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 관리의 기반, 제도·표준화는 여전히 미흡

서울에 사는 60대 A씨는 당뇨로 세 곳의 병원에 다니지만, 병원마다 시스템이 달라 매번 같은 혈액검사를 반복해야 한다. 의료마이데이터가 제대로 구축됐다면 피할 수 있는 불편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환자의 진료·복용 기록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의료마이데이터는 만성질환 관리와 맞춤형 진료의 핵심 기반으로 꼽힌다. 그러나 수년째 추진되는 사업은 제도와 데이터 호환성 문제 앞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지난 8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이 원하는 진짜 의료혁신’ 토론회에서도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국민이 원하는 진짜 의료혁신’ 토론회가 8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김정아 기자

강은경 카카오헬스케어 상무는 “마이데이터는 디지털 전환의 기반”이라며 “고령화로 약물 복용과 부작용 관리가 중요해지는 만큼, 환자가 스스로 복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케어챗’ 서비스에 적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의료마이데이터가 만성질환 관리의 필수 인프라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선재원 나만의닥터 공동대표는 “비대면 진료는 이미 492만 명이 사용했고, 월 20만 건 이상 이뤄지고 있다”며 “비대면 진료의 질과 안전성을 높이려면 의료마이데이터가 단절되지 않고 연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맞춤형 의료 구현을 위해서는 데이터 흐름을 안정적으로 이어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김은정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보험 청구 데이터는 행정 자료라 한계가 있고, EMR과 연동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의료데이터 소유권 논란과 법 적용 불일치가 혁신을 막고 있다.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은경 카카오헬스케어 상무가 의료마이데이터의 필요성과 ‘케어챗’ 서비스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은 ‘건강정보 고속도로(마이헬스웨이)’ 사업을 통해 현재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개소와 종합병원·의원 등 총 860개 의료기관을 데이터 네트워크에 연계했으며, 2025년 하반기까지 1,263개 기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올해는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최대 19만 명 규모), 디지털헬스케어 법 제정 추진, 마이데이터 기반 서비스 발굴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의 청사진과 달리 현장의 체감 성과는 여전히 부족하다. 병원마다 다른 전자의무기록(EMR) 체계와 표준화 미비, 개인정보 활용을 둘러싼 불신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 현장에서는 ‘그림의 떡’이라는 냉소적 평가가 반복된다. 실제 환자와 의료진이 의료마이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의료마이데이터는 고혈압·당뇨·우울증 같은 만성질환 환자에게 반복되는 검사와 처방 절차를 줄여줄 수 있고, 의료진에게는 환자의 복용 이력과 건강 정보를 즉시 제공해 진료의 질을 높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크다. 하지만 데이터 표준화, 법적 정비, 개인정보 보호, 국민 신뢰 확보가 병행되지 않으면 혁신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위험이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의료마이데이터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이유는 결국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제는 더는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정부의 추진과 법제화 없이는 의료마이데이터는 국민에게 닿지 못한 채 ‘끝없는 공사 중 도로’로 남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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