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찾은 건강 수명의 열쇠① 9년 고중력 실험으로 본 뇌·심장·청력의 변화

지구 중력의 15배. 체중 60kg 성인이라면 순간적으로 900kg의 하중이 가해지는 극한 환경이다. 인하대학교 우주항공의과학연구소는 이런 고중력 환경에서 9년간 동물실험을 진행하며 인체 적응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찾고 있다. 우주비행사 건강 연구에서 출발한 이 실험들이 노화와 질환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극한을 재현하는 2.52미터 장비

인하대 우주항공의과학연구소가 자체 설계한 고중력 가속기(Hypergravity Accelerator) 초기 디자인. 회전암 양끝에 설치된 투명 실험 챔버가 회전하며 중력 변화를 모사한다. /이미지 제공=인하대학교 우주항공의과학연구소

인하대병원 정석빌딩에 자리한 고중력 가속기는 가로 2.52미터, 높이 1.55미터 크기다. 거대한 원심분리기처럼 생긴 이 장비는 중앙의 회전 구조체에 연결된 회전암 양끝에 투명한 육면체 상자를 달고 있다. 각 상자에는 실험용 쥐 20마리까지 들어간다.

김규태 인하대 우주항공의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고중력 가속기는 우주탐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력 변화를 모사하는 우주환경 모사 장비”라고 설명했다. 우주선이 지구를 떠나거나 돌아올 때, 그리고 궤도에 진입할 때 우주비행사들이 겪는 고중력 상황을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것이 목표다.

인하대 우주항공의과학연구소의 고중력 가속기 운영부(왼쪽)와 조절부(오른쪽). 실험용 쥐를 탑재한 상태에서 회전 속도와 중력 강도를 실시간 제어한다. /사진 제공=인하대학교 우주항공의과학연구소

2014년 도입된 이 장비는 최대 15G까지 중력을 높일 수 있다. 실제 실험에서는 보통 2~4G 환경에서 수 시간에서 수 주까지 실험이 진행된다. 동물의 생존을 위해 매일 30분간 회전을 멈춰 음식과 물을 공급하며, 온도·습도 조절 장치와 12시간 주기의 조명(명암) 사이클로 실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고중력이 뇌·심장·청력에 남긴 흔적

9년간의 동물실험에서 고중력 환경이 생체에 미치는 다양한 변화가 관찰됐다. 연구진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2016년 확인된 ‘호르메시스 효과’였다.

호르메시스란 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가 오히려 생체 기능을 높이는 현상을 말한다. 고중력 자극이 체내 항염증·항산화·세포 사멸 조절 기전을 활성화해 알레르기성 호흡기 질환을 완화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치료적 응용 가능성을 시사하는 결과로 해석했다.

하지만 고중력의 영향이 모두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2020년 연구에서는 뇌 기능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확인됐다. 소뇌의 운동 조절 기능이 감소하고,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의 ‘시냅스 가소성’(뇌 신경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능력)이 저하됐다. 특히 새로운 물체를 인식하는 인지 능력에서 뚜렷한 감소가 관찰됐다.

2021년 연구는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집중했다. 고중력 자극으로 몸속 염증 신호 물질인 IL-6(인터루킨-6)이 증가하고, 세포막의 칼슘 통로 역할을 하는 Trpm2 채널 발현이 늘어났다. 그 결과 심장 조직, 특히 우심방에서 부종과 과도한 칼슘 축적이 발생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

흥미롭게도 적응 메커니즘도 발견됐다. 균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핵에서는 뇌신경 신호 조절의 핵심인 NMDA 수용체의 개수를 조절해 중력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을 보였다. 연구진은 “전정계가 가역적 조절을 통해 빠르게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가장 최근인 2025년 연구에서는 청각 기능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고중력에 노출된 실험동물에서 주로 고주파 대역의 청력 손실이 나타났고, 이와 일치하는 내이의 유모세포(모발 세포) 손상도 관찰됐다. 또한 인지기능과 관련된 행동 패턴과 기억 기능의 감소도 정량적으로 측정됐다.

실험실 성과, 미래 의료 기술로 확장할 수 있을까

동물실험에서 나타난 이런 결과들이 향후 인간 대상 의료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연구진은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현재의 고중력 가속기는 동물 실험 전용 장비로, 사람에게 직접 적용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 교수는 “동물실험 결과를 토대로 볼 때, 고중력 자극이 근골격계 강화, 신경 재활, 심혈관·대사 건강 관리 등에서 ‘신체 가속도 기반 치료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가능성은 아직 동물실험 단계에서 도출된 결과이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근골격계 재활 분야에서는 기계적 하중 증가를 통한 뼈와 근육의 생리적 활성화가 기대된다. 동물실험에서 관찰된 생체 반응을 토대로 하면, 재활이 필요한 환자에게 적절한 수준의 고중력 자극을 적용하는 방안이 탐색 되고 있다.

신경계 및 균형 훈련 영역에서는 전정기관(평형감각 담당) 재활과 뇌신경 가소성 촉진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실험에서 확인된 NMDA 수용체 조절 메커니즘을 응용하면, 감각-운동 통합을 통한 뇌-신경 회로 재훈련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하고 있다.

심혈관계 건강관리에서는 심박출량과 말초혈류 조절 자극을 통한 혈관 기능 개선 가능성이 제시된다. 고중력 스트레스를 점진적으로 가해 심장·혈관 반응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심혈관계 기능 변화를 조기에 포착할 수 있는 진단 기법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탐색 되고 있다.

대사질환 관리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운동보다 높은 에너지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체중 관리 및 인슐린 감수성 개선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고중력이 IL-6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만성 염증성 질환 관리에도 응용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 세대 건강관리로의 확산 전망

연구진은 이런 기술이 특정 연령층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 건강관리 기술로 발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아직은 동물실험 단계로, 사람 대상 연구와는 거리가 있다.

20~30대에서는 예방의학 관점에서 근골격계 기능 유지와 심혈관 건강 관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40~50대는 현재 건강 상태를 유지하면서 노화로 인한 기능 저하를 미리 대비하는 용도로 응용 가능성이 있다.

60대 이상에서는 이미 나타난 기능 저하에 대한 개선과 삶의 질 향상에 중점을 둔 활용이 고려될 수 있다. 특히 낙상 예방, 근감소증 관리, 뇌졸중 후 재활 등의 영역에서 이바지할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웨어러블 기기와 고중력 시뮬레이터를 통합하면 생체신호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개별 환자 맞춤형 중력 강도를 자동 조절하는 스마트 재활 장치 개발도 구상해볼 수 있다”며 “소형화가 실현되면 가정에서도 안전하게 건강관리를 지속할 수 있는 홈케어로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산들

동물실험에서 확인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제 의료 현장 적용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안전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고중력 노출은 혈압 상승, 부정맥, 뇌 혈류 저하를 유발할 수 있으며, 특히 고령자나 심혈관 질환자에게 안전한 하중 범위를 자세히 규명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어지럼증, 구토, 평형감각 장애 등의 부작용과 적정 자극 강도·시간에 대한 임상 기준 마련도 선결 과제다.

기술적으로는 현재의 대형 원심 분리형 장비를 병원이나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작고 간단한 기기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의 심박수, 호흡, 뇌파, 혈압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해 맞춤형 가속도를 조절하는 정밀 제어 기술 개발도 요구된다.

제도적으로는 의료기기 승인을 위한 안전성·유효성 임상시험과 표준 임상 가이드라인 구축이 필수다. 수개월에서 수년 단위의 장기 사용 시 나타날 수 있는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추적 연구 데이터도 축적해야 한다.

윤리적 측면에서도 고려할 점이 많다. 김 교수는 “고령자 및 환자군 대상 임상시험에서는 심혈관계 부담 위험이 크므로 초기 연구에서 안전 기준이 엄격히 설정되어야 한다”며 “고가 장비로 인한 의료 접근성 불평등과 보험 적용 문제도 사회적 과제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복합 환경 연구로 영역 확장

인하대 우주항공의과학연구소는 단일 환경이 아닌 복합 우주 환경에 대한 연구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고중력과 방사선을 동시에 적용한 최근 실험에서 인지 행동반응과 인지기능 유연성이 더욱 뚜렷하게 감소하는 것이 확인됐다.

김 교수는 “우주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자극인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므로, 이런 복합 환경자극에 대한 생물학적 영향을 지속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뇌 기능뿐 아니라 다양한 장기의 기능을 측정하는 연구로 범위를 넓히고, 측정 장비 및 데이터 해석 기술도 함께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기 우주탐사를 위한 생체 기능 측정 장비 개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미국 NASA가 추진 중인 우주 환경에서의 인지 기능 저하 조기 감지 기술과 유사한 방향이다.

이러한 고중력 연구 성과는 향후 우주 환경을 활용한 노화 연구와 재생의학 혁신과도 맞닿아 있다. 극한 환경에서 밝혀진 인체 적응의 원리가 어떻게 노화 연구와 재생의학 혁신으로 이어질지, 다음 편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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