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S 리인벤트 2025] 14년 기조연설의 마지막, 버너 보겔스 CTO가 남긴 메시지
“AI 시대에도 개발자 본질은 변하지 않아”
호기심·시스템 사고·소통, 르네상스 개발자 되길
“지금만큼 개발자 되기 흥미진진한 시대 없어”
버너 보겔스(Werner Vogels) 아마존웹서비스(AWS) 최고기술책임자(CTO)가 14년간 이어온 ‘AWS 리인벤트’ 기조연설 무대에서 내려온다.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AWS 리인벤트 2025 기조연설 무대에 선 보겔스 CTO는 ”2012년부터 모든 기조연설을 해왔지만, 이제 젊고 새로운 목소리들이 여러분 앞에 설 시간“이라며 이번이 마지막 기조연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AWS를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엔지니어들에게 무대를 내주기로 한 결정이다.
보겔스 CTO는 2004년 아마존에 합류해 분산 시스템과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를 설계하며 AWS의 기술 철학을 만들어온 인물이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코넬대학에서 컴퓨터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아마존 합류 전에는 분산 시스템 연구자로 활동했다. 아마존이 거대한 모놀리식 시스템을 작은 서비스들로 나누는 과정을 주도했고, 이는 이후 AWS 클라우드 서비스의 기반이 됐다.
매년 리인벤트에서 그가 전한 기술 철학과 미래 비전은 전 세계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이번 기조연설에도 개발자들의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14년간 단독으로 기조연설 무대를 지켜온 그가 개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AI로 인해 개발 도구를 바뀌어도 개발자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도구는 변해도 개발자는 여전히 필수적”
보겔스 CTO는 전 세계 AWS 고객을 방문하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을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어쩌면 AI가 일부 작업을 변화시키고, 일부 기술을 쓸모없게 만들 수도 있다”며 “하지만 질문을 다시 해보자. AI가 나를 쓸모없게 만들까?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의 조건을 붙였다. “내가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1960년대 어셈블리와 코볼(COBOL), 파스칼(Pascal)로 프로그래밍을 배운 자신의 경험을 꺼냈다. “당시 배운 언어들은 이제 쓰이지 않는다”며 “하지만 어셈블리를 배우면서 컴파일러가 어떻게 코드를 기계어로 번역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컴파일러 등장, 1970년대 구조적 프로그래밍, 1980년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1990년대 후반 아마존이 모놀리스를 마이크로서비스로 분해한 경험, 2000년대 클라우드 서비스 도입까지 개발 도구의 진화 과정을 되짚었다. “내 첫 통합개발환경(IDE)은 이맥스(Emacs)였고, 이후 비주얼 스튜디오,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를 거쳐 지금은 커서(Cursor)와 제일(Jail) 같은 AI 보조 도구를 쓴다”며 “5년 후, 10년 후에도 새로운 도구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구는 계속 변했지만 나는 여전히 개발자”라고 강조했다.
◇ 르네상스 시대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개발자
보겔스 CTO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최근 “우리는 우주선, AI, 로봇공학이라는 동시다발적 황금기의 중심에 살고 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이 시대가 르네상스와 닮았다고 설명했다. 중세 암흑기 이후 찾아온 르네상스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폭발시키며 과학, 철학, 예술이 함께 발전한 시기였다. 메디치 가문, 갈릴레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인물들이 등장했고, 연필, 원근법, 망원경, 인쇄기 같은 도구들도 발명됐다.
그는 “예술과 과학이 같은 대화의 일부였다”며 “창의성과 기술이 함께 진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호기심을 가졌고, 기존 가정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분야 간 경계를 보지 않고 다리를 놓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 개발자들도 ‘르네상스 개발자(Renaissance Developer)’가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호기심이다. “개발자들은 항상 뭔가를 분해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며 “이 본능을 보호하라. 호기심은 학습과 발명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험하라고 강조했다. “다빈치가 모델로 만든 비행기는 날지 못했지만, 우리는 지금 날고 있다”면서 “실험은 실패할 수 있다고 믿을 때만 진짜 실험이다”라고 말했다.
보겔스 CTO는 시스템 전체를 보는 사고방식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1970년대 생태학자 도넬라 메도스의 연구를 인용했다. “시스템은 상호 연결된 것들의 집합으로, 시간이 지나며 특정 행동 패턴을 만들어낸다”며 “모든 엔지니어는 결국 시스템에 피드백 루프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또 20세기 초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늑대를 제거했더니 생태계 전체가 무너졌다가, 늑대를 다시 들여오자 강의 흐름까지 바뀐 ‘영양단계 폭포(trophic cascade)’ 사례를 들며 “구조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피드백이 바뀌면 결과가 바뀐다”고 말했다.
소통 능력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생각 자체만큼 중요하다”며 “엔지니어가 경력을 쌓으며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년 전 ‘검소한 설계자(Frugal Architect)’ 개념을 발표하며 아마존 홈페이지를 티어 1, 2, 3으로 나눠 설명한 사례를 들며 “이는 엔지니어링 개념일 뿐 아니라 비즈니스와의 소통 도구”라고 설명했다.
◇ 기술로 세상의 문제를 푸는 개발자들
보겔스 CTO는 올해 2월 아프리카와 유럽, 중남미를 두 달간 방문하며 만난 개발자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아마존강 유역에서 젊은이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제공해 마을을 떠나지 않게 하는 음료 회사 쿠페라크, AI 카메라로 강에서 플라스틱을 추적해 해양 정화에 활용하는 오션 클린업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르완다 보건부는 전국 의료 시설의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는 헬스 인텔리전스 센터를 구축해, 산모 건강 시설을 30분 도보 거리 이내에 배치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케냐의 코코 네트웍스는 5센트 정도의 소액으로 에탄올 가스를 구매할 수 있는 ATM 같은 기계를 만들어, 매일 요리할 가스를 살 여유가 없던 사람들의 삶을 바꿨다.
그는 “개발자들이 기술을 진짜 인간의 문제에 적용할 때 일어나는 일”이라며 “개발자들은 과거에도 필수적이었고, 오늘도 필수적이며, 미래에도 필수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2050년까지 지구 인구가 20억 명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보겔스 CTO는 “이들을 먹이고, 건강하게 하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 기술자들이 세상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개발하는 데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58개국 265명의 AWS 히어로와 커뮤니티 빌더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참고로 올해 빌보드 어워드는 필리핀에서 AWS 사용자 그룹을 운영하며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라파엘 비센테가 수상했다.
보겔스 CTO는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배우려는 것으로 정의된다”는 말을 인용하며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여러분의 도구는 계속 변할 것이다. 내년에도,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새로운 워크플로가 나올 것”이라며 “하지만 개발자로서 여러분이 하는 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 일은 여러분의 것이지 도구의 것이 아니다. 지금만큼 개발자로 있기에 흥미진진한 시대는 없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