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AI, 전장을 재편하다
챗GPT 출시 3년 만에 인공지능(AI)이 일상이 됐다. 우리의 일상뿐 아니라 경제산업 구조와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느낀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일상의 잡다한 일부터 일터에서 해온 중요한 일마저도 AI가 인간을 넘어섰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진다. 적어도 인간의 가치 중에서 최상위로 꼽혀왔던 노동력의 고유성과 존엄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을 대치하고도 남는 AI 기계와 인간이 사투를 벌이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물론 경쟁은 상대가 있어야 성립되는데, 사활을 건 경쟁 레이스로 느끼는 건 AI가 아니라 오롯이 인간이기에 이를 경쟁으로 규정하기도 애매하하다. 그래도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기계를 인간의 적이자 생계를 뺏는 경쟁상대로 인식해 막연히 기계를 파괴하려 했던 러다이트 운동이 이제 디지털 버전으로 재현되는 듯하다. 인간 역사의 최고 하이라이트이곤 했던 전쟁도 당연히 인간 대신, 인간과 함께 싸우거나 AI의 몫이 커질 수밖에 없다.
AI가 전장의 양상도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 있다. 금세기 들어 이미 경험했던 새로운 혁신기술의 등장 정도로 일반화하기 어려울 정도의 완전한 전면적 전환이다. 이는 AI가 가진 기술적 특성이 이전의 군사적 목적의 과학기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AI 등장 이전인 20세기 초 현대 과학기술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상당한 분야의 첨단과학기술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패권국을 중심으로 전장에서의 군사적 목적과 활용을 위해 퀀텀 점프식으로 발전했다. 세기 초부터 베일을 벗기 시작했던 핵과학이 단시간 내에 가장 먼저 원자폭탄 제조에 활용되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발전하였고, 역시 동일한 과학기술이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목으로 원자력 발전과 의료 및 농생물 분야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가공할 핵무기 경쟁기에서 벗어난 이후에 과학기술의 활용처가 군사 분야에서 민수 분야로 흐르는 양상은 더 뚜렷해졌다. 군사용 감시정찰용 센서와 지휘통제통신시스템, 그리고 정밀유도무기 등 다양한 전장 무기체계와 관련 기반체계를 개발하는 과정 자체가 당시의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 과정이기도 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인터넷과 GPS, 컴퓨터시스템, 각종 센서와 전자제품 등 군용에서 처음 개발이 시작된 기술적 성과들이 민수 시장에서 상용 제품화해 일상의 문명의 이기로 자리 잡았다. 이를 스핀오프라고 말한다.
이 당시 군사 과학기술은 원폭개발과 같이 막대한 국민의 세금을 들여 비취인가를 받은 과학기술자들이 보안 구역에서의 비밀 프로젝트를 통해 발전했으며, 그에 따라 국가, 특히 미국은 그 기술을 자국의 지식재산권이자 패권을 유지해주는 안보자산인 국가 핵심기술로 철저히 통제할 수 있었고, 이는 다시 미국을 세계 최고 과학기술 초강대국이자 군사 패권국 지위를 보장해주는 핵심 키로 작동했다.
그러나 곧 군용 목적보다는 상업적 성공을 목표로 하는 첨단기술 혁신체계의 구조가 공고화되기 시작했다. 정보통신기술 혁명으로 지칭되는 2천 년 초반부터 성장한 빅테크 창업자들은 전쟁보다는 민수 소비시장에서 천문학적 자산가로서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산업기술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아이폰으로 상징되는 벤처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투자가 경제산업계 혁신의 동력이었으며, 이러한 민수 분야 소프트웨어 중심의 디지털 현대문명을 기반으로 AI와 자율화, 반도체 및 첨단바이오 등 소위 첨단 신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첨단 신기술 기반이 되는 학술지식은 이전의 군사과학기술과 달리 소수 패권국이 비밀리에 가둬둘 수도, 통제할 수도 없었으며, 이를 전수하는 학위과정과 학술 성과물이 대부분 일반에 공개되고 공유되는 생태계 시스템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AI 기술의 출현과 전면적인 등장을 기점으로 과학기술의 전이 방향과 양상이 역전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과거의 핵을 비롯한 대다수 무기체계 관련 지식과 같이 소수 패권국에 의해 비밀리에 통제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대부분 민수 영역에서 발전되어 전세계적으로 공유되고 공개된 AI 기술과 산업이 군수산업에 진입하면서 전장의 승패를 가르는 치트키로 대우받게 된 것이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혜택은 중국에 돌아갔다. 10억이 넘는 인구에서 뽑힌 똑똑한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미국과 유럽의 대학에서 AI 등 과학기술 분야 학위를 마치고 귀국해서 본국에 STEM(과학기술공학 및 수학) 분야의 산학연 생태계를 일궜으며, 철저한 사회주의 통제시스템은 데이터 기반 AI 국가시스템을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도 공고히 구축했다.
첨단 군사과학기술이 민수 분야로 전이되고 파급되는 이전 양상과는 정반대로 민수 분야 중심으로 성장한 AI 등 신기술이 전장과 군사무기에 적용되고 융합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군사적 파괴력과 결정력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를 스핀 온이라고 지칭한다.
매우 빠른 속도로 자국의 거대 AI 생태계를 정착시켜 가는 중국이 2차대전 이래 지속되어 온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제1 적성국으로 변모해 갔다. 1957년의 스푸트니크호 발사 충격 이래 미국으로서 가장 큰 국가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을 압도하는 AI로 무장한 중국에게 만년 패권국의 지위를 넘겨줄지도 모르는 최대의 안보위협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첨단과학기술 발전 메커니즘의 변화를 배경으로 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은 AI를 위시한 첨단 신기술을 전장과 국방 영역에 최대한 신속하게 적용하여 전력화하는 ‘획득체계’의 근본적 혁신을 핵심으로 하는 ‘3차 상쇄전략’을 천명하고 꾸준하게 국방 AI 전략을 최상의 국가안보 전략으로 삼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AI 무기화를 지속해 오고 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은 미국뿐 아니라 주요국을 넘어, 거의 국방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있다. 모두의 AI 프로젝트, 100조 원 규모의 AI 펀드 조성 등의 AI 국가전략, AI 기반 첨단과학기술 강군 육성의 국방안보전략 등 국가와 전 부처의 공통 정책과 전략이 AI로 도배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중국처럼 세계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얻을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민간 AI 생태계의 활성화를 기반으로, 그 혁신 동력을 국방 분야로 효과적으로 전환하는 ‘스핀온’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의 국방력을 확보하는 대한민국 현실에 맞는 AI 국방전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