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의 소녀 엔지니어들, ‘레고 로봇’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다
레고 브릭으로 세상을 바꾸는 꿈을 키우는 여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여자아이는 만들기를 잘 못한다’는 편견에 맞서 레고 로봇으로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실력을 증명했다.
지난 4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2025 퍼스트 챔피언십’에서 종합 3위에 오른 팀 레드(Team RED). 안산 지역 초·중등 여학생 10명과 남학생 1명으로 구성된 팀 레드는 전 세계 170여 개 팀이 참가한 권위 있는 대회에서 '챔피언상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되며 한국 청소년 공학 실력을 세계에 알렸다.
레고그룹이 21개국 아동과 부모 3만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아 10명 중 7명은 자신이 '만들기'를 잘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이런 현실 속에서 팀 레드의 성과는 더욱 의미 깊다. 이들은 레고그룹의 ‘She Built That(내가 만든 작품)’ 캠페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어린이가 창의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양식 어류의 집단 폐사를 막고 싶었어요.” 팀장 유재은(한국디지털미디어고 1년) 학생이 이번 대회 출품작인 '가두리 양식장의 기포 순환 장치'에 대해 설명하는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단순한 장난감 조립이 아닌, 실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진짜 엔지니어링이었다.
2015년 여학생 중심으로 재창단된 팀 레드는 ‘Robot Engineering Designer’와 ‘Real Energy Designer’의 줄임말이다. 로봇 공학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이들은 매년 퍼스트 레고 리그에 참가하며 꾸준히 실력을 쌓아왔고, 2023년에는 모로코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로봇 경기 및 로봇 디자인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팀 레드 멤버들은 “STEAM 분야는 여학생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분야”라며 “직접 도전해보면 코딩이나 과학이 결코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또래 여학생들에게 용기를 전했다.
레고 브릭 하나하나를 쌓아 올려 세계 무대까지 올라선 이들의 이야기는 화려한 수상 경력 이면에 숨겨진 편견을 깨뜨린 용기와 꿈을 향한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Q.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유재은(팀장): 안녕하세요. 저희는 레고와 로봇 공학에 관심이 있는 안산 지역 여자 청소년을 중심으로 구성된 레고 로봇 창작 팀 'RED'입니다. 2014년 창단 후 2015년부터 2025년 올해까지 매년 '퍼스트 레고 리그'에 참가하며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올해는 특히 대회에 처음 참가하는 친구들이 네 명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열린 월드 챔피언십 대회에서 종합 3위에 오르며 한국 청소년들의 엔지니어링 실력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Q. 레고를 언제 그리고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셨나요? 레고 브릭과 STEAM이 결합된 퍼스트 레고 리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유재은(팀장): 어릴 적부터 만들기를 좋아해 조립 장난감을 자주 갖고 놀았고, 레고와 로봇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저보다 먼저 퍼스트 레고 리그에 참여한 여자 선배가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팀원들과 함께 로봇을 만들고, 도전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멋져 보여 RED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박사랑: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의 지원으로 레고 로봇 코딩을 배우기 시작했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레고 브릭의 재미에 빠져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레고 로봇 대회가 있다는 걸 알고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교하고 화려한 로봇을 만들고 작동하게 하는 여자 선배들의 모습이 멋있어서, 선배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김은서: 저는 9살 무렵부터 레고 브릭 조립에 큰 흥미를 가졌고,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권유로 초등학교 4학년 때 퍼스트 레고 리그에 처음 참가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그 대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레고 놀이를 통해 창의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고, 참가하는 횟수가 늘면서 점차 자신감도 붙기 시작했습니다.
김지아1: 오빠를 따라 4살 때 처음으로 레고 브릭을 조립해봤습니다. 오빠가 퍼스트 레고 리그에 나갔을 때는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여자 선배들이 참가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자신감을 갖고 팀에 합류했습니다.
Q. 여자친구들끼리 팀을 꾸리게 된 계기와, 팀명(RED)에 담긴 의미가 궁금합니다. 각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도 소개 부탁드립니다(Robot Engineering Designer 외 의미가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유재은(팀장): 로봇을 좋아하는 여자 친구들이 주변에 많지 않아 저희끼리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친언니가 2018년부터 2024년까지 RED팀에서 활동하며 팀과 대회에 대해 잘 알게 해주었고, 언니를 보며 꿈을 키워 참가 연령이 되자 바로 RED팀에 합류했습니다.
팀명 RED는 Robot Engineering Designer와 Real Energy Designer의 약자입니다. 퍼스트 레고 리그에서는 각 팀의 핵심가치가 심사 부문 중 하나입니다. RED라는 팀명에는 로봇을 좋아하는 것은 기본이고, 대회 안팎에서 만나는 많은 다른 팀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파하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각자의 역할을 살린 팀워크가 빛났습니다. 저는 팀장으로서 로봇 미션을 담당하는 테크니션 역할과 엔지니어링 노트 작성, 팀원 격려에 집중했고, 고학년 팀원들은 로봇 경기, 어린 팀원들은 프로그램 설계와 자료 조사에 주로 참여했습니다.
김솔민은 주로 파이썬 프로그래밍과 혁신 프로젝트 실험을 맡았습니다.(김솔민 군은 유재은 학생을 대신해 지난 4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2025 퍼스트 챔피언십’에 팀장으로 참가해 세계대회에서 팀을 이끌기도 했다.) 박사랑은 동생들을 챙기며 팀 회의와 연습을 지원했습니다. 장윤서는 팀에서는 분위기 메이커, 경기에서는 로봇 조작을 담당했으며, 김은서와 유하선, 최지호는 로봇 제작과 코딩, 경기 운영을 맡아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김지아1은 간단한 메커니즘 제작과 테스트를, 김지아2는 발표용 그림과 영어 대본 준비에 집중했습니다. 이하율은 어린 동생들이 프로그램 작성과 자료 조사에 참여하도록 돕고, 강다연은 로봇 베이스 제작과 테스트를 담당했습니다.
Q. 로봇이나 과학 분야는 아직도 남자아이들이 더 많이 한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활동에 도전할 때 주변 친구나 가족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유재은(팀장): 어렸을 때부터 로봇을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여기며 자연스럽게 접해왔습니다. 특히 FLL을 준비하고 세계대회까지 다녀오면서 '누가 하는지'보다 '어떻게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제가 진심을 다해서 임하다 보니 주변에서도 저를 응원해 주십니다.
박사랑: 처음엔 여자인 제가 로봇 대회를 나간다고 하면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실제로 대회에서 여학생들로만 이뤄진 팀은 저희뿐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과 원동력이 되었고, 가족들의 응원 덕분에 열심히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장윤서: 주변에 코딩을 낯설어 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물며 로봇을 만든다고 하면 아직 어렵게만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주변 가족과 친구들이 제 도전을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Q. 이 활동을 하면서 주변의 응원이나 격려가 힘이 되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김솔민(공동팀장): 올해 중학교 3학년이다 보니 수행평가, 고등학교 진학 등 고민이 많아 세계대회 참여를 망설였지만, 부모님과 선생님께서 제 삶에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부담 없이 도전했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박사랑: 대회를 준비하며 내가 잘 못하는 것 같고, 학업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해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엄마의 응원과 격려, 팀원들이 주는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힘을 내 대회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Q. 2024-2025 시즌 퍼스트 레고 리그 코리아에 출전해 선보인 ‘가두리 양식장의 기포 순환 장치’ 솔루션을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유재은(팀장):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양식 어류의 집단 폐사를 막기 위해, RED팀은 기포를 활용한 해수 순환장치를 개발했습니다. 한여름에는 단 1도의 수온 차이가 어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두리 양식장 아래에 설치한 튜브와 기포 장치를 통해 표층의 따뜻한 물과 저층의 차가운 물을 섞어 수온을 낮추는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Q. 아이디어를 실제 모델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했나요?
유재은(팀장): 이번 솔루션에서 기포를 고르게 발생시키는 과정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구멍을 뚫고 공기를 넣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팀원이 힘을 합쳐 다양한 기포 장치 사례를 조사하고 기포 구멍의 크기와 간격, 공기압 등을 조절하며 반복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팀원 간의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균형 있게 기포가 분산되는 효과적인 모델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Q. 한국 리그 우승 후 지난 4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2025 FLL 월드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팀으로 참가한 성과와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유재은(팀장): 저는 아쉽게도 학교 시험일정으로 인해 월드 페스티벌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지만, 팀원들을 마음으로 응원했고 좋은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 듣고 함께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퍼스트 레고 리그는 ▲로봇 경기 ▲로봇 디자인 ▲혁신 프로젝트 발표 ▲핵심가치 등 4개 부문을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RED팀이 수상한 챔피언 파이널리스트는 170여 개의 참가 팀들 중에서 모든 부문에서 최고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팀만 받을 수 있는 최상위 종합상입니다. 이전에도 챔피언 수상 경험은 있었지만, 퍼스트 레고 리그의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월드 페스티벌'에서 한국 대표팀으로 챔피언 파이널리스트에 처음 선정된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성과입니다.
팀 일동: 한국을 대표해 세계 대회에 참가하게 되어 큰 영광이었고, 최선을 다한 결과 챔피언 파이널리스트 상을 받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다양한 나라의 팀들과 교류하며 우리 팀의 아이디어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다는 것을 느꼈고,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고 싶습니다.
Q. 레고 창작을 통해 가장 크게 성장했다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창의력, 자신감, 팀워크 등 다양한 측면에서 '내가 생각보다 이것도 잘하는구나!' 하고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나요?
김솔민(공동팀장): 실생활에서 쓰이는 여러 기계적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레고 브릭으로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작동 방식을 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유하선: 제가 생각보다 소통을 잘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레고 로봇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친구들, 선배들, 코치님 등 여러 사람들과의 협동이 필수적인데, 팀 구성원으로서 원활하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제 장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김지아2: 예전에는 쉽게 포기하는 편이었지만, 이번 활동을 통해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려는 끈기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렀습니다.
강다연: 저는 창의성과 팀워크를 배웠습니다. 레고 브릭으로 어떻게 로봇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상상하며 창의성을 길렀고, 팀원들과 함께 미션을 수행하며 팀워크도 키웠습니다.
Q. 이번 경험이 앞으로 어떤 진로 혹은 꿈을 갖게 하는 데 영향을 줬나요? 앞으로 레고 브릭으로 또 어떤 로봇을 발명해보고 싶나요?
유재은(팀장): 퍼스트 레고 리그의 여러 시즌에 참가하며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웠고, 협업을 통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과정이 매우 뜻깊었습니다. 앞으로 제 아이디어로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김솔민(공동팀장): 나사(NASA)의 우주망원경이 찍은 은하나 성운 사진들을 인상 깊게 본 뒤로 우주 발사체를 개발하는 꿈을 키웠는데, 이번 대회 준비 과정과 현장에서 배운 AI 기술과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 꿈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 인공위성의 움직임을 레고 브릭과 코드로 직접 구현해 보고 싶습니다.
최지호: 직접 코딩한 로봇이 미션을 척척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컴퓨터 관련 진로를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대회에 출전하며 팀에 도움이 되는 로봇을 만들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STEAM 분야에 관심이 있는 또래 여자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유재은(팀장): STEAM은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도전해보면 누구나 흥미를 느끼고 성장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특히 퍼스트 레고 리그는 서로 다른 강점의 친구들이 만나 팀으로 성장하는 경험이 매우 특별하고,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모습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박사랑: STEAM은 여학생도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사고와 폭넓은 시야, 다른 사람의 의견도 포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대회를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모두 꿈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기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파이팅!
김은서: 제 또래 여자 친구들에게 일단 도전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번 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공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팀워크 등 여러 방면에서 크게 성장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김지아2: 처음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해보면 정말 재미있고 내가 몰랐던 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로봇이나 과학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분야고, 누구든 관심만 있다면 시작할 수 있으니까 용기를 내서 꼭 도전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하율: STEAM 교육은 생각하는 힘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키울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몰랐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STEAM에 관심 있는 제 또래 친구들도 자신감을 갖고 도전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팀 일동: 직접 해보면 코딩이나 과학이 결코 어렵거나 지루한 분야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고, 문제를 스스로 생각하며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관심이 있다면 꼭 용기를 내 도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