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졌고 일어섰다"…'휴민트' 박정민 [인터뷰②]
* [인터뷰①]에서 영화 '휴민트' 속 멜로를 보여준 박정민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인터뷰②]에서는 '휴민트' 현장에 임했던 배우 박정민을 조명합니다.
출판사 '무제'의 유튜브 채널에서 배우 박정민은 신간 '재미의 조건'을 발간한 류승완 감독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영화 '휴민트'의 이야기를 하는 데 많은 지분을 할애하게 됐다. 그 대화 속에서 귀를 기울이게 했던 이야기는 박정민이 현장에서 "손하고 발하고 같이 나간" 어떤 하루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제는 꽤 많은 작품 속에서, 대중에게 사랑받는 연기를 해낸 그가 '여전히' 현장에서 두려움을 보인다는 것이 아득하게 들렸다.
영화 '휴민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만난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어지는 사건을 네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작품이다. 그 속에서 박정민이 맡은 박건은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을 감시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사랑하는 여인 채선화(신세경)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다. 뜨거운 멜로와 차가운 액션 모두를 그는 소화한다. 그런 박정민에 대해 류승완 감독은 "자신이 도달해야 하는 지점에 최대한 도달하기 위해서 자신을 확 다 버려버리고 가는 것들이 감독에게는 믿음을 주니까, 더 밀어붙일 수 있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더 궁금해진다. 배우 박정민은 현장에 어떻게 자리해있었을까.
Q. '휴민트'라는 작품은 류승완 감독의 표현처럼 "박정민의 새로운 얼굴"을 만나게 하는 작품이다. 어떤 점에 가장 매료됐을까.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식이 직진이다. 긴박하게 직진하는 이야기를 류승완 감독님이 어떻게 만들어내실지 궁금했다. 서사가 마음에 들었고, 그 후 인물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놀랐다. '나한테 왜 이렇게 좋은 역할을. 뭘 보고 주셨지?'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박건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이야기가 계속 전복되는 작품이라고 생각됐다. 이야기의 변곡점마다 박건의 심리적 변화가 자리했다. 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주셨지."
Q. 외적으로도 준비한 지점이 있었을 것 같다.
"러닝을 위주로 운동했다. 살을 빼기보다, 요즘 말로 여백을 정리한다고나 할까. 살은 빠져있는데, 러닝하고 갈 때와 안 하고 갈 때 얼굴의 형태가 다르더라. 저도 준비했지만, 촬영 전 촬영 감독님과 조명 감독님께서 부르셔서, 제 얼굴을 360도로 다 찍으셨다. 이 조명이 들어올 때 박정민 얼굴, 고개를 숙였을 때 빛이 떨어지는 모습 등 다양한 데이터를 가지고 '이 각도에서 예쁘다', '이 각도에서 남자답다'라며 콘티를 그릴 때부터 제 얼굴을 중심에 두고 준비해 주셨다. 오죽하시면 그러셨겠냐. 가장 멋있는 앵글을 써주려고 노력하셨다."
Q. 그래서인지 첫 등장부터 인상 깊었다. 다트를 던지며 빛에 얼굴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는데, 대한민국 5대 등장 장면으로 넣어야 할 것 같다.
"그 장면은 제가 준비할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등장할 때 표정, 대사 톤 정도만 생각하고, 현장에서 모두 만들어가야 했다. 다만 '그 장면을 다들 엄청 열심히 찍겠구나'라는 예감은 있었다. 어영부영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고, 어둠에서 훅 나오는 등장이라, 다들 힘줘서 찍으려고 하겠다는 예감만 하고 현장에 갔다. 현장이 너무 좁아서 제가 잘못하면 다들 고생시킬 것 같아서 부담이 있었다. 병을 받아서 다시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 당연히 CG(컴퓨터 그래픽)로 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받아서 다시 던지라고 하시더라. '이게 가능한가?' 생각했는데, 두 번인가, 세 번 만에 기적적으로 해냈다. '다들 무슨 일이지?' 생각하며 마음이 풀리고 끝까지 무사히 촬영할 수 있었다. (웃음)"
Q. 류승완 감독과 함께한 전작 '밀수'에서 장도리도 어떤 의미로 새로운 박정민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휴민트'에서 박건으로 또 다른 새로운 박정민의 얼굴을 보았을 때,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이 있었을까.
"'밀수' 무대인사를 함께할 때 '액션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셔서 '좋게 생각하죠'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휴민트'라는 영화를 할 건데, 생각이 있냐'라고 물어보셔서 '생각있다'라고, 그 정도 사전 이야기를 나눴다. 굉장히 남자답고, 액션도 많고, 그렇기에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 체육관에 다닌 적도 있다. 그리고 이후에 박건에 대해 '멋있었으면 좋겠다, 굉장히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야생의 어떤 인물이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영화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자아도취'하기 마련이다. '잘생겼다, 못생겼다'의 영역이 아닌, 이 인물과 나 자신을 굉장히 붙여놓게 되는 거다. 왜냐하면, 나 외에는 이 인물을 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휴민트'는 두려웠다. 특히, 완성된 '휴민트'를 보기 전, 박건과 박정민의 거리감이 너무나 멀어져 '내 눈에 오그라들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다행히 그렇게까지 기시감이 들지 않아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색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류승완 감독님께서 부르시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좋아하는 감독님, 제작사이고 인연도 깊다. 제가 20대 때, 아무것도 아닐 때도 중요한 역할을 주셨고, 믿어주셨다. 그런 누군가에게 마음이 조금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제작사 외유내강과 한 작품 중 실망스러운 결과물은 없었다."
Q. 박건은 표현하기보다 침묵하는 인물이었다. 대신 현장의 빛과 카메라가 그의 감정을 대신 표현하는 느낌이었다. 류승완 감독과 긴밀한 대화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참고한 작품이나, 기댄 이야기가 있었나.
"박건은 갈등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계속 갈등하기 시작하는 인물 같다. 단 한 번도 자기 신념과 개인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았던 사람이, 갈등을 시작할 때 느끼는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무언가를 선택하다가 결국 비극을 맞게 되는 인물이라고. 참고한 영화는 엄청 많다. 류승완 감독님께서 다른 배우에게도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USB에 영화를 담아주신다. DVD를 빌려주실 때도 있고. 그 안에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라는 작품도 있었고, 홍콩 영화들 위주로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영화를 보면서 더 혼란스러워졌다. 저는 주윤발이 아닌데. (웃음)"
Q. 출판사 '무제' 유튜브 채널에서 언급한 "팔과 다리가 동시에 나간 날"은 어떤 촬영 장면이었나.
"러시아 보스와 2대 1로 싸우는 액션 장면이었다. 액션이 힘든 건 아니었는데, 우리를 가두는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그 공간을 처음 가본 것도 아니었다. '하얼빈' 때 조우진과 술집 장면으로 촬영했던 곳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왜 멘털이 나갔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유도 모르는 채, 2시간 정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걸 하고 있었다. 근래 가장 저 자신에게 실망했던 순간이었다. 아예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감독님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지 않나. 어려운 액션 장면도 아니고, 풀려나오는 장면이었다. 그게 잘 안돼 애를 먹었다.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못하고 혼자 숙소로 온 기억이 있다."
Q. 그런 무너진 날은 어떻게 일어서나.
"'얘가 무너졌구나'라는 것을 누군가 인지만 해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 되면, 저도 계속 고꾸라지는 걸 느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행히 류승완 감독님께서 '얘가 평소답지 않은데'라는 걸 느끼셔서 빨리 머리끄덩이 잡고 일으켜주셨다. 그런데 늘 그런 사람이 있는 건 아니다. 또, 늘 촬영이 순조롭지만도 않다. 보통의 촬영은 늘 고비 고비가 있다. 그때 혼자 헤쳐나갈 수도 있고, 동료가 도와줄 때도 있고, 감독님이 도와줄 때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 인지를 해줘야 가능한 것 같다."
Q. '휴민트'는 박정민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류승완 감독님께서도 '좀 더 고전적인 색의 첩보 액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굉장히 잘 구현이 됐고, 촬영, 조명 감독님께서 꽤 애를 많이 써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초반, 모니터할 때부터 '류승완 감독님 영화 중에 이런 영화 못 본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감정적인 액션도 들어가 있어서, 그런 면에서 저는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저는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성을 목표로 하는 인물을 연기해 본 것 같다. 만족까지는 모르겠고, 그냥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제 눈에는 막 엄청 이상해 보이지는 않아서 '그럼 됐다'라고 그냥 혼자 위로하고 있습니다. (웃음)"
아직도 ‘휴민트’에서 선명하게 남는 장면들이 있다. 표현을 삼킨 박건의 감정은 카메라가 대신해 흔들리며 그 마음을 이야기해 줬고, 뜨겁고도 차갑게 번지던 불빛이 그의 온도를 짐작하게 했다. 스크린 속 그의 얼굴 한 프레임 한 프레임에는 분명 어떤 체온이 있었다. 무너졌던 날에도, 다시 일어섰던 순간에도. 어쩌면 그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 안에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는 건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다시 걸어 나올 박정민의 다음 얼굴을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