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반느'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정확히 처음이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다만, 처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었을 때, 소란했던 그 마음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밑줄을 치지 않은 곳보다 밑줄은 친 부분이 더 많았던 책이었다. 그런 박민규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영화 '파반느'다.

'파반느'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 사람은 각자의 20대를 절뚝절뚝 걸어가고 있다. 자신의 과거를 무리한 쾌활함으로 품어버린 요한(변요한), 그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아 위태로운 경록(문상민), 그리고 사람의 시선 속에 숨어버린 미정(고아성)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상처받고, 서로로 인해 나아가고, 멈추고, 다시 일어선다.

'파반느'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위한 헌사처럼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달라진 자신만의 결을 고수한다. 소설에는 아름다움과 추함, 부와 가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의 면을 비틀어 보여주지만, 영화에서는 굳건하다. '사랑'이다. "결국 영화는 사랑 영화지"라는 요한의 말처럼 말이다.

영화 '파반느'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파반느'에서 가장 부각되는 이미지는 '빛'이다. 세 사람은 서로에게 '빛'이다. 혼자 가만히 있을 때는 어둡기만 했던 공간은 누군가의 발걸음으로 '탁' 들어오는 전구의 필라멘트처럼 빛으로 가득 찬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환하게 들어오는 길, 녹음 진 길 위를 걷는 두 사람을 비추는 태양, 춤추는 경록의 모습에 쏟아지는 달빛. 요한의 세상에 경록과 미정이, 경록의 세상에 요한과 미정이, 미정의 세상에 경록과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주점 '호프(HOPE)' 안에서 환하게 불 켜진 어항 안에 있는 세 마리의 물고기처럼, 세 사람은 서로의 세상이 되어준다.

이종필 감독은 화면과 내레이션의 어긋난 타이밍으로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서로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두 사람은 만나서 말을 쏟아내기보다 먼저 내레이션으로 마음을 풀어낸다. 마치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잠시 멈춰서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걸음이 느린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기다려주는 인디언의 배려처럼 사랑하는 이를 향해 먼저 내달리는 마음을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파반느'라는 제목답게 라디오를 타고 흐르는 클래식 음악, LP판을 타고 경록과 미정의 마음을 틀어낸 것 같은 70년대 가요 등 다양한 음악, 소설 속 공간을 생생하게 옮겨낸 미술, 그리고 흘러간 시간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장 아름답게 붙잡아 둔 이종필 감독식 연출은 세 사람의 마음에 불이 켜지는 순간을 또렷하게 대변한다.

영화 '파반느'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요한으로 변신한 배우 변요한의 모습은 과거 '들개', '소셜포비아' 등 독립영화에서 보여준 유려한 감정 완급으로 반가움을 더한다. 요한의 말을 이렇게도 생생하게 날뛰는 언어로 만든 것은 '변요한'이 '요한' 그 자체였기에 가능했다. 요한이 드럼 치는 것 역시 '변요한'이 실제로 드럼 연주를 즐기기에 하게 됐다. 여기에 문상민의 아름다운 몸짓과, 고아성의 유려한 변화까지 '파반느'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파반느'는 작품 속 미정의 설명에 의하면 "왈츠처럼 춤을 출 때 쓰는 곡을 말하는 클래식 용어인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곡인데, 제가 좋아하는 곡"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왈츠는 혼자 추는 춤이 아니다. 그렇게 이들은 청춘은 서로의 불을 켜고 함께 추는 춤을 춘다. 상처도 누군가 밴드를 붙여주면 그 자체로 들여다보게 되는 '사랑'임을 '파반느'는 말한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됐다. 

영화 '파반느'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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