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로봇, 초고령사회의 자립을 돕는 기술이 될 수 있을까
에이지테크 Part 2-4
실제 사용은 언제쯤? 국내 고령자용 웨어러블 로봇의 현주소
“집 앞 편의점도 혼자 가기 어려워요. 발에 힘이 없어 자꾸 휘청거리니까요.”
78세 박모 씨의 말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2024년 12월 기준,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섰다(행정안전부·통계청 발표 기준). 유엔 기준에 따른 ‘초고령사회’다. 일본(2006년)보다 18년, 프랑스(2024년)보다 수십 년 뒤에 진입했지만,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2000년 고령사회(7%) 진입 이후 불과 24년 만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고령자의 이동성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 근력이 약화하면서 낙상 위험이 커진다. 이에 따라 의료비와 간병 비용이 증가할 뿐 아니라, 이동성이 제한되며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이동성이 제한된 고령자는 사회적 고립과 우울증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고령자의 이동성이 고령화 시대의 핵심 보건 이슈로 떠오르는 이유다.
웨어러블 로봇의 기술 진화와 시장 확장
웨어러블 로봇은 의료, 산업, 군사, 돌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초기에는 군사용 외골격 기술에서 시작해 산업 현장의 근력 보조, 의료기관 재활훈련 등으로 적용 영역을 넓혀왔다.
시장조사업체 IMARC의 ‘Wearable Robots Market: Global Industry Trends 2024-2030’ 보고서(2024년 발간)에 따르면, 글로벌 웨어러블 로봇 시장은 2024년 약 17억 9000만 달러(약 2조4000억 원)에서 2030년 162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44%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 KIST, 삼익THK, 대구경북과기원(DGIST) 등에서 기술 고도화와 실증을 병행 중이다.
최근에는 고령자 보행 보조 등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소비자 제품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보행 보조를 위해 의료 현장이나 고령자 가정에 보급된 웨어러블 로봇은 아직 드물다.
일본 복지시설 및 병원 수백 곳에 도입돼 근력 회복과 낙상 예방에 활용되고 있는 일본 사이버다인의 HAL은 재활 목적의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으로 고령자 보행을 보조하는 기능도 있지만, 고령자만을 위한 전용 제품은 아니다.
국내에서 개발된 웨어러블 로봇 중, 현재 웰니스 기기로 상용 출시되어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 중인 제품은 위로보틱스의 ‘WIM’이 유일하다. 비교적 가벼운 무게(1.6kg)와 일상 보조 기능을 갖춘 이 제품은 2024년과 2025년 CES 혁신상을 수상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다만 고령자 대상 실사용 사례나 복지 시설 도입은 아직 제한적인 수준이다.
이밖에 고령자의 낮은 웨어러블 기기 수용성도 상용화를 더디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2025년 발표한 ‘디지털 포용 및 접근성 종합보고서’에서 ‘착용 용이성’, ‘외형 심리적 거부감’, ‘가족 설득 요인’을 고령자 대상 웨어러블 기기의 확산을 저해하는 핵심 조건으로 꼽았다. 실제로 다수의 선행 연구에서도, 고령자들이 기기의 무게, 배터리 지속 시간, 외형에 대한 심리적 부담 등으로 인해 착용을 꺼리는 경향이 보고된 바 있다.
기술과 제도, 간극은 왜 클까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고령자 케어와 연계한 외골격 로봇 시범 사업을 공공복지제도 안에서 일부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제도권 밖에 머물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복지용구’ 등재 기준은 여전히 휠체어나 워커 등 전통적 장비 중심이다. 웨어러블 로봇은 기계적 구조와 전장 기능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제품으로, 복지용구로 등재된 사례가 없어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의료기기로 분류될 경우 식약처 인허가와 인증 시험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비의료기기로 출시되면 보험 적용이나 의료기관 실증이 어렵다.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일상형 헬스케어 웨어러블’은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리스크가 크다. 소비자 대상 B2C 시장은 가격 접근성이 낮고, 병원 등 B2B 시장은 수가 미적용으로 공급 유인이 떨어진다.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넓은 가격대에 비해 활용처는 제한적이다. 게다가 웨어러블 로봇의 안전성, 내구성, 배터리 폭발 위험 등 기술적 불확실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기술은 상용화에 근접했으나, 사용자 맞춤형 설계와 반복 실증, 법·제도 정비가 병행되지 않으면 실제 시장 형성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웨어러블 로봇이 고령자의 자립을 돕는 일상 기술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향후 3~5년 내 제도적 기반 마련과 사용자 중심 설계가 병행돼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중장기적 로드맵 마련도 필요하다.
또한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복지시설 등 관계 부처와 현장 기관이 연계된 전주기 실증 기반 정책의 추진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위해 복지용구 등재 기준 완화, 제품군 신설, 실사용 기반 실증사업 확대 등의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특히 ‘비의료 웨어러블 로봇’이라는 별도 품목 분류 도입, 복지용구 수가체계와 연계한 보조금 지원 모델 마련 등이 실효성 있는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고령자의 자립적 보행을 지원하기 위해 설계된 국내 웨어러블 로봇 사례를 중심으로, 고관절 보조 알고리즘과 병원 연계 실증 결과, 소비자 시장 진입 전략을 통해 실사용 가능성을 짚어보고, 복지 시스템과의 연계 가능성도 함께 조망할 예정이다.
※ 이 기사는 디지틀조선일보 창립 30주년 특집 ‘에이지테크 시리즈’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