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파리스바에서 열린 아트 살롱 '살롱 로맨티크 2' 현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오늘(1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파리스 바는 평소와 다른 특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샹들리에가 은은하게 비추는 클래식한 프렌치 인테리어 사이로 탱고 선율이 흘러나오고, 벽면에는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이미지가 변화하는 신비로운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더 트리니티 갤러리(대표 박소정)가 키아프(Kiaf)와 프리즈(Frieze) 서울 위크를 기념해 마련한 아트 살롱 프로그램〈SALON ROMANTIQUE 2 : with Artist BAE JOON SUNG〉이 개최된 현장이었다.

2022년 프리즈가 아시아 진출의 거점으로 서울을 선택하면서, 키아프와 더불어 서울의 9월은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골든타임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서울패션위크까지 더해져 한 달 내내 글로벌 문화 허브로서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번 '살롱 로맨티크 2'는 전시 관람을 넘어서, 18세기 프랑스 살롱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술과 음악, 그리고 관객 간의 대화가 어우러지는 이 특별한 경험은 급변하는 현대 미술계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배준성 작가(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이번 행사의 주인공인 배준성 작가는 1967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독특한 작품 세계로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렌티큘러(Lenticular)와 회화를 결합한 기법을 작품에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렌티큘러는 원래 사진 기법 중 하나로, 최대 12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를 겹쳐서 깊이감과 입체감을 표현하는 기술이다. 배준성은 이 기법을 회화와 결합시켜, 관람자의 이동과 시선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미지가 나타나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파리스바에서 열린 아트 살롱 '살롱 로맨티크 2' 현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

현장에서 만난 큐레이터는 "오늘 이곳에 전시된 배준성 작가의 작품들을 잘 보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작품들이 종종 보일 것이다. 기존의 서양 작품에서 봤을 법한 모티프들이 나오는데, 그 기존의 서양 미술 작품 이미지에 동양인 여성 누드가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그림으로써, 기존 서양 미술 체계를 약간 비웃듯이 풍자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배준성의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하나의 작품 안에 상반되는 여러 의미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그의 작품들은 관람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작품의 경우 한쪽에서 봤을 때는 한 송이 꽃밖에 없지만, 다른 쪽에서 봤을 때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가 나오면서 이중성을 표현한다. 한 화면에 여러 가지 의미를 겹치는 작업"이라는 큐레이터의 설명처럼, 그의 작품은 '보는 행위' 자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동시대적 시선 실험으로 평가받고 있다.

배준성〈The Costume of Painter〉 시리즈(사진촬영=서미영 기자)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The Costume of Painter〉 시리즈는 박물관을 배경으로 한 고전적 회화와 현대적 감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관람자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며, 고정된 회화의 관념을 뒤흔들었다.

이번 행사에서 특별히 주목받은 것은 음악 큐레이션이었다.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이 맡은 음악 선곡은 작품과 완벽한 싱크로를 이루는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김태훈은 배준성 작가의 작품에 대해 "그림들이 굉장히 이중적인 게 재미있었다. 중첩돼 있는 이미지들이 있어서, 한 사람 안에 있는 두 개의 자아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하나는 시선이 바뀔 때마다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바뀌는 그런 효과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그가 선택한 음악은 탱고였다. "음악이 어떤 게 좋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우아하면서 정중한 옷차림도 있지만 내면의 어떤 열정도 가지고 있는 그래서 탱고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탱고라는 음악이 사실은 굉장히 퇴폐적이면서도 우아한 음악이고, 격정적이면서도 굉장히 슬픈 음악이다."

김태훈의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그의 그림은 마치 각기 다른 두 개의 자아가 한 사람 안에서 손을 맞잡고 추는 탱고 같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탱고와 보사노바 장르의 곡들이 흘러나오며, 작품 속 우아한 옷차림과 벌거벗은 누드의 대비, 고전과 현대의 충돌을 음악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파리스바에서 열린 아트 살롱 '살롱 로맨티크 2' 현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이번 행사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장소였다. 일반적인 갤러리나 미술관이 아닌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파리스 바에서 열린 이 전시는, 호텔과 갤러리가 협업하는 새로운 전시 플랫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파리스 바의 클래식한 프렌치 무드는 배준성 작가가 주로 작품의 배경으로 삼아온 프랑스 뮤지엄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샹들리에 아래 걸린 작품들은 마치 18세기 프랑스 귀족들의 살롱에서 벌어지는 예술적 토론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현장을 찾은 관객들은 샴페인 잔을 들고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며, 큐레이터와 작가, 음악 큐레이터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이는 기존의 정적인 전시 관람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살아있는 예술 경험이었다.

박소정 더 트리니티 갤러리 대표는 이번 행사의 의미에 대해 "18세기 프랑스의 살롱이 예술과 철학, 음악과 문학이 교차하는 사교와 지성의 장이었듯,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과 음악이 만나는 살롱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확장해 보고자 한다"라며 명확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녀는 또한 "살롱의 본질이었던 대화와 교류를 오늘날의 언어로 되살려, 예술을 향유하는 또 하나의 방식을 열어가고자 한다"며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이번 '살롱 로맨티크 2'는 2023년에 열린 첫 번째 행사에 이은 시리즈 프로그램으로, 더 트리니티 갤러리의 지속적인 실험 정신을 보여준다. 단순히 작품을 걸어놓고 보는 기존의 전시 방식에서 벗어나, 음악과 대화, 그리고 특별한 공간이 어우러진 총체적 예술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다.

특히 서울이 글로벌 아트 허브로 부상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러한 실험적 프로그램들이 서울 미술계의 독특함과 창의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뉴욕이나 런던, 파리와는 다른 서울만의 예술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런 시도들이 갖는 의미는 크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파리스바에서 열린 아트 살롱 '살롱 로맨티크 2' 현장(사진촬영=서미영 기자)

이번 행사에는 미술계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다수 참여했다. 평소 갤러리 방문이 부담스러웠던 관객들도 호텔이라는 친숙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관객은 "작품을 보면서 음악을 듣고, 작가와 큐레이터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작품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관객은 "탱고 음악과 함께 보니 작품의 이중성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특히 렌티큘러 작품의 특성상 관람자가 직접 움직이며 감상해야 하는 특징 때문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작품 주변을 돌아다니며 서로의 반응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정적인 감상에서 벗어난 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전시 경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배준성 작가가 추구하는 '보는 행위의 해체와 재구성'이 단순히 작품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전시 공간과 관람 방식 전체로 확장된 셈이다. 관객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듣고, 들리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예술적 대화를 경험하며, 예술이 일상과 만나는 새로운 접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러한 시도들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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