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행사에 노숙자가 온 것 같다” 제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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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대학가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동덕여대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기업들은 부스가 부서지는 수모를 겪었고, 경북대 AI 페스티벌에 참여한 기업들은 무관심만 가득한 빈 행사장을 지켜야 했다. 대학과 좋은 인재를 양성하고 발굴하며 실무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나선 기업들은 “찬밥 신세가 됐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 대학에 손 내민 기업들, 돌아온 건 폭력과 무관심
지난 12일 동덕여대(총장 김명애)에서 예정됐던 ‘2024 동덕 진로·취업 비교과 공동 박람회’는 학생들의 시위로 무산됐다. 박람회장 기물은 파손됐고 기업 소속으로 보이는 직원들은 박람회장 밖에서 서 있는 현장 사진이 일부 커뮤니티에 게재됐다. 여기서 발생한 피해액은 약 3억 원으로 추산된다. 지난 15일 동덕여대 측은 점거 농성 등에 따른 피해 규모를 24억 원 ~ 54억 원으로 추산해 공지했는데, 이 중 취업박람회 시설물 파손 비용 3억 원을 총학생회에 요구했다. 총학생회는 낼 수 없다고 답한 상황이다.
대학과 총학생회 입장과 별개로 해당 박람회에 참가한 기업들은 때아닌 피해를 겪어야 했다. 애써 설치한 부스가 파손되고 가져온 제작물이 파손되는 현장을 목격해야 했다. 책임 소재도 여전히 대학과 총학생회에서 다투는 중이다. 좋은 인재를 채용하고자 애써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박람회에 참여했지만, 돌아온 건 폭력뿐이었다.
지난 27일 경북대(총장 허영우)가 주최한 설명회에 참여한 기업들도 피해를 겪었다. 이번엔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의 현장이었다.
이날 경북대 인공지능혁신융합대학사업단(단장 정호영)은 27일부터 양일간 대학 글로벌플라자에서 AI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등이 공동 주관한 이번 행사는 경북대 AI 팩토리 산학플랫폼(이하 AICOSS)을 알리고 기업과 대학 간 산학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 첫날인 27일에는 참가기업 설명회와 전시가 진행됐다. 설명회에서는 김일경 경북대 산학교수가 AI 산학협력 플랫폼과 기업협력 방안을 주제로 발표한 후 기업들의 설명회가 이어졌다. 참여 업체는 마음AI, 펄스나인 등 10개 기업이었다. 전시장에선 아이스크림에듀, 티쓰리큐 등 10개 기업이 부스를 마련했고, 뉴튠, 이스트소프트 등 10개 기업은 체험존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 참여한 기업들은 그야말로 무관심의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고 토로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파리만 날렸다”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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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관계자 “노숙자가 온 것 같다” 경악
참여 기업들이 제보한 내용에 따르면, 전시 부스에서 상담이 이뤄진 경우는 극히 드물고 설명회장에 있던 사람들도 극히 적었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행사 관계자였다고 한다. 실제로 제보자들이 보낸 사진에선 행사장에 빈자리가 가득했고, 전시 부스엔 사람들이 없어 참여 기업 관계자들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나마 행사장에 있던 사람도 기업들의 참여한 취지와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한 제보자는 “와 발표장에 이런 노숙자분이”라는 문구와 함께한 사진을 보여줬다. 이 사진에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행사는 전혀 참가하지 않으면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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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실제로 노숙자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행사장에 사람이 적고 취지와 다르게 운영됐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대학이 제작한 홍보물에는 사전등록 후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 선착순 100명에게 매일 커피 상품권을 준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상품을 받기 위해 행사와 무관한 사람이 참여했다고 기업들이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진을 제보한 제보자와 무관한 다른 참여 기업 관계자는 “(행사에) 사람이 없어도 정말 없었다”면서 “사진의 진위(노숙자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이러한 의심이 나올 법했다”고 토로했다.
◇ 경북대 행사는 기업 비용 부담 없어, 오히려 세금 낭비 가능성 제기
참가 기업들은 이 행사에 비용을 내고 나오진 않았다고 밝혔다. 전시에 참여한 기업들은 인쇄 홍보물 정도만 자체 비용으로 제작하고, 나머지 부스 비용은 경북대 측의 지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해당 기업을 대학 자체 비용으로 쓰지 않고, 국비로 운영되는 사업비로 충당했을 가능성이 커서다.
한 기업 관계자는 “우리가 비용을 내지 않은 점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이 비용을 다 대학에서 내진 않았을 것이고 결국 사업비로 충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당 사업비는 모두 국민 세금인데 이렇게 실패한 행사에 세금을 낭비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비난했다.
행사에 참여한 한 기업 대표는 “이런 행사에 국가 세금과 사업비가 쓰이는 것을 봤을 때 올해 초 정부에서 추진한 연구개발(R&D) 비용 축소가 마냥 잘못됐다곤 할 순 없겠다”면서 “대학에서 기업과 학생들을 부르고 사업비를 이용해 이러한 행사를 할 것이었으면 더 신경을 써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대표는 “아무리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없고 대학의 요청으로 행사에 나왔지만, 주최 측 역량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며 실망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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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학 ‘협력’ 노렸지만, ‘갈등’의 장으로 변질
이번 행사는 경북대뿐 아니라 전남대, 성균관대, 전주대, 서울시립대, 서울과학기술대, 영지전문대 등이 참여한 AI 산학플랫폼을 홍보하고 산학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중 경북대는 산학협력 프로젝트에 특화해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산학 협력이 아닌 산학 갈등을 조성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행사를 주최한 정호영 인공지능혁신융합대학사업단장(인공지능학과장)은 행사에 앞서 “이번 행사를 통해 생성형 AI가 교육 현장과 기업체 간 연계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학생들이 구체적인 실무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경북대의 뜻깊은 행사이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이 행사는 이튿날을 맞이해 AI 콘퍼런스가 열리고 있다. 참여 기업들은 다행히 이날 행사에는 사람이 어제보다 많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한 기업 관계자는 “어제 사람이 적다는 기사가 나간 후 대학에서 사람과 학생들을 동원해서인지 사람이 많이 참여했다”면서 “하지만 실제로 AI에 관심이 높은 이들이 참여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참여 기업 대표는 “경북대가 본래 취지대로 행사를 운영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서 “오늘 온 참여자들도 정말 기업과 기술, AI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사실 기업들도 행사 취지인 AI 산학플랫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왔다”면서 “대체 행사 취지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 김동원 기자 thea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