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잇는 맛, 세월이 빚은 경기도 노포 맛집 6곳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사라지는 시대다. 화려하게 오픈한 새 가게가 어느새 사라지고, 익숙했던 간판이 업종까지 바뀌는 건 비일비재하다. 단골 가게들도 대형 프랜차이즈에 밀려 고전하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 년을 묵묵히 버텨온 곳들이 있다. 대를 이어가며 가업을 지켜온 노포들이다.
70년을 한자리에서 지켜온 파주 덕성원, 40년 넘게 수원의 아침을 여는 호남순대, 3대째 손맛을 이어가는 안산 이조칼국수까지, 경기도 곳곳에는 시간이 빚은 맛을 간직한 노포들이 여전히 손님을 맞고 있다.
1989년부터 100여 종 빵 만드는 '김포 쉐프부랑제'
'쉐프부랑제'는 아침 8시면 어김없이 문을 연다. 오븐에서 잘 익은 빵이 나오고 한쪽에서는 부지런히 반죽을 치댄다. 고소한 빵 냄새가 하루를 깨우는 시간이다. 대표 이병재 씨는 전북 고창 출신으로 군산 이성당, 마산 코아양과 등을 거치며 제빵 기술을 쌓았다.
1989년 서울 양재동에 첫 빵집을 열었고, 2002년 김포 사우동으로 이전해 쉐프부랑제를 열었다. 현재 만드는 빵은 100여 종. 수제 단팥소로 만든 '쌀단팥빵', 피칸 가득한 '엘리게이터', 크림치즈 듬뿍 넣은 '당근크림치즈파운드'가 인기다. 제과·제빵 명인인 대표와 두 아들이 함께 반죽을 만진다. 이곳의 빵에는 시간의 맛이 담겨있다.
새벽 4시부터 영업하는 '수원 호남순대'
수원 팔달문 근처 지동시장 안 순대·곱창타운에서 '호남순대'는 시장의 터줏대감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니 40년이 넘는 시간이다. 처음 순대만 팔다가 순댓국을 추가했고, 지금은 순대곱창볶음이 대세 메뉴다.
새벽 4시부터 문을 여는 호남순대는 수원의 아침을 연다. 24시간 우려낸 사골 육수로 끓인 순대국밥은 오로지 돼지뼈만 사용해 잡내 없이 국물이 진하다. 순대곱창볶음은 순대와 곱창에 부추, 깻잎, 대파, 양배추, 당면을 넣어 식사와 술안주로 모두 좋다. 변하지 않는 방식으로 음식을 내놓는 이곳에는 세월이 흘러도 다시 찾게 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70년 한자리 지킨 '파주 덕성원', 4대째 가업
경의중앙선 금촌역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금촌통일시장 북쪽에 중화요리 집 '덕성원'이 있다. '정성을 담아내는 곳'이라는 의미다. 1954년 문을 열었으니 70여 년 전이다.
벽면에는 1960년대 촬영한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짐자전거 안장 위에 앉거나 엄마 손을 잡고 서 있는 아이는 현재 대표 이덕강 씨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이 대표는 3대 대표이고 현재는 아들이 주방을 맡아 4대째 가업을 이어간다. 오래도록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해산물은 냉동을 쓰지 않고 채소는 늘 싱싱한 것만 고집한다. 시간이 지나도 맛을 대하는 태도만은 변하지 않았다.
삼색면으로 35년 지킨 '안산 이조칼국수'
이조칼국수는 안산 맛집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35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동네 식탁을 채워왔다. 흑미 찰현미, 콩가루, 부추를 각각 섞은 삼색면은 모양도 예쁘고 소화도 잘된다. 해산물 육수는 담백하면서 감칠맛이 살아 있고, 조개류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주 3회 이상 공수해 신선함을 유지한다.
칼국수를 주문하면 먼저 보리밥이 나온다. 고추장과 무생채를 더해 비비면 식욕을 돋운다. 팥칼국수와 팥죽도 인기 메뉴다. 칼국수와 찰떡궁합인 김치는 별도 판매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3대째 이어오는 모녀의 전통 김치, 정직한 재료와 손맛으로 쌓아온 시간이 가득하다.
예약제 한옥 일식당 '양평 사각하늘'
북한강을 끼고 문호리에서 푯대봉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좁은 마을길이 이어진다. 언덕길 500여 미터를 오르면 고즈넉한 한옥 건물이 나온다. 일식 스키야끼 전문점 '사각하늘'이다. 간판이 없어 지나치기 쉽지만 일부러 숨겨둔 듯한 분위기를 간직했다. 이 한옥을 지은 사람은 일본인 건축가다. 일본인 남편은 한옥의 매력에 빠져 이곳을 지었고, 한국인 아내는 다도와 가이세키를 공부했다. 두 사람의 취향을 녹여 1998년 사각하늘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요리는 스키야끼 한 가지다. 철판에 채소를 볶다가 육수를 붓고 얇게 썬 소고기를 넣어 날달걀에 찍어 먹는다. 별채 다실에서는 말차 체험도 가능하다. 다다미 방은 조명 없이 창호지 너머 자연광과 촛불에만 의지한다. 식사와 말차 체험 모두 100% 예약제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더욱 조용하고 천천히 흐른다.
우연이 만든 메뉴, '이천 장흥회관'
이천 '장흥회관'은 1982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영업한다. 이름 때문에 전남 장흥이 고향일 거라는 오해를 받지만 실제로는 무안이다. 창업주는 사업 실패 후 보따리 장사를 하다 식당을 인수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간판을 새로 달 여유가 없어 이전 식당 간판을 그대로 쓴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전골요리 전문식당인 이곳의 대표메뉴는 낙곱전골이다. 낙지와 곱창이 어우러진 국물의 깊은 맛이 일품이다. 또 다른 대표메뉴 차낙곱전골은 2대 운영자가 우연히 개발했다. 친구들과 낙곱전골을 끓이다 재료가 모자라 차돌박이를 넣은 게 시작이었다. 예상보다 좋은 맛에 정식메뉴로 개발했고, 지금은 차낙곱전골을 찾는 손님이 더 많다. 어쩔 수 없는 선택에서 시작된 가게 이름부터 우연한 재료 선택으로 완성된 메뉴까지. 장흥회관의 전골 속에는 한 가족의 지난 선택이 함께 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