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CPR 줄었나…연명의료결정법 이후 변화 분석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병원 내 심폐소생술(CPR) 시행 양상이 달라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법 시행 이후 병원 내 CPR 환자의 사망 위험이 감소하고, 심폐소생술 증가세도 완만해졌다고 분석했다.
분당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오탁규·송인애 교수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활용해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병원 내 심폐소생술을 받은 전국 성인 환자 38만 488명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 중환자의학회 공식 학술지 ‘Critical Care Medicine’에 게재됐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생명 연장만을 위한 연명의료를 스스로 중단하거나 유보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2018년 2월부터 시행됐다. 심폐소생술(CPR), 인공호흡기 치료, 지속적 신대체요법, 체외막산소공급(ECMO) 등이 연명의료에 포함된다.
그동안 국내 의료 현장에서는 회복 가능성이 낮더라도 심폐소생술과 연명의료를 시행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의료진에게도 연명의료 중단 과정에서의 법적 부담이 존재했고, 이는 환자와 가족의 부담, 중환자실 과밀화 등과 연결된다는 논의가 있었다.
연구팀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실제 임종기 진료 양상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법 시행 전 5년(2013~2017년)과 시행 후 5년(2019~2023년)을 비교 분석했다. 제도 정착 과정의 영향을 고려해 2018년은 분석에서 제외했다.
분석 결과,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병원 내 CPR 환자의 상대적 사망 위험도(오즈비)는 0.90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단순히 더 많은 환자를 살렸다는 의미보다는, 심폐소생술 시행 대상이 변화하면서 상대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높은 환자 중심으로 치료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결과로 해석했다.
병원 내 심정지와 CPR 발생 증가세도 완만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에 따르면 법 시행 전에는 병원 내 심정지 및 CPR 건수가 연간 인구 10만 명당 6.5건씩 증가했지만, 시행 이후에는 증가 폭이 1.1건 수준으로 낮아졌다.
다만 이번 연구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전후를 비교한 관찰 연구로, 사망 위험 감소가 법 시행만의 직접적 효과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연구 기간 중환자 진료 체계와 CPR 프로토콜 변화, 환자군 특성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연구는 실제 의료 자원 배분 효과나 중환자실 운영 효율성을 직접 측정한 것은 아니어서, 의료 체계 전반의 변화로 확대해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임종기 진료 현장의 변화 가능성을 장기간 전국 단위 데이터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탁규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중환자 진료의 효율을 높이고 의료 자원 배분에 기여했음을 시사하는 결과”라며 “앞으로는 연명의료 결정의 양적 확대를 넘어 환자와 가족, 의료진이 함께하는 공유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가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