잘 살린다면, 레이가 왜 저렇게까지 인남을 쫓는지에 대한 이유가 굳이 필요 없겠죠."
"제가 등장하는 장면이 형의 장례식장이잖아요. 레이가 인남을 쫓는데 '형의 복수'라는 지점은 사실 핑계라고 생각했어요. '이 인간이 정말 죽었나?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장례식장에 간 거죠.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표현을 의상으로 한 것 같아요. 검정 정장이 아닌 흰 코트를 입고 나오거든요."

영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스틸컷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그 외에도 흰색 아이템들이 곳곳에 보인다. 레이 역에 몰입한 듯, 인터뷰 당일에도 이정재는 환한 핑크색 셔츠에 흰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것 하나는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한 아이템이 흰 구두였어요. 이 흰 구두는 옷이 바뀌어도, 가져가야겠다. 콘티에 흐르는 피 위로 흰 구두가 딱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럼 흰 구두만 보면, 레이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 수 있게 아이템을 설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흰 구두에 맞춰 의상을 짜다 보니, 흰색 아이템들이 보인 것 같아요."

영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스틸컷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레이는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액션을 선보인다. 백정, 살인 기계, 이런 잔인한 단어들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배우 이정재는 그런 액션에서 중요한 것은 몸보다도 표정이라고 말한다.
"연기자로서 액션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작보다 표정인 것 같아요. 잠깐 지나가는 그 표정. 거기에서 더 캐릭터의 폭력성, 잔인함, 절실함 등이 표현되는 것 같아요. 그 짧은 순간의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하루 온종일 그 캐릭터에 기분, 기운을 느껴야 하는 기운을 유지하며 현장에서 있어야하는 거죠."
"인남을 잡아야겠다는 잔인성을 순간순간 보여줘야 어요. 영화상에서 그런 모습을 다 모아놓는다고 해도 아마 몇 초 안 될 거예요. 그런데 그 몇 초 때문에 몇 달을 그 기분을 유지하며 살아야 하는 거죠. 하지만, 그런 것을 해보는 것, 느껴보는 것, 그것이 연기자의 몫이고 재미있게 작업하는 이유 중 하나겠죠."

영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스틸컷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촬영 중 부상도 있었다. 이정재는 '빅매치'(2014) 오른쪽 깨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왼쪽 어깨까지 파열됐다. 통증이 있었고, 병원에 가서 MRI를 찍고 결과를 들었다. 하지만, 촬영을 멈출 수는 없었다.
"복도에서 인남과 마주하는 장면을 찍을 때, 통증이 심하게 왔어요. 태국 방콕에 있는 제일 큰 종합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어요. 그 결과가 수술을 해야 할 정도의 파열이었죠. 한국에 와서 또 병원 세 군데를 더 갔어요. 결과는 같았고요."
너무나 무덤덤한 말이 되려 취재진의 걱정을 샀다. "'오징어 게임' 까지 찍고 바로 해야 해요. 이쪽도 끊어져 봐서 알아요. '빅매치' 때 훈련하다가 끊어져 봤는데, 수술하면 9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해요. 그때도 '빅매치' 촬영 끝나고 수술했어요"라고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이정재다.

영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스틸컷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정재의 데뷔는 1993년이었다. 당시 27살의 이정재는 '공룡선생'으로 데뷔했고, 1년 후 영화 '젊은 남자'로 신인상을 받았으며, 또 1년 후 드라마 '모래시계'를 만나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데뷔 28년이 지난 지금도, 열정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매년 조금씩 더 느끼는 것 같은데요. 일할 때, 이렇게 표현할까, 저렇게 표현할까, 고민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는 거 같아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게 해주는 행운이 너무 감사하죠. 함께 일을 해보자고 제안 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하고요."

영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스틸컷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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