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부터 회송까지, 중소병원이 설계한 환자 흐름 중심 협진 체계

“B의원 마취통증의학과 원장입니다. 환자분이 몇 차례 주사와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이 계속돼 신경외과 진료가 필요해 보입니다.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오전 10시, 성남시 지우병원으로 걸려 온 한 협력 의원의 전화다. 협진 전담 창구를 통해 즉시 접수된 의뢰는 1시간 내 신경외과 외래 예약으로 이어졌고, 환자는 당일 오후 진료를 받아 시술을 진행했다. 이후 증상이 현저히 호전되었으며, 진료 요약 소견은 다음 날 오전 협력 의원으로 회신 되었다.

지우병원은 성남 지역 20개 이상의 협력 의원과 외부 협진 시스템을 구축해, 월평균 약 23건의 협진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4~6월 기준 총 71건이 접수됐으며, ‘의뢰 → 예약 → 진료 → 회신 → 회송(또는 공동관리)’이라는 명확한 5단계 프로세스로 운영된다. 중소병원도 환자 흐름 중심의 협진 시스템을 현실적으로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권순만 지우병원 대표원장은 “중소병원도 협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제 환자 흐름을 통해 증명해 보고 싶었다”며 “협력 의원과 함께 진료의 끊김을 줄이고, 병원 간 실시간 회신이 가능한 구조를 직접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지우병원 의료진이 다학제 협진 회의를 통해 환자 케이스를 공유하고 있다. /사진 제공=지우병원

현실적 장벽 속에서 출발한 협진 시스템

협진은 의료 전달체계 개편의 핵심 과제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과 지역 병의원 간 회송 체계의 비효율성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4년 서울대병원의 경증 외래환자 회송률은 0.016%, 삼성서울병원은 0.030%, 서울아산병원도 0.798%에 불과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상급종합병원의 전체 회송률은 2% 안팎으로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는 협진 수가 개선, 정보 교류 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병원 간 정보 연계 한계, 낮은 수가 보상, 인력 및 비용 부담 등 현실적 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우병원의 시도는 병원이 자체적으로 운영 가능한 협진 시스템의 실현 가능성을 모색한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현재 지우병원은 분당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주요 상급종합병원은 물론, 성남 지역 1차 의원 20여 곳과도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협력 의원은 주로 정형외과,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재활의학과 등이며, 고령 환자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일부 협력 기관과는 상호 회송 및 공동관리를 포함한 유기적 연계가 이뤄지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상급병원 의뢰 없이도 중소병원 간 신속한 진료 연계가 가능한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지우병원은 상급병원 및 지역의원을 연계해 의뢰부터 회송까지 환자 흐름 전반을 고려한 협진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사진 제공=지우병원

협진 시스템의 한계와 과제

물론 지우병원의 협진 시스템은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다. 예컨대 환자 만족도 등 정량적 성과 지표가 아직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고, 회신은 대부분 구두나 전화로 이뤄져 정확한 수치화에도 한계가 있다. 병원 측은 데이터를 본격적으로 축적하며, 향후 전산화를 통해 프로세스를 체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협진 활성화 사례 자체가 많지 않으며, 특히 중소병원의 협진 시스템 구축은 더욱 어려운 현실이다. 협력 의원과 환자의 입장을 포함한 다각적 평가도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지우병원의 사례가 주는 의미는 분명하다. 협력 의원과의 유기적 연계를 바탕으로, 지역 내에서 환자의 진료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병원 간 협진 모델의 현실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작동한 협진 모델

이러한 협진 시스템은 실제 환자 사례에서도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수주 전부터 팔 저림과 어깨 통증을 겪던 40대 남성 A씨는 위례삼성정형외과에서 경추 7번 디스크 파열로 인한 신경 압박 소견을 진단받았고, 협력 병원인 지우병원 신경외과로 협진 의뢰됐다. 의뢰 직후 진료가 연계돼 신속한 내시경 디스크 제거술을 받은 환자는 “지금은 어깨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할 만큼 호전된 상태다. 이는 1차 의원의 정확한 판단과 2차 병원의 신속한 대응이 유기적으로 작동한 모범적인 협진 사례로 평가된다.

지우병원의 작은 실험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협진 시스템은 단일 병원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정부와 의료계가 협력해 정보 교류 인프라를 구축하고, 협진 수가를 현실화하며, 환자 중심의 연속 진료 체계를 지원할 때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소병원도 지역 협진 시스템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실험이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우병원의 사례는 앞으로의 의료 전달체계 개편 논의에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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