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핍박받은 '감독 피카츄'…관객이 지켜줬다" [인터뷰]
영화 '윗집 사람들'은 하정우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 앞서 개봉한 영화 '롤러코스터', '허삼관', '로비'는 흥행적인 면으로만 놓고 볼 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그 성적표는 '감독 하정우'를 단단하게 했다. 하정우는 '윗집 사람들'에서 자기 생각만을 고수하지 않았다. 일단, 든든한 원작 영화가 있었고, 이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배우 공효진, 이하늬, 김동욱부터 시작해 희극인 엄지윤, 곽범, 이창호 등의 도움을 받았다. 두 팔 벌려 도움을 청했고,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윗집 사람들'은 어쩌면 '감독 하정우'였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작품인지도 모른다. 이는 아랫집 부부 정아(공효진)는 윗집의 부부 관계 소리에 고통받으면서도 자신의 인테리어 공사 소음을 참아준 것에 감사 인사를 전하려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하지만 정아의 남편 현수(김동욱)은 그 자리가 썩 내키지 않는다. 윗집 부부 수경(이하늬)과 김선생(하정우)는 대화 중 색다른 이야기를 꺼내고, 이에 네 사람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한 장소에서 개성 강한 네 사람의 말맛으로 흘러가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예기치 못하게 툭하는 건드림에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그 과정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하정우의 메시지가 있다.
Q.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로비'에 이어 '윗집 사람들'까지, 올해 두 편의 연출작으로 관객과 만나게 됐다.
"개봉 시기는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이것도 운명이려니 생각한다. 네 번째 연출작이니, 나아져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그렇게 경험하고, 깨져봤으면 조금이라도 발전을 이루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 아닌가 싶다. 명확한 발전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과정에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된 것 같다."
Q. 전작은 흥행적인 면에서만 놓고 볼 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그래서 '하정우식 유머'에 더 고민하게 된 지점도 있을 것 같다.
"늘 의심하고 점검한다. '윗집 사람들'에서는 특히 리딩을 정말 많이 했다. 리딩 배우를 따로 캐스팅할 정도였다. 아침 8시부터 일주일에 5일씩, 리딩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후 주연 배우들과 리딩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다시 진행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재 개그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미디적인 부분에서 조언받았다. 실제 코미디언 엄지윤, 곽범, 이창호 님 등과 만나서 이야기도 많이 했다.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닌, 확장해서 함께 고민했다. 10대가 많이 쓰는 말도 조사했다. 그것을 어떤 곳에 대입하면 재미있을까를 고민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예요'라고 하는 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문학 작품의 글들처럼, 한 줄도 허투루 쓰게 하는 대사가 없게 하자고 생각하며 고민했다."
Q. 스페인 영화 '센티멘탈'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이 감독 하정우에게 어떻게 닿았기에 리메이크를 결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살면서 예기치 못한 부분에서 깨닫게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멍하니 보다가 '왜 이 사람 때문에 위로가 되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아마도 윗집 부부와의 저녁 시간은 굳어지고 차가워지는 아랫집 부부에게 그런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로비'에서 '세상은 모든 게 다 우연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는데,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연히 툭 건드려진 하나가, 화합되게 하고 어우러지게 하는 고리가 되는 과정 자체가 너무 흥미로운 것 같다. 앞서 '윗집 사람들'을 소개하는 단어가 '섹스 코미디'라고 되어있는데, 숨겨진 저의 비장의 카드는 사실 이 작품은 관계 회복의 드라마에 있다. 그 드라마가 숨겨진 관람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Q. 원작은 중심이 되는 화자가 아랫집 남편이었는데, '윗집 사람들'의 중심이 되는 화자는 아내 정아(공효진)으로 바뀌었다.
"처음 '센티멘탈'을 리메이크하기로 하고, 이것을 누구의 눈으로 바라볼까 생각할 때 '여자의 눈으로 바라봐야 재밌겠다' 싶었다. 저는 고민도 없이 '공효진'이해야 이것을 일반 관객이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효진이 연기 패턴이 늘 다르다. 말의 패턴이 일정하지 않아서 예측할 수 없는 야생적인 화술이다. 그런데 그게 상황 속에서 극사실주의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윗집 부부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할 때, 그 말에 당황하는 공효진과 즉각적으로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김동욱이 '윗집 사람들'을 재미있게 보게 할 키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어떤 말을 해도 공효진이라는 쿠션을 통해 공감대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Q. '윗집 사람들'은 작품 전체에 자막이 들어가 있다. 자막의 사용은 대사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동시에, 말하는 타이밍보다 미리 뒷부분을 알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그 선택을 한 이유가 뭘까.
"'롤러코스터', '허삼관', 그리고 '로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지점이 '대사가 안 들린다.', '끝까지 갔어야 하는 거 아니야?'였다. 그 두 가지 반응이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자막을 전체에 다 넣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관람등급이 어떻게 나오든 상관 안 하고 '끝까지 가겠다'라는 것이 처음 이 작품을 시작할 때 마음이었다. 거침없이 표현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선행되니 웃긴 부분을 놓칠 수도 있는데, 저는 그걸 놓치더라도, 이 말들이 쌓여서 만들어내는 마지막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Q. 그 말들이 쌓여서 만들어낸 마무리 중 '감독 피카츄' 자막도 있었다.
"저는 '피카츄'에서 모든 사람이 웃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하지만 잔재미는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상한 건, 현장에서 정말 아무도 안 웃었다. 쉼 없이 23회차 촬영이 이어지는 동안, 연기하는 데 몰입해 있었다. 심지어 (이)하늬는 나중에 '우리 영화가 웃긴 영화였어?'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만큼 웃기기 위한 것에만 포인트를 두고 임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피카츄는 터질 텐데'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공효진, 이하늬는 '피카츄가 안 웃기다, 자르자'라고 했지만,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블라인드 시사회를 하는데 얼음장 같은 사람들이 '피카츄'에서 웃으시더라. 그래서 더더욱 '피카츄는 살려야겠다'라고 다시 마음을 먹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다. 투자 제작사에서도 '안된다'라고 하셔서, 부산국제영화제 때 한 상영관에서만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 빵 터졌다. 그때의 관객분들 덕분에 '피카츄'를 지켜낼 수 있었다. 대신 '피카츄'에서 '하정우'로 바꿔 달라고 하셨다. 끝까지 핍박받았지만, 결국 지켜냈다. (웃음)"
Q. 챕터를 드러내는 삽화와 인테리어 속 그림의 사용도 인상 깊다. 더불어 음악 역시 작품과 착 붙어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었다.
"각 챕터의 삽화는 미술감독님이 그리셨다. 레퍼런스가 될만한 그림들을 보여드렸고, 그걸 바탕으로 직접 작업해 주셨다. 마치 107분이라는 영화 안에 짧은 5편의 드라마를 본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인 작품은 제 작품이다. 철저하게 제작비 절감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럴싸한 작가님의 작품을 놓고 싶었는데 예산과 관련돼 미술감독님께서 주문하신 대로 그렸다. 음악과 관련해서는 달파란 음악감독님과 함께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꼭 프랑스 가수 Zaz의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를 넣고 싶었다. 투자사와 거래를 했다. 3회차를 줄이고, 제 출연료를 깎는 대신 이 곡을 사주시겠다고 하셨다. 어금니 꽉 깨물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래서 콘티도 그 음악에 맞춰서 짰다. 다른 음악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Q. 세 편의 작품에 이은 영화 '윗집 사람들'은 감독 하정우'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욕심을 많이 부리지 말자고 깨달았다.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내가 뭘 이렇게 많이 보여주려고 조급했지?', '뭔가를 확인받고 싶었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윗집 사람들'을 찍은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연달아 찍었기에 무언가를 깨닫고 반영하고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나고 나니, '제가 욕심을 내려놓은 작품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차기작에 대한 고민도 궁금하다.
"감독으로서는 유럽 쪽에서 찾고 있다. 배우로서는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을 촬영 중이다. 임필성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