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에서 기차로 30분, 진짜 이탈리아를 만나다… 뉴욕 브롱스 당일치기 여행
도시 한복판의 자연 오아시스 ‘뉴욕 보타니컬 가든(New York BOTANICAL GARDEN)’와 ‘아서 애비뉴(Arthur Avenue)’에서 만난 리틀 이탈리아의 맛집
‘뉴욕’하면 대부분 맨해튼의 화려한 마천루와 센트럴파크를 떠올린다. 하지만 뉴욕의 또다른 매력을 경험하기 위해 나는 그랜드센트럴터미널에서 메트로노스 기차를 타고 브롱스로 이동했다. 기차로 단 30분이면 도착하는 브롱스에서 완전히 다른 뉴욕, 아니 뉴욕 속 이탈리아를 만날 수 있었다.
1913년 2월 2일 개장한 그랜드센트럴터미널은 보자르(Beaux-Arts) 양식의 건축 걸작으로 연간 2,160만 명이 방문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다. 이곳에서 여행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특별한 경험이다. 축구장의 3/4 크기에 달하는 메인 콘코스의 웅장한 공간을 지나며, 터키석 색상의 천장에 금색으로 그려진 2,500개 이상의 별과 황도 12궁 천체 벽화를 올려다보면,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42번가 정면의 세 개의 거대한 아치형 창문과 로마 신들의 조각상,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티파니 유리 시계가 인상적인 이 건축 명작에서 브롱스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세계적 건축물에서 출발해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브롱스로 향하는 이 여정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다층적 매력을 보여주는 완벽한 동선이다.
도시 한복판의 자연 오아시스 ‘뉴욕 보타니컬 가든(New York BOTANICAL GARDEN)’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메트로노스 기차로 단 30분이면 도착하는 250에이커 규모의 뉴욕 보타니컬 가든(New York BOTANICAL GARDEN)은 뉴욕 식물원이라고 부른다. 1891년 설립된 이 식물원은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뉴욕의 주요 문화기관이다. 뉴욕 식물원은 콘크리트 정글로 유명한 대도시에서 수 세기의 산업화와 개발을 견뎌낸 식물들 사이를 거닐 수 있는 상쾌한 경험을 선사한다.
뉴욕 식물원은 관상용 정원을 넘어 세계 최대 규모의 식물 연구 및 보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학 기관이기도 하다. 100만 개 이상의 살아있는 식물과 700만 점이 넘는 식물표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식물원 내에는 50개의 서로 다른 테마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실내 열대우림과 사막 전시관은 물론, 강과 폭포, 구릉이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경관이 펼쳐진다. 특히 계절별 특별 전시는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식물원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1902년 완공된 ‘에니드 하우프트 온실’이다. 이곳은 런던 큐 가든의 팜 하우스와 조지프 팩스턴의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로드 앤 번햄 회사가 설계한 이 건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마치 이탈리아 궁전의 정원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우아하다.
1970년대 철거 위기에서 에니드 하우프트가 500만 달러를 기부해 구원한 이 건물은, 현재 열대우림, 사막, 수생식물, 식충식물 등 다양한 기후대별 전시를 통해 전 세계를 한 바퀴 도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중앙의 팜 돔은 세계 각지의 야자수들을 전시하며, 새롭게 설계되고 재식된 야자수 컬렉션은 뉴욕 식물원의 열대 식물 연구 역사와 야자과 식물의 경제적, 생태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온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아마존의 열대우림에서 아프리카의 사막까지, 전 세계의 다양한 생태계를 경험할 수 있다. 식충식물들이 전시된 특별 구역에서는 브로키니아 레둑타 같은 식충 브로멜리아도 만날 수 있어, 식물의 놀라운 다양성을 실감할 수 있다.
뉴욕 브롱스의 ‘아서 애비뉴(Arthur Avenue)’에서 리틀 이탈리아를 만나다
뉴욕 식물원 투어를 마친 후, 브롱스의 또 다른 보물인 아서 애비뉴로 향했다. 맨해튼의 리틀 이탈리아가 관광지화되어 실제 이탈리아계 주민들은 많이 떠난 반면, 브롱스의 아서 애비뉴는 여전히 이탈리아계 가족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진정한 이탈리아계 공동체다. 3-4세대에 걸쳐 이탈리아 전통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이곳에서는 할머니들이 직접 만드는 전통 파스타와 100년 넘은 가족 경영 식료품점들, 그리고 이탈리아어가 여전히 들리는 거리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 지역이 이탈리아계 중심지가 된 배경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고 한다. 20세기 초 대규모 이탈리아 이민이 핵심이었다. 1900년대 초부터 1920년대까지 수많은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처음에는 맨해튼의 리틀 이탈리아에 정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성공과 함께 북쪽으로 이주하게 됐다. 맨해튼이 점점 비싸지고 상업화되면서, 많은 이탈리아계 가정들이 더 넓고 저렴한 주거지를 찾아 브롱스로 이사한 것이다.
이들은 특히 아서 애비뉴 일대인 벨몬트 근처에 집중적으로 정착했는데, 이탈리아 남부 출신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가족 중심의 공동체 문화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계 가족들은 전통 음식과 식재료를 중시했기 때문에, 고향의 맛을 재현할 수 있는 식재료점들과 음식점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이렇게 형성된 이탈리아계 공동체는 3-4세대에 걸쳐 전통을 유지해왔고, 오늘날까지도 정통 이탈리아 음식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브롱스의 아서 애비뉴는 “진짜 리틀 이탈리아”라고 불리며, 맨해튼의 관광지화된 리틀 이탈리아보다 더 진정한 이탈리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브롱스에서 즐기는 100년 전통을 이어가는 맛집 순례
아서 애비뉴 투어는 40년 이상 브롱스 리틀 이탈리아에서 정통 이탈리아 육류, 치즈, 샌드위치를 제공해온 ‘조의 이탈리안 델리’에서 시작했다.
이곳의 자랑은 1979년 유명한 부라타를 동네에 처음 소개했고, 현재까지 이탈리아 원조 레시피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하루에 3번 이상 신선한 모짜렐라를 직접 만드는 이곳에서는 천장에 치즈가 매달려 있고 진정한 이탈리아 델리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어 간 곳은 ‘보가티 라비올리 & 에그누들’이다. 1935년부터 4세대에 걸쳐 운영되는 가족 사업인 보가티는 브롱스를 대표하는 파스타 전문점이다. 신선한 라비올리, 계란 국수, 라자냐 파스타, 마니코티 파스타, 카바텔레 등을 제조하며, 자가트 마켓플레이스 조사에서 품질 부문 30점 만점에 29점을 수상했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소유주가 파스타 제작 시연을 해주며 손님들이 구매 전 맛볼 수 있다는 점도 이곳만의 특별함이다.
아서 애비뉴에서 나폴리 피자를 맛 보고 싶다면 나폴리 가족이 만드는 브롱스식 피자집인 ‘풀 문 피자’를 가보자. 1976년부터 운영되어 온 아서 애비뉴의 피자 전문점인 풀 문 피자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독특한 옥수수 가루를 뿌린 크러스트가 특징으로 단맛과 독특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나폴리 출신 가족이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정통 이탈리아 방식과 브롱스만의 독특함이 어우러진 맛을 경험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코센자 피쉬마켓’이다. 아서 애비뉴 유일의 피쉬마켓으로 길거리 굴 바를 운영하는 코센자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굴과 새우 등을 현장에서 즉석 개봉하여 제공하며, 핫소스, 고추냉이 등 다양한 양념과 함께 길거리에서 서서 굴을 먹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체리스톤 조개부터 쿠마모토 굴까지 계절별로 다양한 해산물을 맛보며, 19세기 뉴욕의 길거리 음식 문화를 현대에 재현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1918년 마리오 마도니아가 설립한 100년 넘은 전통 베이커리인 ‘마도니아’는 브롱스 아서 애비뉴의 역사 그 자체다. 시칠리아 몬레알레 출신 마리오가 빵 수레를 운영하다가 정식 매장을 오픈한 이곳에는 1924년 차 사고로 조산한 아이가 빵 상자 인큐베이터에서 살아남은 가족사까지 간직되어 있다. 올리브 브레드가 가장 인기 메뉴로 모로코산 검은 올리브 한 컵을 손으로 넣어 제작하는 이곳에서는 100년 전통의 맛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다.
아서 애비뉴에서 가장 인상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곳은 바로 ‘칼라브리아 정육점’이다. 천장에 수백 개의 소프레사타가 매달린 일명 ‘소시지 샹들리에’로 유명한 이곳은 독특한 향과 비주얼로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핫 소프레사타 전문점으로 찾기 힘든 쿨라텔로도 판매하며, 신선한 모짜렐라 샘플과 다양한 소시지 시식 서비스도 해볼 수 있다.
브롱스 투어에서 마무리로 방문한 곳은 ‘브롱스 비어홀’이었다. 전통적인 이탈리아 음식점들 사이에서 브롱스 최고의 크래프트 비어 목적지로 아서 애비뉴 리테일 마켓 내에 위치한 브롱스 비어홀은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
2013년에 문을 연 이곳은 fromTheBronx와 마이크스 델리(Mike's Deli)가 파트너십을 맺고 아서 애비뉴 리테일 마켓에 새롭게 추가한 공간이다. 브롱스 비어홀의 가장 큰 매력은 브롱스와 뉴욕주 크래프트 비어의 다양한 셀렉션이다. 특히 브롱스 지역 양조장들의 맥주를 중심으로 한 로테이션 셀렉션을 제공하며,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셰프 데이비드 그레코가 큐레이션한 오리지널 메뉴는 아서 애비뉴 리테일 마켓과 인근 상점들에서 조달한 재료로 만들어져, 진정한 의미의 로컬 푸드를 경험할 수 있다.
이곳의 특별함은 맥주와 음식뿐만 아니라 브롱스의 문화적 자부심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브롱스의 향수와 상징적인 기념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며, 방문객들이 브롱스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벽면에는 브롱스의 역사를 담은 사진들과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맥주를 마시면서 브롱스의 문화를 학습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브롱스 비어홀은 또한 다양한 커뮤니티 이벤트의 중심지 역할도 한다. 정기적으로 카라오케, 라이브 뮤직 공연 등이 열려 지역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이런 이벤트들은 브롱스 비어홀이 관광객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실제 브롱스 커뮤니티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100년 넘은 전통의 이탈리아 음식점들과 나란히 자리한 브롱스 비어홀은 아서 애비뉴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 진화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마도니아 베이커리의 100년 전통 빵과 브롱스 비어홀의 현대적 크래프트 비어가 같은 거리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은, 이 지역이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열린 공간임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브롱스산 크래프트 비어 한 잔을 마시며 하루 종일의 아서 애비뉴 투어를 마무리한 것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브롱스의 매력을 완벽하게 경험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