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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인공지능(AI) 세 가지를 꼽는다면 아마도 알파고, 챗GPT, 그리고 딥시크일 것이다. 이러한 모델의 초기 버전은 먼저 인간 데이터를 학습하고 이어서 강화학습과 같은 기법으로 튜닝하는 방식으로 탄생했다. 반면 알파고의 후속 버전인 알파고 제로나 딥시크의 모체인 딥시크 R1제로는 인간의 데이터를 활용하지 않는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해 추론 능력을 높인다. 추가로 거대 AI로부터 작은 모델을 학습하는 증류 기법(Distillation)을 사용하면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 AI는 끊임없이 새로운 구조, 새로운 학습 방식을 시도하며 세상 속으로 나오고 있다.
모두가 AI를 이야기하던 중,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CES 2025’ 연설에서 로봇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로봇 개발 플랫폼을 이야기한다. AI 적용 분야 중 로봇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도체 시장 수요 등 경제적인 관점에서 여러 해석을 할 수 있으나 중요한 점은 로봇을 통해 물리적 인공지능(Physical AI)이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AI 모델은 컴퓨터 속에서 인간의 지식을 학습하고 문제를 풀었다면, 물리적 AI는 세상 속에서 인간과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글로, 그림으로 인간의 지식을 배웠던 AI가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문이 열린 셈이다. 가정에서는 각 가족 구성원의 관점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산업 현장에서는 작업자와 유사한 경험을 통해 작업 능력을 향상시키며, 열린 공간 속에서는 자연을 지배하는 물리적 법칙을 이해해 나갈 것이다.
AI가 로봇을 통해 세상과 접속한다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를 통해 뇌와 접속을 꾀하고 있다. AI와 BCI 기술이 만나면 정신의학과 같은 분야에 적용될 수 있고, 뉴럴링크와 같이 인간의 의도를 빠르게 읽어내어 신체 활동이 불편한 분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 외에 어떤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있는 걸까.
최신 AI 기술을 탑재한 BCI는 현재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내가 하려는 행동과 같은 직접적 정보를 뇌에서 읽어내는 수준을 넘어서 우리의 기억과 추론을 이어주는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 담당하는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실세계에서 경험하는 사건들은 인과관계를 가진 연속 기억의 형태로 압축되는데, 이는 저장할 주소가 특정되는 컴퓨터 메모리와 달리 작업기억이라는 중앙통제(Executive control) 과정을 거쳐 뇌의 여러 곳에 저장되고,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추론한다.
여기에 상상력을 조금만 더해 BCI의 미래를 그려보자. 챗GPT나 딥시크가 다양한 언어를 번역하듯이, AI가 뇌의 작업기억 속 고급 정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한다면 어떨까. 인지할 새도 없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가는 생각들을 잡아내어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 준다면 나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최근 해외에서는 게임을 하는 동안 뇌의 중앙통제 기능과 관련된 정보를 일부 읽어내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으며,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연구재단에서는 실패 가능성이 높더라도 도전적인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한계 도전 연구를 지원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기억의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MOM: Unlocking Mystery of Memory)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BCI 기술을 통해 뇌의 중앙통제 과정에 접속할 수 있는 열쇠 하나쯤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AI, 로봇, BCI로 이어진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면 오늘의 AI는 로봇의 옷을 입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고, 내일의 AI는 BCI의 옷을 입고 인간의 생각 속으로 들어간다. 때로는 내가 이해 못할 추론능력을 뽐내는 AI가 부담스럽다면 내 머릿속 꼬인 생각들을 풀어 설명해 주는 AI는 어떤가.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실증해 보고 싶지 않은가. 그렇게 ‘나’를 생각하는 기분은 어떨까.
이상완 교수는 KAIST 신경과학-인공지능 융합연구센터장 및 뇌인지과학과·바이오및뇌공학과·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AI대학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KAIST 전기전자공학과에서 강화학습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및 캘리포니아공과대(Caltech)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구글 교수 연구상, IBM 학술상, KAIST 송암 미래석학 우수 연구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인공지능과 뇌는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있다.
- 이상완 KAIST 교수 sangwan@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