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와 함께한 7년, 삶은 참 선물 같구나"…'엄마' 문정희 '이야기' [인터뷰]
"책 '마누 이야기'의 가제는 '잘했군, 잘했어' 였어요. 정말 마누는 태어나서부터 마지막 모습까지도 너무 '잘했군, 잘했어' 였어요. 정말 다 고마워요."
배우 문정희가 아닌, ‘엄마’ 문정희를 마주했다. 그는 박정민이 대표로 있는 출판사 ‘무제’와 손잡고 반려견과의 7년을 담은 책 ‘마누 이야기’를 펴냈다. '마누 이야기'의 주인공은 '마누'다. 마누는 다이빙 대회에서 6.1m 신기록을 세웠던 주인공이었고, 장난꾸러기 리트리버였고, 성장한 후에는 따끔하게 예의를 가르칠 줄 알았던 헬퍼였고, 사랑하는 형의 아픈 자리를 하염없이 핥아주던 힐러였고, 무엇보다 문정희의 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그런 '마누'는 7살이 되던 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문정희는 책 '마누 이야기'의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이 사진 속 마누가 몇 개월인지를 정확하게 이야기할 정도로 손에 잡힐 듯한 마누와의 7년 간의 이야기를 되짚어갔다. 여전히 문정희의 핸드폰 바탕화면에서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 '마누'는 문정희를 '엄마'로 만들었다. 자신을 위해 이사를 할 정도로 열성적인 엄마, 벌떡 일어서 두 팔을 벌려 자신을 칭찬해 주는 엄마, 그렇게도 크게 사랑을 표현하는 엄마로 말이다. 그 마음이 빼곡하게 책 '마누 이야기'에 담겼다.
Q. 처음 '마누 이야기'를 폈을 때, 굉장히 눈물을 각오하고 페이지를 열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굉장히 잘 정리된 강아지 육아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는 이 책이 '펫로스(반려동물이 떠난 후 겪는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거나,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난 후의 저로 시작되지 않기를 바랐어요. 반려동물의 끝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어요. 그 아픔을 경험하지 않으면, 함부로 위로할 수도 없는 일이고, 보편화 되거나 객관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너무 짧은 7년이라는 시간이었어요. 저와 마누가 모두 서툴렀던 시절부터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교감의 상태가 될 때까지, 그리고 갑작스럽게 온 병에 하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저희의 이야기. 이렇게 세 개의 챕터가 이븐하게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그 시간을 되짚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투병일지가 있었어요. 약물에 대해서, 오늘 뭘 먹었는지, 대소변의 양과 색깔은 어땠는지 등 이런 것들을 제가 항암 환자 투병기를 쓰듯이 매일매일 쓴 거예요. 특히, 대형견은 경험이 없으신 분들이 많을 텐데, 이걸 나만 알고 있지 않고, 나누는 것이 너무 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게 그 시간은 '펫로스'를 위한 슬픔의 시기가 아니었어요. '마누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라는 시기였죠. 그 과정에서 마누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마무리를 하려고 했는데, 투병일지로만 나가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제가 좀 극성 엄마이다 보니까, 마누를 데려오면서부터 관리하고, 아이를 챙기고, 이런 모든 과정을 책으로 써보면 어떨까. 그 생각에서 이걸 기록하게 됐어요. 제목은 '마누 이야기'이지만, 사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모두의 이야기거든요. 자신의 반려 아이들의 이름을 넣은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쓰리고, 아프지만, 용기 있게 이야기하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Q.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너무 좋았다. 반려동물이 막연하게 예뻐서 키우는 것이 아닌, '마누 이야기'를 보면서 엄청난 책임감으로 함께하는 것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마누 이야기'에도 나오지만, 저는 마누를 임시 보호하면서 가족이 됐어요. 첫눈에 반한, 그런 아이였어요. 그런데 막상 가족이 되었을 때, 아는 게 없었어요. 저도 태어나서 처음 반려견과 함께하는 거였거든요. 지금, 그때의 저를 돌아보면, 지적할 게 너무 많아요. 모르는 것투성이의 시간을 몸으로 배웠거든요. '마누'도 잘 때 깊이 잘 자야 해요. 그런데 '마누'가 어릴 때, 잠든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제가 뽀뽀하고 장난치고 그랬거든요. 그랬던 것까지 나중에는 후회가 됐어요. 강아지들도 자는 동안 성장하고, 건강해지거든요. 처음에는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유튜브를 찾아보곤 했어요."
Q. 주변에서도 강아지를 훈육할 때, 유튜브를 통해 많이 참고하는 것 같다.
"근데 유튜브도 사실 맞는지, 아닌지, 검증이 안 된 것도 많잖아요. 또 집마다 달라요. 저는 배우라는 직업으로 '마누'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은 그렇게 하기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집마다 상황이 다 다르거든요. 반려견들도 그 집안의 분위기와 상황에 맞게 훈련법이 달라져야 해요. 그럼에도 어떤 기준은 있어야 하는 것 같았어요. '내가 뭘 가르쳐야 하는지, 반려견이 뭘 알아야 하는지, 반려견의 어떤 것을 관찰해야 하는지' 등 서로 배울 수 있는 걸 체계화하는 게 필요했는데, 그걸 '마누'를 키우며 진짜 많이 공부하게 된 거예요. 훈련사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거든요. 제가 정답은 아니에요. 그런데 '이런 시도를 했을 때 좋았어'라고 생각한 지점을 담으려고 했어요. 반려견들이 발톱이 긴 게 문제가 아니라, 긴 발톱으로 딱딱한 바닥을 걸어 다니면, 슬개골 이런 데에 되게 안 좋거든요. 그렇게 발톱을 잘 정리해 줘야 하는 이유, 항문낭을 짜줘야 하는 이유 등 필요한 일들의 이유가 있어요. 저는 직접 겪어보며 배웠어요. 그렇게 어렵게 배웠으니, 그걸 나누고 싶었어요."
Q. '마누 이야기'에는 다양한 지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함께 여행도 가고, 수영도 자주 했고, 도그쇼도 나갔고, 특급 레시피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마누'를 위해 가장 잘했다 싶은 지점이 있을까.
"잘 먹인 거. (웃음) '마누'는 어릴 때 생식을 했고, 5살 때부터는 화식으로 만들어서 먹였어요. 제가 그렇게 '마누'를 대했기에 양가에서도 그렇게 대해주셨어요. 친정에서는 명절 때, '마누'를 위한 동태전을 따로 부쳐주셨어요. 소금 간을 하지 않고서요. 그렇게 함께 음식을 나눴던 기억이 가족 모두에게 깊이 남아있어요."
Q. 책 속 문장 중에 '신기하게도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서, 오히려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닿았다. 이 문장에 담긴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마누' 덕분에 지구상에 저 말고 다른 존재가 이렇게 공존하고 있구나, 우린 죽음을 맞닥뜨리는 인간이구나, '마누'의 죽음에서 저의 죽음을 본 것 같았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사람이라는 존재는 고통을 더 많이 안고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마누'는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한 번도 슬픈 생각을 한 적이 없는 거예요. 한 번도 스트레스받고 '엄마 괜찮아'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엄마 좋아', '엄마 행복해'라는 이야기를 느끼는 그대로 해줬어요. 강아지는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이 아이들을 통해서 사람을 비춰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Q. 그렇게 완성한 책 '마누 이야기'를 처음 받았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마음이 복잡하더라고요. 너무 좋은데, 이 책으로 '마누'가 남아있고, 제 곁에 없다는 것이 섭섭하기도 했고요. 울며, 웃으며, 힘들게, 즐겁게 글을 써 내려갔거든요. '마누' 덕분에 이런 일들이 생겼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이 책이 세상에 나와서 너무 좋지만, '마누야, 왜 거기 있어, 엄마 옆에 있어야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책의 표지 컬러도 '마누'가 좋아했던 공의 컬러예요. 항상 물고 다녔던 공이 있거든요. 가장 좋아하는 공."
Q. 과거 유튜브 채널 '피디씨 by PDC'에서 배우 송윤아에게 "사람이 계속 변하는데 어떻게 연기가 그대로 있다고 생각해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을 돌이켜 '마누'와의 시간이 배우 혹은 사람 문정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궁금하다.
"일을 하다 보면, 스스로 매몰될 때가 있어요. '배우 문정희'만이 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때도 일상을 살아가고, '마누' 엄마로도 살고 있었지만요. 그런데 '마누'와의 시간을 통해서 더 나아가 죽음 이후를, 생명을 생각하게 하는 태도가 변화한 것 같아요. '나'라는 존재로 잘 존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세상에는 모두에게 한 번 뿐인 '시간'이 공평하게 존재하잖아요. 지금까지도 열심히 살았다고는 생각하는데, 앞으로는 다른 확장성을 가지고 많이 깨어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마누'를 통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생명과 삶이 정말 귀하구나, 선물 같구나', '마누 자체가 선물이었듯 나의 삶도 선물같이 잘 써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누'는 저에게 정말 고맙고 선물 같은 존재예요. 너무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하니까, 그때까지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는 동안 엄마 너무 잘 있다가 왔어'라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요."
문정희는 책의 가제가 ‘잘했군, 잘했어’였다고 말했다. 그 문장은 ‘마누’를 향한 말이었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엔 그 말이 문정희 자신을 향한 위로처럼 들렸다. 하루도 게을리함이 없었던 '마누'의 엄마 아빠가 참 '잘했군, 잘했어'라고 말이다. 그는 ‘마누 이야기’의 수익 전액을 기부할 예정이다. “사는 동안 엄마 너무 잘 있다가 왔어.” 언젠가 마누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문정희는 오늘도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고 있다. ‘마누 이야기’는 그렇게 한 존재와 함께 살아낸 시간을 다정하게 기록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