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심형철의 실크로드 기행] #12 중세의 도시 허티앤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기사입력 2015.11.21 02:00
  • 허티앤(和田)은 신강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면적이 18만 9천㎢이고, 인구는 약 15만 명으로 대부분 웨이우얼족이다. 길에는 노새, 당나귀, 말들이 끄는 수레와 자동차가 뒤섞여 다닌다. 허티앤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곤륜산맥, 카라곤륜산맥에 가로막힌 도시이기 때문에 사막 횡단도로가 개통되기 이전까지는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지역이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가장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허티앤은 신강에서도 가장 이국적인 도시이다.

    현지인의 삶을 가장 이해하기 좋은 장소는 시장이다. 웨이우얼족은 시장을 ‘빠자’라고 한다. ‘빠자’라는 말은 ‘Bazzar’를 음차한 단어이다. 이곳을 다녀간 유럽인들은 허티앤의 시장을 ‘전형적인 중세의 시장’이라고 표현했는데 현재는 많이 현대화 되었다. 그것은 사막횡단도로가 개통된 후 각종 공산품의 유입이 증가하고 동시에 고대부터 유지되어 오던 허티앤의 수공업이 몰락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곳도 머지  않아 한족이 진출하게 될 것이고 전통적 재래시장의 모습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 허티앤 여인
    ▲ 허티앤 여인
    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국적 풍경은 얼굴을 가린 여인들과 모자를 쓴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빠따무뚜파’라고 하는 모자를 쓰는데, 사각형 모양으로 하단에는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챙이 없기 때문에 햇볕으로부터 얼굴을 가리는 용도는 아니다. 여자들은 꽃무늬로 장식된 짙은 색의 두건을 사용한다. 이곳의 웨이우얼족이 삼복더위에도 남자는 모자, 여자는 두건을 착용하는 것은 기후의 특성과 이슬람교의 교리, 그들의 전통 등이 융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심지어 한여름에도 남자들은 양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쓰기도 한다. 멋을 내는 여자들은 두건 위에 아주 앙증맞은 꽃모자를 쓰는데 마치 예쁜 밥그릇을 엎어 놓은 듯하다. 그들이 착용하는 모자는 모두 이곳의 농민들이 직접 손으로 만든다. 그래서 이곳의 웨이우얼족에게는 ‘모자에 수놓는 방법을 모르는 여자는 시집을 못 간다.’라는 말이 있다.

  • 수를 놓는 여인
    ▲ 수를 놓는 여인
    시장은 뭐니 뭐니 해도 먹을거리가 백미(白眉)이다. ‘먹을거리는 빠자에서 찾아라.’라는 말처럼 시장에는 정말 각종 음식이 향기를 뽐내고 있다. 웨이우얼족은 고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것도 아주 신선한 고기만을 즐겨 먹는다. 물론 자연환경 때문에 채소가 넉넉하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이 유목민족의 후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판대마다 아침에 잡은, 선홍색에 흰색이 알알이 박혀있는 양고기가 진열되어 있고 가죽만 벗겨낸 양들이 거꾸로 걸려 있기도 하다. 웨이우얼족은 양고기를 큼직하게 잘라 삶아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양고기를 삶은 물에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낭을 잘라 불려 먹는다.

  • 낭
    ▲ 낭
    그들은 구워먹는 방법에 있어 상당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양고기 꼬치와 양고기 만두 등은 물론 양이나 소까지도 통째로 구워 먹는다. 비둘기, 닭, 물고기도 모두 구워 먹는다. 그 중 가장 특별식은 달걀을 구워먹는 것인데, 타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이 달걀구이는 허티앤 빠자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이다. 달걀을 구울 때는 불의 세기와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달걀이 포탄처럼 터져버린다.

  • 양고기 손질
    ▲ 양고기 손질
    허티앤의 빠자를 보면 주민들의 생활양식도 엿볼 수 있다. 시장은 생활의 축소판이란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중요한 답사 지역이다. 웨이우얼족의 생활필수품인 양탄자 시장을 빼 놓을 수 없다. 손으로 직접 짠 양탄자는 아름다운 무늬를 자랑한다. 바닥에 까는 것부터 벽에 걸어 놓은 장식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양탄자가 있다. 양탄자는 연꽃을 변형한 무늬, 기하 무늬, 목단꽃 무늬 등을 화려하게 수놓아 생활필수품이라기보다는 예술 작품에 가깝다. 요즘은 기계로 짠 양탄자가 가격과 품질면에서 더 우수하기 때문에 수공제품이 얼마나 더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 양탄자
    ▲ 양탄자
    전통 복장을 파는 옷 가게에 들어서면 현란한 색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고대 허티앤 왕국의 전통 무늬인 아이터라이스이다. 검정, 노랑, 빨강 등 주로 원색을 이용하여 알록달록하게 짠 줄무늬를 아이터라이스 무늬라고 한다. 이 무늬 옷을 입은 소녀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색동저고리를 연상하게 한다. 지금도 웨이우얼족 농가에서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아이터라이스 무늬
    ▲ 아이터라이스 무늬
    빠자의 기능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만이 아니다.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지역 뉴스를 전하고 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들은 빠자에서 누가 아이를 낳았고, 누구네 가축이 새끼를 낳았고, 누가 아프다는 등의 지역 뉴스를 듣는다. 가까운 친지도, 오랜 친구도, 빠자에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점이 중세의 시장과 가장 흡사한 빠자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 칼
    ▲ 칼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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