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권 환자 데이터에 편중돼 있던 췌장암 유전체 연구의 한계를 보완할 국내 대규모 분석 결과가 공개됐다. 한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유전체 분석을 통해 예후와 치료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가 제시되면서, 향후 췌장암 정밀 의료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황진혁 교수팀은 한국인 췌장암 환자 237명을 대상으로 한 유전체 분석 연구에서 국내 첫 대규모 데이터를 확보하고, 예후 및 항암 치료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를 제시했다고 23일 밝혔다.

(왼쪽부터)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황진혁, 정광록, 이종찬 교수, 임상유전체의학과·정밀의료센터 김진호 교수 /사진 제공=분당서울대병원

췌장암은 유전자 변이가 다양해 환자별 치료 반응의 편차가 크고, 절반 이상이 수술이 어려운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반영한 정밀의료적 접근이 중요하지만, 기존 유전체 연구는 서구권 환자와 수술 환자 위주로 이뤄져 실제 임상 현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수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병기의 환자를 포함했다. 내시경 초음파를 활용한 세침흡인검사(EUS-FNA)로 확보한 조직에서 DNA를 추출해 유전체 분석을 진행했다. 분석에는 암 발생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는 전장엑솜시퀀싱(WES)과, 암세포에서 유전자 발현 양상을 살펴보는 전장전사체분석(WTS)이 활용됐다. 여기에 병기, 전이 양상, 치료 여부, 생존 기간 등 임상 정보를 결합해 유전체 특성과 임상 경과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간 전이가 있는 췌장암 환자군에서는 ▲TP53 변이 증가 ▲염색체 불안정성 증가 ▲돌연변이 KRAS의 과도한 복사 증폭 등의 특징이 관찰됐다. 특히 돌연변이 KRAS가 비정상적으로 증폭된 환자군은 간 전이 빈도가 84.6%에 달했고, 생존 기간도 6.8개월로 예후가 매우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양상은 기존 서구권 환자 대상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연구팀은 항암 치료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두 가지 지표도 함께 검증했다. 먼저 암세포에 축적된 돌연변이 수를 의미하는 종양변이부담(TMB)의 경우, 폴피리녹스(FOLFIRINOX) 항암요법을 받은 환자 중 TMB가 높은 그룹이 낮은 그룹보다 생존 기간이 평균 5.6개월 길었다(18.4개월 vs 12.8개월).

또 다른 지표는 상동재조합결핍(HRD)이다. HRD는 암세포가 손상된 DNA를 제대로 복구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이러한 특성을 가진 암은 백금 계열 항암제에 대한 반응이 상대적으로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HRD 관련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군은 치료 반응률 75.0%, 생존 기간 32.7개월로, HRD 음성 그룹(34.3%, 12.4개월)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수치를 보였다.

아울러 기존 유전자 검사에서는 HRD 변이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유전체 흉터 분석에서는 HRD 양성으로 분류된 환자가 전체의 20.5%를 차지했다. 이들 역시 백금 계열 항암제에 대해 66.7%의 치료 반응률을 보여, 두 가지 분석을 병행할 경우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자군을 더욱 폭넓게 선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황진혁 교수는 “유전체 특성은 인종에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에 외국 데이터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치료 효과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며 “이번 연구는 한국인 환자에게 최적화된 정밀 의료 접근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이공분야기초연구사업 및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암 분야 국제학술지 ‘Cancer Letters’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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