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스파이어 ‘미나기’ 이미라 헤드셰프 “가족 모두 힐링하는 플레이케이션으로 만들 것"
국내 호텔 일식당 여성 헤드셰프 ‘극소수’… 편견의 주방에서 20년, 미나기를 이끌다
일식 주방은 유독 남성 중심적인 위계 문화가 강한 곳으로 꼽힌다.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 요리의 특성상 도제식 서열 구조가 깊이 뿌리내려 있고, 그 안에서 여성이 헤드셰프 자리에 오르는 경우는 국내외를 통틀어 극히 드물다. 그 희소한 자리 중 하나를 이미라 셰프가 차지하고 있다.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의 일식당 '미나기' 헤드셰프다. 테판야키로 시작해 스시, 텐푸라 오마카세까지 일식 전반을 섭렵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그 출발점에서 그녀는 "손이 따뜻하다"는 이유로 스시를 잡지 못하게 했던 주방의 현실과 마주했다.
2004년, 스물셋의 이미라는 밀레니엄 서울 힐튼 일식당 '겐지' 주방에 들어섰다. 첫 번째 벽은 기술이 아니라 몸에서 왔다. "여자는 손이 따뜻해서 스시 같은 날것을 다루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서 비롯된 속설이 실제 주방 관행으로 굳어져 있던 시절, 그렇게 테판야키 섹션으로 일식을 시작했다. "선배 셰프들이 서비스를 마치고 자리를 비우면 철판 청소를 했습니다. 판 닦는 것만 1년 넘게 했어요."
고객 앞에 처음 선 날, 맞은편에는 외국인 손님이 앉아 있었다. 몇 년 뒤 그 고객이 같은 자리에 다시 나타나 "처음보다 많이 늘었다"고 말했을 때, 그 한마디는 오래 남았다. 편견의 벽을 허문 것은 좋은 선배들이었다. 일식당 총괄이었던 구민술 셰프가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줬고, 스시와 텐푸라 오마카세까지 영역이 넓어졌다.
텐푸라 오마카세는 국내 호텔 최초의 시도였다. "여자 셰프가 일식에서 자리 잡기 힘들었던 시절에도 기회를 주신 분"이라고 이미라 셰프는 기억했다.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만난 박효남 셰프도 빼놓을 수 없다. "방송과 유튜브에서도 꾸준히 자기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후배들에게 오랜 시간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주시려는 것 같아 현업에서 일하는 저도 많은 용기를 얻습니다."
2022년, 밀레니엄 서울 힐튼이 19년의 영업을 마감했다. 힐튼에서 18년을 보낸 이미라 셰프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인스파이어 리조트 내에서 서울 시내 5성급 호텔 폐업을 경험해 본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겁니다." 말은 담담했지만 무게는 달랐다. 서울 가든호텔 스시 오마카세 '아스카'를 잠시 거친 뒤, 인스파이어 오프닝 전부터 합류해 '미나기'를 함께 만들었다. 호텔리어로서 오프닝과 클로징을 모두 겪은 이력은 업계에서도 드문 케이스다.
인스파이어에서는 김병은 총주방장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후배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하고 싶은 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십니다.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성장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계세요."
메뉴 구성의 기준도 그 과정에서 다듬어졌다. "인스파이어는 가족 고객과 다양한 경험을 중시합니다. 미나기도 처음부터 모든 연령대를 고려해 가격대를 다양하게 구성했습니다." 런치 3만 8천 원대부터 저녁 테판야키 코스 21만 원대까지, 선택의 폭을 넓혔다.
미나기(みなぎ)는 바다에서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뜻한다. "바닷가에 서서 바람을 맞으면 마음이 확 트이잖아요. 오셔서 편하게 식사하고 힐링하시라는 의미입니다." 이름 안에 이 공간이 지향하는 것이 담겨 있다.
미나기는 정통 일식을 표방하지 않는다. "전통만 고집하는 건 이미 맞지 않는 시대"라는 것이 이미라 셰프의 판단이다. 스시 카운터와 테판야키 카운터를 중심으로, 일식의 틀 안에서 동시대의 감각을 접목하는 컨템포러리 방식을 추구한다. 영종도 갯벌에서 직접 수급한 장어로 만드는 데리야키 구이는 이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그니처 메뉴다.
미나기가 자리한 인스파이어의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거리 '오로라'는 150m 길이의 미디어아트 공간이다. 테판야키 카운터에서 셰프의 요리를 지켜보는 고객에게 주방은 하나의 공연이 되고, 고개를 들면 미디어아트가 펼쳐진다. 이미라 셰프는 이를 인스파이어가 추구하는 '플레이케이션(Play+Vacation)'의 미식적 확장으로 설명한다. "지친 마음을 가지고 오셔도 됩니다. 맛있는 음식을 드시고 좋은 시간을 보내신 후, 새로운 영감과 경험을 가지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음식과 공간, 스토리가 결합된 공감각적 경험을 드리고 싶습니다."
노키즈존을 두지 않은 것도 플레이케이션의 연장선이다. 일반적인 스시 오마카세와 달리, 미나기는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5월 가정의 달에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저녁 코스와 키즈 메뉴를 별도로 구성하고,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당일 프로모션도 준비 중이다. "고객이 나가실 때 '오늘 잘 놀았다'는 기분이 드셨으면 합니다."
영종도라는 위치는 서비스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천에는 호텔에서 운영하는 테판야키 레스토랑이 없고, 서울에서도 서비스하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재방문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자주 찾아오는 단골에게는 농담처럼 "도장 찍어드릴게요"라고 하며 서비스를 챙긴다.
기억에 남는 손님은 항암치료 중이던 고객이다. 테판야키를 드시면서 "건강한 느낌이다"라고 말했을 때였다. "내가 하는 게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 딱 들었습니다." 최상의 식재료로 누가 드셔도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원칙을 놓지 않는 이유다. 고객 피드백은 그때그때 메모해두고 계속 고민한다.
팀의 절반이 20대다. 이미라 셰프는 스스로를 "조언이지만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주 1~2회 정기 미팅을 열고, 전달 사항을 나눈 뒤 마무리에는 팀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 내 생각에만 갇히지 않습니다. 요즘 핫한 곳, 새로운 트렌드 이야기를 그 시간에 얻어요."
매출과 방문객 수 등 업장 정보를 전 직원과 공유하는 것도 같은 철학에서 나왔다. 정보가 열려 있으면 직원 스스로 업장 전체를 보는 시각이 생기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다는 게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지난 연말에는 팀원끼리 '쓸데없는 선물 마니또'를 했다. 키 큰 직원에게 깔창, 남자 직원에게 긴 머리 가발을 선물하며 같이 웃었다.
구민술 셰프에게 배운 것도 팀 운영에 녹아 있다. 테판 섹션 직원이 오마카세를 경험하고, 주방 안에만 머물지 않고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갖도록 로테이션을 운영한다.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후배들은 덜 겪었으면 해서요." 멘토냐고 물으니 "너무 거창하다"며 웃었다.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겠다는 방향성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주방 밖의 영감은 꽃꽂이에서 온다. "요리에서도 색감이 중요한데, 꽃꽂이에는 높낮이와 색의 조합이 있습니다.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는 일이 의무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것이 될 때 진짜 성장이 온다고 강조한다. "아침에 눈 떴을 때 '회사 너무 가기 싫어'라고 느끼며 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즐기면서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저절로 발전이 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일식에서 전통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새로움을 시도하는 것이 인스파이어가 추구하는 방향이고, 이미라 셰프가 미나기에서 실현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요즘 셰프는 멀티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정 분야 기술만이 아니라, 고객과 소통하는 방법, 다양한 요리를 다루는 능력까지 필요합니다."
주방은 여전히 좁고 뜨겁지만, 이미라 셰프가 말하는 미나기는 넓고 열려 있다. 누구든 지친 마음으로 와도 되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