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자의 ‘괜찮아 떠나’] 달리기가 여행 목적이 된 시대, ‘2026 괌 코코 로드 레이스’ 완주기
- 키즈런 325명·하프마라톤 660명 역대 최다… 한국, 해외 참가국 중 1위
- 멸종위기 코코새 보호 기금 마련으로 시작된 대회, 21회째 국제 스포츠 이벤트로
세계 최대 스포츠 앱 스트라바(Strava)가 2025년 12월 발표한 연간 리포트에 따르면, 그해 180개국 1억 8,000만 명이 러닝 활동을 기록했고 하프마라톤과 풀마라톤 참가자 수는 각각 31%, 33% 증가했다. 같은 해 뉴욕시티 마라톤 완주자는 5만 9,226명으로 역대 최다를 경신했다.
한국도 이 흐름 위에 있다. 디지털 여행 플랫폼 아고다가 2025년 11월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러닝 인구는 이미 1천만 명을 넘어섰고 해외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도시의 숙소 검색량은 전년 대비 최대 115% 급증했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가 나란히 런트립 상품을 출시하며 시장 선점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달리기는 이제 여행의 목적이 됐다. 그리고 나도 뛰기로 했다. 괌에서 아들과 함께.
코코새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괌 코코 로드 레이스’
괌 코코 로드 레이스(Ko'ko' Road Race)는 2006년 시작됐다. 출발점은 경쟁이 아니라 보존이었다. 괌의 국조(國鳥)이자 멸종위기종인 코코새(괌 뜸부기)를 지키기 위한 인식 확산과 보호 기금 마련이 대회의 창립 취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괌에 유입된 갈색나무뱀으로 인해 토착 조류 상당수가 사라졌고, 코코새도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기준 현재 성체 개체 수는 1~49마리에 불과하다. 2010년부터 코코스 섬에 개체를 방사한 덕분에 현재 약 30~40마리가 야생에서 번식 중이지만, 보존 예산은 미국 전역에서 삭감되고 있고 관련 보조금도 승인이 지연되고 있다.
괌 농무부 생물학자 메건 볼드스테트는 "매달 자금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레이스 수익 일부는 지금도 인큐베이터 구입, 사육 철망, 먹이 확보 등 번식 프로그램에 쓰인다. 21회를 맞은 올해 대회에는 괌·한국·일본·대만·필리핀 등에서 총 1,250명이 참가했다. 절멸 위기의 새 한 마리를 살리자고 시작한 행사가, 이제는 역대 최다 규모의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됐다.
‘코코 키즈 펀런’에 참가한 수백 명의 아이들
괌은 오랫동안 가족 여행지로 사랑받아온 곳이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네 시간이면 닿고, 시차도 한 시간에 불과하다. 아이를 데리고 떠나기에 부담이 적은 거리다. 그런 괌에서, 아이가 외국인 또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출발선에 선다. 코코 키즈 펀런은 성인 레이스의 곁다리 행사가 아니다. 전날 하루를 온전히 아이들에게 내어주는 독립된 대회다. 연령별로 코스가 나뉘고, 완주 후에는 메달이 주어진다. 도쿄 마라톤처럼 세계 메이저 대회조차 키즈런은 보호자 동반 필수에 1km 내외 체험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괌 코코 키즈 펀런은 다르다. 아이가 혼자 출발선에 서고, 스스로 결승선을 통과한다. 이런 구조의 키즈런을 갖춘 해외 마라톤 대회는 많지 않다.
토요일 아침, 경기가 시작되는 이파오 비치 파크는 이미 달릴 준비가 된 아이들로 가득했다. 코코 키즈 펀런은 연령별로 세 구간으로 나뉜다. 만 4~6세는 0.6km, 만 7~9세는 1.6km, 만 10~12세는 3.3km. 만 11세인 아들은 가장 긴 구간에 배정됐다. 이날 등록 참가자는 괌·한국·일본·미국 등에서 325명. 세계 각지에서 온 아이들이 같은 출발선에 섰다.
오전 7시, 10~12세 부문 출발 신호가 울렸다. 코스는 비치 파크를 두 바퀴 도는 구간으로, 해변 쪽으로 뻗은 모래 길이 포함돼 있었다. 아들은 숨을 몰아쉬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메달을 목에 걸고 나서야 활짝 웃었다. 3.3킬로미터를 스스로 완주했다는 사실이 그 표정 위에 있었다.
이날 각 부문 1위는 달리기 실력만큼이나 화제였다. 10~12세 남자부에서는 리오 레예스(괌)가 9분 7초로 2년 연속 정상을 지켰고, 7~9세 남자부 1위는 레녹스 레예스(괌)가 차지했다. 형제가 각자의 연령대 남자부를 동시에 제패했다. 여자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10~12세 케이티 아지기레이(미국)와 4~6세 셀라 아지기레이(미국)가 나란히 1위에 올랐고, 프린스턴 아지기레이(미국)도 7~9세 남자부 2위를 기록하며 3남매가 모두 시상대에 섰다. 한국 선수의 활약도 있었다. 박서율이 7~9세 여자부 2위에 오르며 존재감을 알렸다.
레이스가 끝난 뒤에도 공원은 좀처럼 비워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메달을 목에 건 채 암벽등반 체험장 앞에 줄을 섰고, 공원을 순회하는 미니 기차에 몸을 실었으며, 트램펄린(일명 '방방') 위에서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발산했다. 달리기가 끝나도 축제는 계속됐다. 이파오 비치 파크의 토요일 오전은 그렇게 흘렀다.
괌 코코 로드 레이스를 위해 출발선에 서다
이튿날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생애 첫 하프마라톤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나선 투몬 거리는 아직 어두웠다.
레이스가 시작되는 GVB 본부 앞 출발선에는 이미 수백 명의 러너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어가 들렸고, 일본어도 들렸다.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차의과학대학교 스포츠의학과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차의과학대학교는 2022년 말 괌정부관광청과 의료·스포츠 관광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이번 대회에 스포츠의학과 팀을 파견했다.
부스에는 주로 한국인 참가자들이 있었다. 재학생이 무릎에 테이핑을 꼼꼼하게 해줬다.
"이번 마라톤 참가하세요?" 테이핑을 받으며 물었더니 "교수님들과 저희 재학생들도 대부분 참가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테이핑을 해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같은 출발선에 서는 아침이었다.
오전 5시 정각, 출발 신호가 울렸다. 코스는 투몬에서 남쪽으로 향한다. Pale San Vitores Road를 따라 내려가다 Chalan San Antonio를 지나 해안 간선도로 Marine Corps Drive(Route 1)로 진입한다.
타무닝을 거쳐 괌의 수도 하갓냐를 통과하고, 최종 반환점인 아산(Asan) 마을까지 이어지는 왕복 코스다. 코스 곳곳에 급수대가 마련됐고, 자원봉사자들이 물과 이온 음료를 건네며 러너들을 독려했다.
처음 5km는 흥분이 앞섰다. 10km를 넘어서면서 무릎이 말을 걸어왔다. 아산 반환점을 찍고 돌아서는 순간, 그제야 하프마라톤을 하고 있다는 실감이 왔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반갑지 않을 것 같았지만 오히려 반가웠다.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는 빗줄기였다. 하늘은 흐렸다가 다시 갰고, 햇살이 들 때마다 젖은 도로가 반짝였다. 지치기 시작할 때마다 급수대 자원봉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Go! Go! Go!" "You got this!" "Keep going!"
힐튼 언덕을 다시 올라 투몬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하늘 한쪽에 무지개가 선명하게 떴다. 앞뒤로 달리는 러너들의 발소리가 리듬처럼 들렸고, 이파오 비치 결승선이 그 아래로 보이기 시작했다.
공식 집계에서 이번 대회 한국 참가자 비중은 전체의 22.32%로 해외 참가국 중 1위였다. 일본(20.08%)을 앞선 수치다. 절대 인원으로는 280명으로, 현지인(448명) 다음으로 많았다. 특히 에키덴 부문에서 한국 팀들의 참가 비중이 두드러졌다. 가수 션과 배우 권하운을 포함한 '션 크루', 휴먼레이스·노룰즈·대구 러닝 크루 등 국내 주요 러닝 커뮤니티가 이름을 올렸다. 괌정부관광청 2026 스포츠 앰버서더 강소연도 현장에 함께했다. 코스 곳곳에서 한국어로 서로를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GVB 총괄 매니저 레진 비스코 리는 대회 전 기자회견에서 "4월은 관광 비수기임에도 코코 레이스는 이 시기 관광 산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글로벌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 대회는 특히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대회 방문객 직접 소비 추정액은 165만 달러(약 22억 원)를 넘었다.
2026 괌 코코 로드 레이스의 기록
올해 하프마라톤 660명 참가는 대회 역사상 최다 기록이다. 우승은 일본의 나카지마 부부가 남녀 모두 차지했다.
그 중에서도 히로키 나카지마는 13.1마일 코스 내내 아기 아오이(Aoi)를 유모차에 태우고 달려 결승선을 가족이 함께 통과했다. 기록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에키덴 릴레이는 릿쇼대학교(일본)가 정상에 올랐고, 일본 대학 팀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한국은 해외 참가국 중 가장 많은 280명이 출전했으며, 에키덴 부문에서 특히 두드러진 참가 비중을 보였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이파오 비치 앞에 잠시 섰다. 빗속을 달려온 탓에 온몸이 젖어 있었고, 결승 직전 하늘에 떴던 무지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하루 전, 메달을 목에 걸고 방방 위에서 다시 뛰어오르던 아들의 표정은 또렷이 남아 있었다. 코코 로드 레이스는 코코새를 지키기 위한 달리기로 시작됐다. 21년이 지난 지금, 그 출발선 위에 아이도, 어른도, 가족도 함께 선다. 2027년 4월, 우리는 다시 이 자리에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