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S 리인벤트 2025] 에스컬레이터 옆 미끄럼틀, 데이터독이 남긴 것(르포)
7초 만에 도착, ‘속도와 통합’ 핵심 가치 미끄럼틀로 구현
멀티클라우드 통합 모니터링에 데이터독 선택하는 이유
리인벤트 시그니처 이벤트, 행사 끝에도 등장해 각인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연례 행사 ‘리인벤트 2025’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시안 엑스포의 홀 입구. 개발자와 클라우드 엔지니어들이 엑스포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에스컬레이터 사이 공간에 보라색 입구에서 시작하는 ‘미끄럼틀’이 설치돼 있었다. 입구에는 데이터독(Datadog)이라는 로고가 적혀 있었다.
진짜 타도 되냐고 한 참석자가 스태프에게 물었다. 물론이라며, 더 빠르다고 스태프가 웃으며 답했다. 주저하던 사람이 미끄럼틀에 올랐다. 약 7초 만에 1층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환호성이 터졌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미끄럼틀을 바라봤다.
기자도 미끄럼틀에 올랐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아빠로서 미끄럼틀은 익숙한 존재였다. 그런데 데이터독의 미끄럼틀, 생각보다 가팔랐다. 속도가 붙으면서 순간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빠르다. 정말 빠르다. 에스컬레이터로 천천히 내려가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추월했다. 1층에 도착하자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번 AWS 리인벤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클라우드 모니터링 업체 데이터독은 왜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연례 행사에 미끄럼틀을 설치했을까. 단순한 재미를 위한 이벤트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메시지가 숨어있을까.
◇ ‘가장 빠른 경로’를 보여주는 법
미끄럼틀 옆에는 작은 안내판이 있었다. 미끄럼틀을 타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면 매일 보즈(Bose) 스피커를 추첨으로 준다는 내용이었다. 해시태그는 #reInventWithDatadog와 #AWSreinvent였다. 하루 종일 수백 명이 미끄럼틀을 탔고, 사진을 찍고,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데이터독의 얀빙 리(Yanbing Li)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지난해 리인벤트에서 “고객들은 복잡한 클라우드 환경에서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싶어하며,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데이터독의 핵심 가치는 명확하다. ‘속도’와 ‘통합’이다. 복잡한 시스템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과정을 최대한 빠르게 만드는 것이다.
미끄럼틀은 이 메시지를 물리적으로 구현했다. 에스컬레이터는 안전하고 편하지만 느리다. 전통적인 방식이다. 미끄럼틀은 빠르고 직접적이다. 조금 아찔하지만 확실히 더 효율적이다. 에스컬레이터로 30초 걸릴 거리를 7초 만에 주파한다. 계단보다도 빠르고 편리하다. 가장 빠른 인사이트 경로라는 데이터독의 슬로건이 저절로 떠올랐다.
리인벤트의 마지막 밤을 장식하는 파티 ‘리플레이(re:Play)’에서도 데이터독의 미끄럼틀은 빛난다. 라스베이거스 페스티벌 그라운드에 모인 수만 명의 참석자들은 무대 한쪽에 설치된 또다른 미끄럼틀로 향했다. 이번엔 더 크고 화려했다. 에어바운스 형태의 미끄럼틀의 경사는 더 가팔랐다. 사람들은 다시 줄을 섰다. 얼굴엔 흥분과 기대가 가득했다. 데이터독은 행사 시작과 끝, 두 번의 강렬한 기억을 참석자들에게 남겼다.
◇ AWS 홈구장에 선 독립 벤더의 전략
리인벤트 기간 데이터독 부스를 찾았다. 엑스포 홀 중앙 쪽의 큰 부스였다. 한 엔지니어가 자신들은 “AWS만 모니터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애저(Azure), 구글클라우드(GCP), 온프레미스(on-premise) 환경까지 통합해서 본다는 것이다. “요즘 한 회사가 한 클라우드만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는 데이터독의 위치가 드러난다. AWS는 클라우드워치(CloudWatch), 엑스레이(X-Ray) 같은 자체 모니터링 도구를 갖고 있다. 데이터독은 AWS와 협력하는 동시에 경쟁한다. 하지만 머스크(Maersk), 캐시앱(Cash App),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 같은 AWS 주요 고객들이 데이터독을 함께 사용한다.
데이터독은 AWS 서비스 100개 이상과 통합을 제공한다. 이번 리인벤트에서 AWS가 발표한 신규 인공지능(AI) 서비스들도 빠르게 지원 목록에 추가했다. 아마존 베드록의 AI 모델 성능부터 세이지메이커의 학습 과정, 트레이니움 칩의 활용도 등도 모니터링할 수 있다.
데이터독의 전략은 명확하다. AWS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한다. AWS를 더 잘 쓰게 해준다는 메시지다.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로 포지셔닝한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더 빠르고, 더 통합적이고, 더 전문적이라는 차별점을 분명히 한다.
리 CPO는 지난해 행사에서 “자신들의 전문성은 코드 개발 단계부터 프로덕션 배포, 보안까지 전체를 아우르며, 이게 AWS의 전략적 파트너인 이유”라고 말했다.
◇ 경험으로 각인시키는 브랜드
미끄럼틀은 사실 데이터독의 AWS 리인벤트 시그니처 이벤트다. 2022년에도 미끄럼틀이 있었고, 지난해 역시 존재했다. 매년 참석자들은 데이터독 미끄럼틀 탔냐고 서로 묻는다. 소셜미디어에는 수백 개의 미끄럼틀 사진이 올라온다. 데이터독은 추상적인 B2B(기업 간 거래) 소프트웨어를 구체적인 경험으로 바꿨다.
리인벤트는 AWS의 홈구장이다. AWS가 신제품을 발표하고, 파트너사들이 자사 솔루션을 홍보한다. 수많은 업체가 부스를 차리고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한다. 이 와중에 데이터독은 물리적 존재감을 확보했다. 엑스포 홀에 들어오는 많은 사람이 미끄럼틀을 봤다. 이들 중 일부는 미끄럼틀을 직접 탔다. 타지 않은 사람도 다른 사람이 타는 걸 봤다.
이벤트 마케팅 전문 매체 이벤트 마케터는 데이터독의 미끄럼틀을 리인벤트 2025에서 기억에 남는 11개 액티베이션 중 하나로 선정했다. 단순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브랜드 메시지와 경험이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빅테크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체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포지셔닝하고, 어떻게 브랜드를 각인시킬지도 중요하다. 데이터독의 미끄럼틀은 그 해답 중 하나를 보여준다.
거대 플랫폼의 홈구장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중요한 건 고객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 자사의 핵심 가치와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는 공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데이터독의 미끄럼틀을 떠올렸다. 에스컬레이터와 미끄럼틀 사이에서 선택하는 순간, 이미 데이터독의 메시지는 전달된 것이다. 더 빠른 길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데이터독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