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케데헌’ 매기 강 감독을 통해 본 재외동포에 대한 새로운 시선
1980년대, 다섯 살 소녀가 가족과 함께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세계인에게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 이야기다.
이런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낯선 땅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부모 세대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 재외동포가 불과 한 세대 만에 어떻게 모국의 위상을 높이는 ‘핵심 파트너’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재외동포 콘텐츠 기획자의 시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모국의 지원 대상이었던 ‘재외동포’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수많은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세계 곳곳으로 터전을 옮겼다. 과거 이민 1세대 대표적인 정착지 미국(261만 명. 2023년 재외동포청 발표)의 상황을 살펴보자.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난 그들, 하지만 그들 앞에 펼쳐진 현실은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 주류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은 단단했다.
때문에 의사 자격증을 가진 이민자가 택시를 몰았고, 대학 교수였던 이가 도넛을 만들어 팔아야 하는 현실이었다. 언어의 벽, 문화의 차이, 그리고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른바 ‘버티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한민국에 그들은 ‘지원 대상’이었고, 그 지원은 ‘생명줄’과 같았다. 한글학교 교재 지원, 민족 축제 후원, 동포 단체 육성.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도 '코리안'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이들을 향한 최소한의 연대였다.
‘깨진 유리천장’, ‘한강의 기적’ 두 변화의 바람
변화의 바람은 재외동포 사회 안과 밖에서 동시에 불어왔다. 안에서는 이민 1.5세와 2세대가 성장했다. 부모 세대의 헌신 위에서 높은 교육을 받고, 모국어와 현지어 모두 구사 가능한 이들은 두 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현지 사회 각계각층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직은 물론, 정계(앤디 김)와 문화계(스티븐 연, 이민진 작가)로 진출하며 단단했던 유리천장을 깨기 시작했다.
동시에 모국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으며, 삼성, LG 등 테크 기업과 BTS, 오징어게임 등 K-컬처가 전 세계를 매료시켰다. 이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재외동포에게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강력한 ‘자긍심’과 ‘문화적 자본’을 선물했다. 모국의 성장은 재외동포의 사회적 입지를 강화했고, 재외동포의 성공은 다시 모국의 위상을 높이는 자랑스러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냈다.
“내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한국”
매기 강 감독은 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영화는 “내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한국과 K팝 문화에 바치는 헌사이자 러브레터”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는 이민자로서 겪었을 수많은 도전과 외로움, 그리고 마침내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의 꽃을 피워 낸 한인으로서의 서사가 담겨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지 한 명의 성공 신화가 아니다. 그 성공의 배경에는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과, 이미 곳곳에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던 다른 재외동포들의 노력이 있었다. 또한 재외동포였기에 가질 수 있었던 ‘경계인(Marginal Man, 한국인과 외국인의 경계에 선 사람)’의 시선은, 한국 문화를 세계인의 눈높이에서 흥미롭게 해석하고 표현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녀의 가장 큰 자산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랑, 그리고 자긍심이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재외동포를 단순히 ‘해외 거주 한인’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동반자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이제 그들은 모국의 밝은 미래에 기여하고자 다시 대한민국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글로벌 경험으로 모국의 미래를 열다
이제 재외동포는 각자의 영역에서 모국을 빛내는 ‘문화 외교관’이자 ‘경제 가교’가 되었다. 매기 강 감독처럼 이민 경험을 가진 창작자들은 K-컬처와 현지 문화를 융합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셰프 데이비드 장과 로이 최는 한식을 세계 미식 트렌드의 중심으로 이끌며 ‘음식 외교’의 새 역사를 썼다. 실리콘밸리의 한인 창업가들은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혁신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러한 기여는 문화와 경제를 넘어, 미래 세대를 향한 지식 나눔으로도 이어진다. 지난 9월 초에는 10개국 50여 명의 현직 한인 정치인이 재외동포협력센터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제11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 참석을 위해서다. 주목할 점은 이들 중 신디 류 워싱턴주 하원의원 등 7명의 정치인이 한국의 고등학생, 대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모국 청년들에게 글로벌 무대에서의 경험과 비전을 전하고, 리더로 성장할 동기를 주기 위해서다.
그중 아이린 신 미국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은 지난 5일 한국외국어대학교 강단에 섰다. 그녀는 이민자로서의 성장 과정과 정치인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생생히 전하며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는 용기와 이를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장에서 만난 한 학생은 “글로벌 안목을 키우는 소중한 자리였다”며 벅찬 소감을 밝혔다.
낯선 땅에서 성공한 선배들이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모국의 미래 세대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의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
생존을 위해 낯선 땅에서 땀 흘려야 했던 재외동포는, 이제 모국의 성장을 이끄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우리 곁에 서 있다. 이제 우리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도와줘야 할 대상’이라는 낡은 관점에서 벗어나, 그들의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존중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협력 파트너’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재외동포 개개인이 현지에서 쌓은 전문성과 인맥, 그리고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합될 때, 그 파급효과는 배가 된다. 한 명의 재외동포 셰프가 현지에서 한식당을 성공시키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성취에 그치지 않고, 한국 농산물 수출 확대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전 세계 700만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을 잇는 ‘수평적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들의 지혜와 경험을 모국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이것이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