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S 리인벤트 2025] AI로 만드는 개인 맞춤 향수, AWS의 실험실(르포)
5분 대화가 향수로, 라스베이거스 ‘프래그런스 랩’ 현장
노바 소닉·프로·캔버스·릴… 4개 AI 모델의 협업
초개인화 시대, K-뷰티도 주목해야 할 신호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 호텔 전시장 한쪽에 향기가 맴도는 부스가 있었다. ‘프래그런스 랩(Fragrance Lab)’이란 부스였다. 참가자들은 키오스크 앞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향수병과 조향 도구들이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조향사로 보이는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AWS 리인벤트 2025’에서 체험한 이 전시는 단순한 제품 홍보 부스가 아니었다. 인공지능(AI)과 대화하면 그 자리에서 나만의 향수를 만들어 주는 체험형 프로젝트였다. 스크린 앞에 앉은 참가자 한 명이 헤드셋을 쓰고 AI가 제시한 여러 선택지를 선택하고 있었다. 모든 선택이 끝나자 화면에는 향수의 구성 성분이 추천됐다.
◇ 5분 대화가 향수로 바뀌는 순간
프래그런스 랩의 작동 방식은 비교적 단순했다. 참가자는 아마존 노바 소닉(Amazon Nova Sonic)이라는 음성 AI와 자연어로 대화를 나눈다. “어떤 향을 좋아하세요?”, “어떤 순간을 떠올리고 싶으세요?” 같은 질문에 답하면, AI는 그 내용을 분석해 향수의 톱노트, 미들노트, 베이스노트를 결정한다.
일례로 여행을 좋아한다는 한 마디가 시트러스 계열 톱노트로, 아침 산책에 대한 이야기가 그린 계열 미들노트로 변환된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건 아마존 노바 프로(Amazon Nova Pro)다. 대화 내용을 분석하고, 특정 키워드를 추출해 향수 배합을 제안하는 멀티모달 AI 모델이다.
흥미로운 건 이 시스템이 단순히 알고리즘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AI가 제안한 배합을 바탕으로 현장의 조향사가 실제로 향수를 조합한다. 부스 뒤편에서는 조향사 두 명이 작은 병들을 섞으며 향을 완성하고 있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협업이었다. 한 참가자는 “5분 정도 대화했는데, 만족할만한 향이 나왔다”며 만족스러워했다.
◇ 국제비즈니스어워드 수상, 실제 비즈니스 검증
프래그런스 랩은 올해 6월 칸 라이언즈 국제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후 국제비즈니스어워드 브랜드&경험 부문에서 금상과 은상을 수상했다. AWS가 6개월 만에 리인벤트에서 다시 전시한 건, 단순한 마케팅 이벤트를 넘어 실제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함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향수 시장은 2025년 524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개인화 제품과 지속가능한 관행에 대한 수요가 이를 견인하고 있다. 특히 AI는 소비자 개개인의 선호도, 기분, 심지어 DNA까지 분석해 맞춤형 향을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바우단의 무드센츠(MoodScentz), 피르메니히의 에모티온(EmotiON) 같은 도구들이 이미 시장에 나와 있다.
프래그런스 랩이 보여주는 건 이런 기술적 가능성을 소비자 경험으로 구현한 사례다. 이 모델은 향수뿐 아니라 스킨케어, 화장품, 식음료, 홈굿즈 등 다양한 소비재 카테고리로 확장될 수 있다. 한국의 K-뷰티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성장하는 가운데, AI 기반 제품 개발과 마케팅 자동화는 경쟁력의 새로운 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기술 너머의 질문들
물론 모든 향수가 AI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시장을 나오며 한 조향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조합을 제안할 수 있지만, 향의 감성과 스토리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프래그런스 랩 역시 AI가 제안하고 조향사가 완성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택한 이유가 여기 있다.
2025년 향수 트렌드는 단순한 액세서리를 넘어 감정적, 신체적 웰빙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 사람들은 특별한 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수면, 스트레스 완화, 자기표현을 위해 향수를 선택한다. AI가 이런 개인의 맥락을 얼마나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5분간의 대화로 한 사람의 취향을 포착할 수 있을까.
전시장 한쪽에는 실제로 만들어진 향수 샘플들이 진열돼 있었다. 각기 다른 이름표가 붙어 있었고, 어떤 건 우아했고 어떤 건 경쾌했다. 그 병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기술은 개인화의 문턱을 낮췄지만, 결국 그 향을 맡고 선택하는 건 사람이라는 것. AWS가 ‘아마존 베드록’ 위에 쌓아 올린 이 시스템은 그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도구일 뿐이다.
부스를 떠나는 참가자 한 명이 작은 향수병을 손에 쥐고 웃고 있었다. “이게 정말 내 향수다.” 그의 표정에서 기술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제품을 손에 쥔 순간의 기쁨. 어쩌면 초개인화 시대가 진짜 노리는 건 바로 그 감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