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네 미술관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세잔, 자 드 부팡에서(Cézanne au Jas de Bouffan)' 전시 안내판(사진촬영=서미영 기자)

2025년,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의 해'로 도시 전체가 이 위대한 화가를 기념하고 있다. 지난 6월, 남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를 직접 찾았다. "여기서 태어났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른 어떤 것도 충분하지 않다"라는 세잔의 말처럼, 엑상프로방스는 그의 전부였다. 그리고 이제, 그 도시는 생전에 그를 외면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마침내 자신의 가장 위대한 아들을 온전히 품어 안고 있었다.

그라네 미술관, 세잔과의 첫 만남
미라보 광장 근처의 그라네 미술관은 세잔이 생전에 직접 걸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그라네 미술관에서는 6월 28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세잔, 자 드 부팡에서(Cézanne au Jas de Bouffan)'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130점이 넘는 회화, 드로잉, 수채화가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로부터 모여들었다.

그라네 미술관 입구(사진촬영=서미영 기자)

그라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세잔이 평생 추구했던 그 빛이다. 프로방스 특유의 따스하고 투명한 햇살이 전시장 안으로 스며들고, 130여 점의 작품들은 각자의 시간대를 품은 채 벽면에 걸려 있다. 1860년부터 1899년까지, 세잔이 가족의 저택 자 드 부팡에서 보낸 40년의 시간이 이곳에 응축되어 있다.


전시는 젊은 세잔이 그라네 미술관의 미술 학교에서 그린 습작들부터 시작해, 자 드 부팡 저택 벽에 직접 그린 벽화들, 사계절 패널, 아버지의 초상화, 그리고 점점 성숙해지는 풍경화와 정물화까지 연대기 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라네 미술관 내 '세잔, 자 드 부팡에서(Cézanne au Jas de Bouffan)' 전시 현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풍경화 섹션이다. 프라하 국립미술관에서 온 '자 드 부팡의 집과 농장'(1885-1887)은 전시 포스터 이미지로도 사용된 작품이다. 선명한 붉은 지붕의 저택이 울창한 녹음 속에서 빛나는 이 그림 앞에 서면, 세잔이 왜 이곳을 떠날 수 없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라네 미술관 내 '세잔, 자 드 부팡에서(Cézanne au Jas de Bouffan)' 전시 현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정물화 섹션은 세잔 예술의 핵심을 보여준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체리와 복숭아가 있는 정물'(1885-1887)에서 사과, 물병, 생강 단지, 석고 큐피드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들이다. 1882년 자 드 부팡 최상층 아틀리에로 작업실을 옮긴 후, 세잔은 정물화 장르를 깊이 탐구했다. 그의 정물화에서는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화가의 상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테이블은 기울어져 있고, 과일들은 중력을 무시한 채 배치되어 있다. 세잔은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와 공간과 색채의 균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번 세잔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작품의 수나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세잔이라는 화가가 한 장소에서 시간과 함께 성장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드 부팡은 그의 집이었고, 아틀리에였으며, 무엇보다 실험실이었다. 그 실험의 결과물들이 세계 각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한자리에 모인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된 한 화가의 고독하고 치열했던 여정을 증언한다. 

그라네 미술관에서의 세잔 전시는 10월 12일이면 막을 내린다. 세계 각지의 미술관들이 대여해준 이 귀중한 작품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기까지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세잔을 사랑한다면, 지금 당장 엑상프로방스행 비행기표를 끊어야 한다.

미라보 광장의 '프로방스 시장'
그라네 미술관을 나와 미라보 광장을 걸었다. 440미터 길이의 이 가로수 길은 세잔이 어린 시절부터 걸었던 바로 그 길이다. 17세기부터 이어진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뜨거운 남프랑스의 햇살을 거르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분수들이 곳곳에서 물줄기를 뿜어 올리고, 카페의 테라스에는 사람들이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프로방스 시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

미라보 광장의 프로방스 시장은 색과 향으로 가득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물론이고 프랑스 치즈, 육류, 허브와 향신료, 라벤더 제품 등을 둘러보고 구매할 수 있다. 

프로방스 시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

프로방스 시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시장은 현지인들과 상인들의 구수한 프로방스 억양, 흥정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코디언 선율까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살아있는 풍경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프로방스 시장 내 마들렌을 파는 가게(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시장을 걷다가 'CHRISTOPHE MADELEINES'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프로방스 전통 방식으로 구운 마들렌을 파는 곳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안에서 풍겨 나오는 버터와 마들렌의 향기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프로방스 시장 내 마들렌을 파는 가게(사진촬영=서미영 기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갓 구운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식감이다. 버터의 고소함이 입안에서 녹아들었다.

엑상프로방스의 대표적인 특산품 깔리송(Calisson)(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시장 곳곳에는 깔리송(Calisson)을 파는 상점들도 있었다. 아몬드 페이스트에 설탕에 절인 멜론과 오렌지를 섞어 만든 마름모꼴 깔리송은 엑상프로방스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15세기부터 이어져 온 전통 과자로, 한 입 베어 물면 아몬드의 고소함과 과일의 달콤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엑상프로방스의 대표적인 특산품 깔리송(Calisson)(사진촬영=서미영 기자)

깔리송을 파는 상점 앞에는 직원이 여러 종류의 깔리송을 시식하게 해준다. 클래식한 맛부터 멜론, 라벤더 향이 가미된 현대적인 맛까지 다양한 맛의 깔리송을 맛볼 수 있으니 꼭 시식을 해보고 구입하는 게 좋겠다.

세잔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 '자 드 부팡' 저택
1859년 세잔의 아버지가 구입한 자 드 부팡은 1899년까지 40년간 세잔 가족의 소유였다. 자 드 부팡에서 세잔은 36점의 유화와 17점의 수채화를 그렸다. 오랜 복원 작업 끝에 이 저택이 2025년 6월 28일 대중에게 다시 공개됐다.

자 드 부팡의 외관(사진촬영=서미영 기자)

가이드 투어로만 입장이 가능한 저택 내부는 복원된 세잔의 첫 번째 스튜디오, 대형 프로방스 주방, 세잔 부인의 침실을 차례로 공개한다. 지붕 아래 마련된 작은 스튜디오에 서니, 세잔이 이곳에서 빛을 관찰하며 수없이 붓질했을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자 드 부팡 내 주방(사진촬영=서미영 기자)

가장 먼저 만난 공간은 세잔 가족이 식사를 했던 주방이다. 주방 한편에는 당시 사용했을 법한 식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세잔의 정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사과, 오렌지, 도자기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들이었다. 예술가의 눈은 이런 일상적인 순간들에서도 형태와 색채의 본질을 발견했을 것이다.

자 드 부팡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지붕 아래 마련된 세잔의 첫 스튜디오였다. 1881년 아버지가 지어준 이 작은 공간은 세잔에게 온전히 자신만의 창작 공간을 제공했다. 경사진 천장, 북쪽을 향한 창문,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느낌의 공간 구성. 이곳에서 세잔은 빛의 변화를 관찰하고, 형태를 탐구하고, 색채 실험을 거듭했다.


가이드는 바닥의 특정 지점을 가리켰다. "세잔은 여기 서서 이젤을 놓고 작업했을 것입니다. 이 각도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가장 이상적이었거든요." 스튜디오에는 세잔이 사용했을 법한 팔레트, 붓 등이 복원되어 놓여있었다.

자 드 부팡 내 계단(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저택을 연결하는 계단 자체도 볼거리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난간, 복원된 회반죽 장식, 그리고 곳곳에 남아있는 세월의 흔적들. 흥미로운 것은 복원 과정을 일부러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어떤 벽면에는 복원 전과 후를 비교할 수 있는 작은 창이 남겨져 있고, 임시 전시 공간에는 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빛과 침묵의 공간 '세잔 아틀리에'
자 드 부팡에서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 엑상프로방스 언덕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아틀리에 데 로브(Atelier des Lauves)', 폴 세잔이 생의 마지막 4년(1902~1906)을 보낸 스튜디오다. 2년간의 복원 작업을 마치고 2025년 6월 28일 대중에게 다시 문을 연 이곳은 세잔이 떠난 지 119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숨결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공간이다.

세잔 아틀리에 내부(사진촬영=서미영 기자)

1901년, 야외 스케치를 하던 세잔은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다고 한다. 로브 언덕(Lauves hill)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과 땅이 매물로 나온 것을 본 세잔은 곧바로 이곳에 반했고, 자신만의 스튜디오로 개조하기로 결심했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빛이 중요했다. 북향의 큰 창문에서 쏟아지는 자연광,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생트빅투아르 산(Montagne Sainte-Victoire)의 장엄한 모습. 이 모든 것이 세잔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잔 아틀리에 내부(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세잔 아틀리에의 2층에 올라가자 눈앞에는 넓은 스튜디오 공간이 펼쳐졌다. 약 50제곱미터(538제곱피트) 규모의 스튜디오는 놀라울 정도로 밝았다. 남쪽의 두 개의 큰 창문과 북쪽의 유리 지붕으로 프로방스의 자연광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그의 마지막 팔레트가 북쪽의 큰 창으로 쏟아지는 빛을 받아 놓여 있었다. 물감이 묻은 그대로의 팔레트. 시간이 정지한 듯했다.

세잔 아틀리에 내부(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세잔 아틀리에 내부(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스튜디오에는 그가 아꼈던 사물들, 마지막 정물화의 모델이 된 물건들, 가구와 작업 도구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선반에는 그의 유명한 정물화에 등장한 식기들이 꽂혀 있었다. 사과를 담았던 접시, 물병, 천 조각들, 해골 모형, 화분, 큐피드 석고상. 이 모든 것이 그의 그림 속에서 수없이 등장했던 것들이다.

세잔의 마지막 팔레트(사진촬영=서미영 기자)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세잔의 마지막 팔레트였다. 선반 위에 조심스럽게 놓인 나무 팔레트에는 여전히 물감 흔적이 남아있었다. 1906년, 67세의 세잔이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팔레트였다.

가이드는 조용히 말했다. "세잔은 1906년 10월 15일, 폭우 속에서 야외 작업을 하다가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죠. 이 팔레트는 그가 마지막으로 만진 물건 중 하나입니다." 창문으로 빛이 쏟아지는 스튜디오 안에서, 나는 세잔의 집념을 느낄 수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예술가. 그에게 그림은 삶 그 자체였다.

창밖으로는 그가 가꾼 정원이 보였다. 올리브 나무, 무화과 나무, 지중해성 식물들. 그리고 저 멀리, 언덕 너머로 생트빅투아르 산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였다. 세잔은 매일 이 창으로 그 산을 바라봤을 것이다.

'화가들의 정원'에서 생트빅투아르를 마주하다
세잔 아틀리에에서 차로 10분 정도 언덕을 더 올라가 '화가들의 정원(Jardin des Peintres)'으로 향했다. 2004년에 공공 정원으로 조성된 이곳은, 엑상프로방스 시가 생트빅투아르 산의 놀라운 전망을 보존하기 위해 공공 공간으로 지정한 곳이다. 세잔이 말년에 80점이 넘는 생트빅투아르 그림을 그리며 자주 찾았던 장소다.

'화가들의 정원'에서 마주한 생트빅투아르 산(사진촬영=서미영 기자)

계단식으로 조성된 정원을 올라가는 동안, 기대감이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정원의 꼭대기에 있는 작은 광장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생트빅투아르 산이 정면으로 펼쳐졌다. 세잔은 이 산을 44점의 유화와 43점의 수채화로 그렸다. 세잔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이 바로 이 전망 지점에서 그려졌다.

'화가들의 정원'에는 8개의 이젤이 설치되어 있다.(사진촬영=서미영 기자)

광장에는 8개의 이젤이 설치되어 있었다. 각 이젤에는 금속판에 인쇄된 세잔의 생트빅투아르 그림 복제본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그림들이 실제 풍경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세잔의 수채화 복제본을 보고, 고개를 들어 실제 산을 바라봤다. 그림과 현실을 번갈아 보며, 소름이 돋았다. 세잔은 바로 이 자리에, 이 각도에서 이젤을 세우고 그림을 그렸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풍경을, 그도 똑같이 보았다. 120년 전, 그는 여기 서서 붓을 들었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1,011미터 높이의 산. 세잔에게 생트빅투아르 산은 자연의 웅장함과 영원성을 구현했다. 그는 이 산을 그릴 때마다 "의미나 성격의 또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햇빛이 시시각각 변하며 산의 색깔이 바뀌었다. 오렌지색,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 세잔이 본 그 색들이었다.

'화가들의 정원'에는 지중해성 관목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정원에는 지중해성 관목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세잔의 구도를 자연스럽게 재현했다. 소나무 가지가 전경을 가로지르고, 그 너머로 계곡이 펼쳐지고, 저 멀리 산이 솟아 있다. 세잔이 평생 추구한 완벽한 구도였다.

입체파의 탄생지 '비베뮈스 채석장'
다음 날에는 '세잔의 발자취를 따라서' 도보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다. 목적지는 비베뮈스 채석장이었다. 이 7헥타르의 바위 고원은 18세기까지 엑상프로방스 기념물들을 위한 채석장으로 운영되었다. 세잔은 이 채석장을 방치된 상태로 발견했다. 식물이 되살아났지만, 황토색 바위는 인간 작업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여기서 입체파가 탄생했다.

세잔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비베뮈스 채석장을 처음 탐험했지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50대가 되어서였다. 그는 1890년부터 1904년 사이에 이곳에서 11점의 유화와 16점의 수채화를 그렸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붉은 바위>다. 캔자스시티의 넬슨-앳킨스 미술관과 볼티모어 미술관이 소장한 <비베뮈스 채석장에서 본 생트빅투아르 산>도 이 채석장에서 탄생했다.

비베뮈스 채석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채석장은 입구에서부터 특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진입로 양옆으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붉은 흙길이 이어졌다.

채석장에 들어서자, 세잔이 왜 이곳에 매료되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멀지 않은 이 장소는 고대부터 황토색 석회암으로 유명했다. 바위들은 오렌지색, 붉은색, 노란색, 심지어 분홍색까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색을 띠고 있었다. 채석장은 수직으로 깎인 절벽, 날카로운 모서리, 기하학적인 블록 등 인간이 만든 형태와 자연이 만든 형태가 뒤섞여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비베뮈스 채석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

2022년부터 엑상프로방스는 비베뮈스 채석장에 새로운 산책로와 정보 패널을 설치하는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세잔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실제 풍경과 화가의 해석을 비교할 수 있게 했다. 가이드는 우리를 암벽 사이 좁은 길로 안내했다. 한 장소에 멈춰 서면, 세잔의 그림이 패널에 걸려 있었다. 그림을 보고, 고개를 들어 실제 풍경을 보면, 세잔의 시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비베뮈스 채석장의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주황빛, 붉은빛, 노란빛으로 물든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 깎인 듯한 수직의 절벽들. 그리고 그 사이로 삐죽삐죽 솟아오른 지중해성 소나무들. 가이드가 설명했다. "세잔은 여기서 자연의 기하학을 발견했습니다. 원기둥, 구, 원뿔. 그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자연을 원기둥, 구, 원뿔로 다루라'고 한 것이 바로 이런 풍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잔은 이 기하학적인 형태들, 색의 대비, 빛과 그림자의 유희에 매혹되었다. 그의 원근법과 색, 기하학적 바위에 대한 작업은 입체파라는 20세기의 주요 예술 운동의 길을 열었다. 세잔은 브라크와 피카소를 포함한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비베뮈스 채석장의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우리는 채석장 깊숙이 더 들어갔다. 어떤 곳에서는 바위 벽이 10미터 이상 높이로 솟아 있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좁은 틈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식물들이 바위 틈새에서 자라고 있었다. 참나무, 소나무, 관목들. 오렌지색 바위와 초록 식물의 대비가 눈부셨다.

가이드가 우리를 특별한 지점으로 데려갔다. 바위 절벽 사이의 좁은 틈. 그곳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생트빅투아르 산의 정상이 보였다. "세잔은 이 구도를 사랑했습니다. 전경의 따뜻한 오렌지색 바위와 배경의 차가운 파란 산. 가까운 것과 먼 것,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의 대비. 이것이 그의 회화 언어였습니다."


채석장을 걸으며, 나는 그가 본 그 구도를, 그 색의 대비를, 그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바위를 만져봤다. 거칠고 따뜻했다. 수백만 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 로마인들이 깎아낸 흔적. 세잔이 화폭에 담은 형태. 시간의 층위들이 이 바위에 겹쳐져 있었다.

투어가 끝날 무렵, 가이드가 말했다. "세잔은 이곳을 '나의 모티프'라고 불렀습니다. 그에게 이곳은 아름다운 풍경 이상이었습니다.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실험실이었죠. 그는 여기서 현대 미술의 문을 열었습니다."

세잔의 눈으로 본 프로방스
엑상프로방스에서의 여행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한 예술가의 삶 속으로, 그의 시선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고, 사랑하고, 고통받고, 창조하고, 죽었다. 이 도시의 모든 돌, 모든 나무, 모든 빛이 그의 작품 속에 살아 있다.

"엑상프로방스에 있을 때는 다른 곳이 더 나을 것 같았지만, 여기 와보니 엑상프로방스가 그립다. 여기서 태어났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른 어떤 것도 충분하지 않다." 세잔의 이 말을 이제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파리에서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렸고,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곳의 빛과 형태를 화폭에 담았다.

자 드 부팡의 고요한 정원에서, 아틀리에의 빛 가득한 창가에서, 비베뮈스의 주황빛 절벽 사이에서, 화가들의 정원에서 바라본 생트빅투아르 산 앞에서, 나는 세잔의 숨결을 느꼈다. 그가 본 것을 보고, 그가 느낀 것을 느꼈다.

그라네 미술관에서 본 걸작들은 박물관의 소장품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태어난 생명체였다. 자 드 부팡의 정원에서, 비베뮈스의 바위 사이에서, 생트빅투아르 산 앞에서. 세잔의 그림은 이 풍경의 기록이라기보다, 이 풍경과의 대화였다. 그는 본 것을 그리지 않고, 느낀 것을 그렸다.

2025년 세잔의 해는 기념행사를 넘어선다. 엑상프로방스가 자신의 가장 유명한 시민과 재회하는 해이며, 세잔을 그의 사랑하는 도시의 중심에 다시 자리 잡게 하는 새로운 순환의 시작이다. 그리고 나는 그 특별한 순간의 목격자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그라네 미술관의 '세잔, 자 드 부팡에서' 전시는 2025년 10월 12일이면 막을 내린다. 이 역사적인 전시가 끝나면, 전 세계에 흩어진 세잔의 걸작들은 다시 각자의 미술관으로 돌아갈 것이다. 파리의 오르세,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 이 작품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 과연 올까?

세잔의 복원된 저택들도 놓칠 수 없다. 자 드 부팡과 로브 아틀리에는 수년간의 대규모 복원 작업을 거쳐 2025년 여름 재개관했다. 이제 우리는 세잔이 실제로 살고 일했던 공간을, 그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그가 바라봤던 풍경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미술관 관람이라기보다, 예술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여행이다.

세잔이 사랑했던 빛은 여전히 이곳에 있다. 생트빅투아르 산은 여전히 저기 서 있다. 비베뮈스의 주황빛 바위는 여전히 햇빛을 받아 빛난다. 미라보 광장의 프로방스 시장은 여전히 삶의 소리와 향기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의 아틀리에 창으로는 여전히 그 특별한 프로방스의 빛이 쏟아진다.

"여기서 태어났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세잔의 엑상프로방스는 지금도, 여기에 있다. 세잔의 발자취를 따라, 현대 미술의 시작점으로 가는 여행을 지금 시작하라.

※ 취재 협조 : 프랑스 관광청, 에어프랑스, 프로방스 알프 코트다쥐르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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