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이 "세상에 꼭 내야 할 책의 향기가 납니다" 말하게 한 '사나운' 세 작가 [인터뷰]
박정민 대표가 있는 출판사 '무제'에서 네 번째 책을 펴냈다. 제목은 '사나운 독립'. '사나운 독립'에는 나를 나로 살 수 없게 했던 것들에서 독립해 온전히 나로 서 있으려 노력하는 세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로 살 수 없게 했던 건 사실 때로는 엄마였고, 가족이었고, 때로는 연인이었다.
박정민 대표는 '사나운 독립'에 대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하며, 하나도 해결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저를 좀 돌아보게 해주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책을 덮으면서 그 말에 완전히 공감했다. '사나운 독립'을 읽으며, 아이가 태어나며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새어 나오지 말라고, 부랴부랴 덮어두기에 급급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쳤다. 그렇게 자기의 독립을 이룬, 최지현, 서평강, 문유림 작가와 마주 앉았다.
Q. '사나운 독립'은 독립 출판으로 발간되었던 책입니다. 그리고 지난 6월 출판사 '무제'에서 펴낸 네 번째 책이 되었습니다. 박정민 대표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가 궁금합니다.
"원고를 드렸는데, 해외 촬영 중 원고를 읽어보시고 메일로 답장을 주셨어요. '촬영이 있으니 혹시 기다려주실 수 있겠냐'라고 해주셨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배려가 느껴진 게 '그사이에 다른 좋은 출판사가 있으면 언제라도 가도 된다'라고 하셨어요. 저희는 '무제에서 관심 있으시대'라고 하며 긍정적으로 봐주셨던 곳을 반려하고 '무제'를 기다렸죠." (서평강·이하 서)
"그 메일에서 특히 마음이 따뜻했던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라는 (박정민) 대표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함께하겠다 싶었던 건, '세상에 꼭 내야 할 책의 향기가 납니다'라고 하셨던 것." (문유림·이하 문)
Q.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박정민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나실까요.
"저희가 다른 출판사에도 '사나운 독립'을 보냈어요.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적도 있고, 부정적인 답변을 받은 적도 있는데요. 그 내용이 '소재는 너무 좋고, 이야기에도 관심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팔아야 할지 의문이 든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박정민 대표님께서 처음 '이 책을 출간합시다'하고 미팅할 때, 마음 한구석에 죄송함이 있는 거예요. '안 팔리면 어떡하죠?'라고 걱정스레 여쭤봤는데, 대표님께서 '돈은 제가 벌면 되니까, 우린 좋은 책을 만들어보죠'라고 하시는 거예요. 세상에 꼭 들려줘야 할 이야기, 사람들이 듣고 생각이 바뀌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면, 누군가는 세상에 이 책을 내놔야 하는데 그게 대표님과 출판사 '무제'가 하는 일인 것 같다고 하셔서 그때부터는 100% 신뢰하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서)
"자기는 전혀 몰랐던 감정을 '사나운 독립'을 읽으면서 느끼게 돼 새롭고 신기했다는 경험을 말씀해 주셨어요. 동시에 두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 감동받았던 건 '이 출판을 계기로 앞으로 작가님들께서 계속 작업을 이어가실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어요. 저희는 첫 책이고, 완전히 신인 작가들이잖아요. 존중해주시는 느낌을 받아서 인간 박정민, 대표님 박정민으로 깊이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최지현 작가·이하 최)
Q. 책 한 권을 써 내려간 세 분의 작가님은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신지 궁금합니다.
"처음으로 아이를 보낸 어린이집 같은 반 엄마들이에요. 아이들의 결이 비슷하니 자연스레 엄마들이 궁금해지잖아요. 서평강 작가님과 저는 대학교 때 어떤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십년지기고요. 아이들을 통해 (최)지현이라는 너무 좋은 친구를 알게 됐죠. 처음부터 말이 잘 통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한 센터에서 황예지 작가님께서 하시는 '감정 출판'이라는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었거든요. 정해진 수업 기간 10주가 끝나니, 글을 쓸 동력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두 분께 글로 표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냐고 여쭤봤어요. 너무 흔쾌히 해보자고 하셔서, 황예지 작가님을 개인적으로 초빙했어요. 저희가 팀을 만들어서 1년 정도 글쓰기를 이어갔어요. 그런데 생업도 있고, 양육도 하다 보니, 글을 쓰기 위해 앉기까지가 힘들더라고요. 동력을 찾기 위해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청년 인문 실험에 공모했는데, 100팀 안에 선정돼 소정의 지원금을 받고 독립 출판을 하게 됐습니다. 공모한 이름은 '80년대 엄마들의 독립 출판'이었어요." (문)
Q. 그렇다면 세 분이 공통된 어떤 주제를 잡고 써 내려간 글들이 모인 걸까요.
"나는 누군지, 나는 지금 뭘 느끼는지,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길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주제가 잡힌 것 같아요. 저희 마음속 공통적인 관심사이기도 하고, 고민이기도 하고, 그렇게 이어진 것 같아요. 저희 셋이 신기하게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서)
Q. 말씀하셨듯이, 현실을 살아가면서 혹은 살아가기 위해 덮어두었던 감정을 꺼내서 직접 마주하며 적어 내려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아프기도 하고요.
"저는 직면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지점에서 쓴 글이라서요. 다시 돌아가서 나의 언어로 풀어내지 않으면 좀 당당하게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던 시점이었어요. 그 계기는 사실 아이가 가장 많이 제공해 줬고요. 제가 해왔던 것처럼 익숙한 방법으로 회피하거나, 도망치는 모습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보다 다시 돌아가서 직면하고, 저의 언어로, 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필요했던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최)
Q. 최지현 작가님의 글 '남자 없는 여자들'에 대한 소개를 직접 듣고 싶어요.
"남편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남자 없는 여자들이 사는 집 티가 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듣고 깨달았어요. 그러고 보니 저는 아빠나 외할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엄마와 외할머니 손에 자랐거든요. 자라면서 엄마와의 갈등을 전쟁처럼 치렀고, 엄마는 또 외할머니와 그런 게 있고요. 여자들의 역사가 얽히고설켜 있는 거죠. 저는 제가 살아오면서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질문을 항상 품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답을 찾으려면, 나를 키웠던 사람들과 그들의 관계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의 시선으로 정리하고, 다시 돌아보며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까지 돌아가 직면하려고 했던 과정이 '남자 없는 여자들' 입니다." (최)
Q. 그렇게 힘들게 완성한 글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아, 해냈다. 나아갈 수 있겠다.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겠다." (최)
Q. '남자 없는 여자들' 속에서 아이의 그림책을 보며 되뇌인 말이 나와요. '너는 이미 그런 사랑을 가졌으니…아무렴, 너는 천하무적이란다. 듣고 싶었던 말을 한다'라고 아이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말하는 부분에 마음이 많이 움직였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한테 내가 가장 받고 싶었던 게 결국 사랑이었다는 것을, 글을 쓰면서 깨달았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방어기제처럼 '나도 별로 (엄마에게) 사랑을 원하지 않아'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감정을 크게 존중받지 못한 상황에서 자라면서 그걸 되게 도외시하게 된 결과로 제가 있었기에, (감정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써야 하는지 몰랐던 거죠. 기억을 더듬어 가보니 결국 '사랑을 받고 싶었구나', 남편, 친구 이런 대체물이 아닌 '온전히 딸로서 받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싶었구나! 깨달았어요. 그래서 아이에게는 '뭘 잘하든 아니든, 무조건 사랑을 듬뿍 주자'라는 생각을 해요." (최)
Q. 서평강 작가님의 글 '나선형의 물'에 대한 소개도 듣고 싶습니다.
"제목이 '나선형의 물'인데요. 제가 우울증도 공황도 심해서, 삶이 멈출 정도로 몸이 아팠거든요. 제 인생을 제 마음대로 살 수가 없으니까 그냥 수동적인 물이 된 것 같았어요. 물은 투명한 컵에 담으면 투명하지만, 검은 컵에 담으면 검은 물이 되는 것처럼요. 군가 시키는 대로 모양도 색도 바뀌는 수동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고여서 썩은 물이 됐다고요. 그런데 이 글을 다 쓰고 보니, 저는 평면에 있던 물이 아니라, 남들처럼 위에서 흘러 바다에 이르는 물이 아니라, 이렇게 나선형처럼 아래로 아래로 깊숙하게 흘러가는 물이었더라고요. 그걸 깨달으면서 제목을 그렇게 짓게 되었어요." (서)
Q. '나선형의 물'은 시작 부분에 날짜가 명시된 어찌 보면 일기 형식이거든요. 엄마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그런 엄마를 간호하고 떠나보낸 나날들이 담겨있죠. 특히, 9월 1일의 글에는 음식들이 나열되다가 '병원에 가져갈 엄마 반찬'이라고 마무리가 되는데, 그 글이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는 말을 대신한 것 같아 오래 눈과 마음이 머물러있었습니다.
"엄마가 병을 알게 되시고 나서 약 4개월 정도 만에 돌아가셨어요. 그냥 늘 건강하셨다가, 병을 알게 되신 것도 너무 갑작스러웠고요. 그래서 일기를 안 쓸 수가 없었어요. 너무 괴로운데, 이 감정을 어디에 쏟아놓을 수가 없고, 타인에게 이야기해도 그가 100% 공감할 수가 없잖아요. 제 감정을 쏟아내기 가장 안전한 공간이 글쓰기였어요. 마음에 슬픔, 우울, 불안이 너무 가득 차서 꺼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제가 우울증이 심해지며 어지럼증이라는 신체화 장애가 왔었어요. 그래서 컴퓨터도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정도가 핸드폰에 몇 자 적는 정도였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이니 일기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짧은 산문이 되기도 하고요. 매일 형식이 제각각인데요. 그것 역시 저의 모습 같았어요." (서)
Q. 문유림 작가님의 '열 평의 마그마'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사나운 독립'이 엄마에게서 독립하는 딸들처럼 알려졌는데, 제 글을 살짝 두 분과 다른 시작이에요. 저도 절벽에서 글을 쓰게 됐던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이 아빠랑 일본 오사카에서 헤어지고, 100일이 된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와서였어요. 엄마가 구해준 어떤 집에서 아기랑 둘이 굴 속처럼 살았어요. 약 1년 넘게 그러다 보니, 머리에 제 마음속 구멍처럼 커다랗게 원형 탈모가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내 마음이 많이 아픈 것 같다는 생각에 뭔가 해야 했어요. 제가 원래 시각예술을 하는 사람이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게 편한데, 글을 쓰게 된 건 제 안에 쌓인 언어들이 폭발적으로 많다고 느꼈어요." (문)
Q. 작가님은 '어딘가, 누군가에게는 꼭 닿아서 사랑과 전투의 증거를 남기고 싶었다'라고 '나가며'까지 그 마그마 같은 뜨거운 온도를 놓지 않으셨거든요. 그 뜨거운 글을 통해 발견하신 바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앞에서 말씀드렸던 글쓰기 수업 첫 과제가 자기소개 에세이였거든요. A4 용지 7페이지 분량에 아이 아빠와 헤어진 이야기를 쓰고 '나는 사랑을 좇는 자로 말하면 충분한 것 같다'라고 끝나는 글이었어요. 저는 제 글 안에서 어떤 한 남자든, 누군가, 무언가에 종속된, 그걸 놓으면 마치 사라질 것 같은 저를 느꼈거든요. 그런데 그 상흔을 꺼내놓다 보니, 멀리 이동할 줄 알고, 혼자서 사유할 줄 아는 저를 만나게 되더라고요. '나를 인정해 줘'라며 소속감을 찾으려 했던 대상들에게서 그 힘을 제대로 가지고 오는 연습을 그 안에서 하게 된 거예요. '누군가, 무언가, 어딘가'가 아닌 '집은 나였다'라고 깨닫게 된 거죠. 그렇게 돌아 돌아 어떤 대상을 지푸라기처럼 쥐고 있었던 건 '나에게 집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발견하게 된 거고요. 그렇게 다시 엄마, 아빠로 돌아오게 됩니다. 엄마, 아빠에게 느끼지 못한 소속감들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 거라고요. 글을 쓰면서 되게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요. 그 안에서 '내가 집이다'라고 하니까 정말 힘이 커지더라고요." (문)
Q. '사나운 독립'을 쓰셨고, 실제 삶에서도 스스로 잘 서 있는 나날을 이어가는 작가님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닿기를 바라는 부분이 있을까요.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북토크를 할 때, 한 독자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저는 엄마랑 관계가 너무 좋고, 어른들의 지혜를 믿어요. 그래도 독립이 필요한가요?'라고요. 저는 먼저 '너무 부럽다' 이런 생각부터 들어서 횡설수설 답한 것 같은데, 이 질문에 다시 답하고 싶네요. 언젠가 그분을 뵙게 되면 꼭 말씀드리고 싶어 적어놨거든요. 저희가 하고 싶은, 말하고 싶은 독립은 '엄마와의 관계를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끊어내고, 그냥 딱 나로 살아가라'가 아니거든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됐는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에 대한 것을 작게는 취향부터 크게는 삶의 방향 등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나무가 가지를 넓게 펴려면, 사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깊이 뿌리를 내리는 거거든요. 가지를 뻗치는 건 많이 생각하지만, 뿌리를 깊게 내리는 건 생각하지 못하고 살잖아요. 나를 깊게 파고 파고 파다 보면 자연스럽게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고, 가지가 뻗어나가 나만의 예쁜 모양의 나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사나운 독립'을 읽는 독자분들께서 각자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예쁜 나무를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서)
"저는 누구보다 자신을 찾는 일은 각자의 '독립' 과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창작은 그런 면에서 가장 효과가 빠른 길이라고 생각되고요. 저도 일반인 대상의 글쓰기 모임에서 시작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창작의 개념이 보다 더 다변화되고, 예술의 문턱이 낮아짐을 꿈꾸는 사람이거든요. 창작과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사람도 원한다면, 언제든지 표현의 길로 나아올 수 있다는 용기를 저희 셋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문)
Q. 그렇게 각자의 예쁜 나무를 완성해가고 있는, 앞으로 작가님들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저는 소설 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이제 마무리 단계에 와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른 것에 관심이 잘 안 가더라고요. 제가 쓰고 있는 소설에 몰입이 되어서 머릿속에 그 등장인물들이 같이 살고 있어요." (최)
"제가 엄마를 돌보고 떠나보내는 동안, 아이도 제 곁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는 죽음이 이해가 잘 안되니, '할머니는 저기 하늘에 계시는 거지?', '어디에 살아?' 등 계속 질문을 해요. 그래서 죽음에 관한 걸 같이 이해할 수 있는 동화나, 아이와 대화한 것들을 모아보고 싶어서요. 거기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서)
"저는 프랑스에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제 프랑스 친구는 한국에서 살고 싶어 했어요. 저희 둘이 만나 같이 이야기하고, 여행 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모아봤는데요. 결국 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방인이면서,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해서 10월에 파리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어요. 이 과정을 글로도 작업해 보고 싶어요." (문)
그동안 가족에 관한 생각, 아이에 관한 생각, 친구에 관한 생각 등 그동안 '나'를 둘러싸온 것에 관한 생각을 해오며 살았다. 그런데 '사나운 독립'을 읽은 후,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로 향했다. 누군가, 무언가, 어딘가에 의한 내가 아닌 서평강 작가의 말처럼 '나답게, 나로서' 살아가는 것. '사나운 독립'은 한 사람이 그 사람으로 올바르게 서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어투로 때로는 사납게,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뜨겁게 전한다. 세 사람이 전하는 가장 솔직한 언어들은 읽는 이의 가장 가슴 가까이에 박힌다. 같은 이유로 사나운 자신만의 '독립'을 이뤄낸, 혹은 이뤄내며 오늘을 살아가는 세 명의 작가를, '나'로 살아가고 있는 모두를 깊이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