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 그럴 수 있다"…주지훈이 그린 욕망의 얼굴 '클라이맥스'[인터뷰]
"처음 대본을 받고 '그럴 수 있다'라는 것을 생각했어요. 이렇게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속이 시원했죠. 이 작품을 통해 스트레이트하게 느끼는 감정을 풀어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죠."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ENA 사옥 대회의실에서 ENA 월화드라마 '클라이맥스'(극본, 연출 이지원) 종영을 앞두고 있는 배우 주지훈과 만났다. '클라이맥스'는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에 서기 위해 권력의 카르텔에 뛰어든 검사 방태섭과 그를 둘러싼 이들의 치열한 생존극.
주지훈은 정상을 향해 질주하는 검사 '방태섭'을 연기했다. 종영까지 얼마 남지 않은 소감을 묻자 주지훈은 "드라마가 공개되면 늘 기분이 좋다"라며 "주변에서도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연락이 많이 오고, 화제성도 괜찮은 것 같다"라고 답했다.
드라마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묻자 주지훈은 "열심히는 찍었지만, 늘 만족할 수는 없죠"라고 솔직히 답했다. 그는 "촬영하면서 재미도 있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원래 19세였던 작품이 여러 이유로 15세로 수정이 됐는데 기본적인 설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19세일 때 말없이 설명할 수 있는 장면들에 대한 것을 다 덜어내다 보니까 그걸 연기로 잘 표현해야 했는데, 어떻게 하면 작위적이지 않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던 작품이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지원 감독은 주지훈을 캐스팅한 이유로 "작품을 구상할 당시 욕망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배우들 중 가장 욕망을 담고 있는 얼굴이 누구일까 생각했을 때 (주지훈이) 떠올랐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작품에서는 방태섭의 욕망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자 "시선의 차이인 것 같다"라며 "전사를 다 보여드릴 수가 없다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이 친구가 어떤 선택을 하는 과정이 굉장히 직설적이라고 느꼈고, 그런 점이 재미있었다"라고 답했다.
그는 "검사로서 사직서를 던지고 나가는 장면 같은 경우,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지 않나"라며 "실제로는 하지 못하는 행동을 대신해주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작품"이라고 짚었다.
이지원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묻자 "현장에서 풀이를 많이 하는 타입이라 사실 이런 질문에 답할 게 별로 없다. 한두 시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대본을 두고 스몰토크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서로 '아' 하면 '어'가 나오는 호흡을 만들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연기 접근에 대해서는 "기술적인 방식도 고민을 많이 했다. 같은 상황을 다른 시선으로 보여주거나, 인물의 내면을 카메라에 어떻게 담아낼지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하지원은 감독의 디테일한 요구가 많아서 고생했다는 말을 꺼냈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누나가 되게 순수하고 선한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그렇게 선한 사람이 극단적으로 표독스러운 연기를 하려고 해도 자신이 다 버려지지가 않는데, 저는 사실 사람은 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라 다른 것 같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도 그냥 받아들이고, 감정을 잘 수용하는 것 같다.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 존재하니까"라고 설명했다.
하지원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묻자 "아주 좋은 선배님"이라며 주지훈은 "누나가 정말 어떤 것을 받아들일 때 섬세하고 조심스럽다. 저는 일단 해보고 아니면 다시 하는 타입이라 상대방 입장에서는 급진적일수 도 있다. 그렇게 스타일이 다른데 누나는 자기의 공간을 잘 지킨다. 타인이 신경 쓰일 수도 있는데, '나는 내 거 할게 너희는 즐겁게 저희의 집중 방식을 찾아' 같은 어떤 선배로서의 배려가 있어서 되게 좋았어요"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극 중 추상아(하지원)와 방태섭의 관계에 대해서는 "사랑이죠.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 사랑이 20대 초반의 풋풋한 감정이라기보다는 어른의 사랑인 것 같다. 그 안에 아까 말한 '그럴 수 있다'도 포함된다"라고 말했다.
"양가적인 감정이 존재하고, 트로피처럼 자신의 이득을 위해 만났지만, 어쨌든 마음도 주고 그렇게 살다 보니 분명 정이 들었을거다"라며 주지훈은 "상아가 쇼를 하고 그럴 때도 걱정이 되어서 찾아간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대한 염려도 있겠지만, 같이 삶을 나눈 사람이다 보니까 나쁜 놈이라도 신경이 쓰였을 거 같다. 화를 내고 비아냥대는 것 자체도 질투하는 마음이었고, 걱정이 됐을 것 같다. 오직 비즈니스면 왜 그렇게 했겠어요."
마냥 사랑이라기엔 가장 가까워야 할 침실에서조차 의심하고, 상대방을 도청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외로워 보였다는 말에 주지훈은 "외로움을 선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초기 설정부터가 상가 가진 치부를 모두 알고 시작된다"라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세상을 보는 시선에서 내가 주인공이잖아요. 이 친구는 직업이 검사인데, 내가 얘의 치부를 알고 비겁하게 굴고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다 보니까 상대방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밝혔다.
이어 "저 사람도 나 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쟤도 분명 뭐가 있겠지' 불안하고, 결국 외로울 수밖에 없죠. 치졸한 짓을 하고 있으니까 부부라는 가장 가까운 사이인데도 못 믿고,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도 있어요. 결국 믿지 못하게 된 출처는 자신인데, 인정하기 싫죠. 그러니까 외로워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전했다.
사실 두 사람의 관계부터가 비정상적으로 시작된 만큼, 기이할 수밖에 없다. 주지훈은 "그래서 안타까운 게 저는 방태섭이 완전히 악인은 아닌 것 같아요. 완전히 악인이면 그렇게 협박해서 결혼을 한 다음에 가스라이팅을 하고 그랬을 텐데, 제가 느낀 것은 보상을 나누려는 그런 모습이다"라며 "어쩔 수 없다는 명분 하에 나쁜 짓을 하는데 이게 계속 가슴에 걸리는 거죠. 얻을 게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만, 이제 그 뒤의 감정이 악몽처럼 찾아오는 거죠"라고 방태섭을 해석했다.
선악이 공존하는 역할인 만큼, 어떻게 연기하려고 했는지 묻자 주지훈은 "제가 사실 개인적인 캐릭터나 그런 거에서 재미를 찾는 스타일이 아니다. 전체적인 것이 어떻게 구성되고 그걸 풀이하다 보면 연기가 저절로 나온다.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 내 감정이 여기서 이걸 하고 싶다고 하는 식이면 안되니까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임을 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제가 일부러 캐릭터를 공부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미니멈-맥시멈은 잡히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주지훈은 연기를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며 "사회 안에서 저는 좋은 사람이고 매너가 있는 사람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욕구를 눌러야 한다. 그런 것들을 극이라는 형태를 통해 시원하게 풀어내니까 그거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간접경험을 겪으며 스스로도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며 "역할이 진짜는 아니지만, 저는 그걸 실제로 행했잖아요. 그걸 어디까지 느껴야 하는지 완전히 가자로 생각해야 되는지 그런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T' 성향 덕분에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며 "예를 들어 누군가를 찌르는 연기를 했는데, 가짜지만 소품을 쓴다. 다칠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을 이기고 그 일을 했는데, 누군가를 해하려는 마음이 남아서 불쾌하기는 하죠. 그래서 최대한 깊게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어쨌든 일을 계속해야 하니까 잔 찌꺼기의 후폭풍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려고 한다"라고 전했다.
2006년 드라마 '궁'으로 데뷔한 이후 어느덧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주지훈은 "어떻게 다행히 여기까지 왔다는 마음이다. 제 마음대로 되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잘 만들었다고 흥행하는 것도, 못 만들었다고 실패하는 것도 아닌 그런 일이다. 하지만 제가 사랑을 못 받으면 기본적인 선택권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는데, 열심히 한 것과 별개로 운이 좋게 여기까지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요즘의 낙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황을 잘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혼자 있으면 외롭다. 그걸 어렸을 때는 심심하다고 주변에 연락을 했다면 지금은 '심심하네' 하고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작은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감이 생겼다. 대신 도파민이 없어서 양날의 검이죠. 또 제가 좋아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요즘에는 엄마들 꽃 사진을 찍는 것이 정말 공감된다. '지훈아 날이 좋다', '꽃이 폈어요' 이런 문자가 오는데, 그런 무해한 것이 좋은 것 같다"라고 답했다.
방태섭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삶이다. 주지훈은 "욕망하지 않으려고 한다. 큰 기쁨도 없지만, 큰 슬픔도 없는 것 같다.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살기에 나쁘지 않고 어쨌든 저는 평온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다. 멀미가 심해져서"라며 평온한 일상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