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비만학회 2025년 세계비만의 날 정책간담회

“비만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비만을 유발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며, 예방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적극적인 치료 개입이 필요합니다.

김민선 대한비만학회 이사장(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은 지난 4일 서울중앙우체국 대회의실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민선 대한비만학회 이사장 /사진=김정아 기자

대한비만학회(회장 서영성, 이사장 김민선, 이하 ‘학회’)는 ‘세계 비만의 날’을 기념해 ‘우리나라 임상적 비만병 실태 및 사회경제적 부담-효과적 관리를 위한 정책적 대응 전략’을 주제로 한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비만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의료적 접근이 필요한 질환으로 알리기 위한 자리다.

이날 간담회에서 학회는 비만이 단순한 생활 습관 문제가 아니라 심혈관 질환, 당뇨, 지방간, 호흡기 장애 등 다양한 만성질환을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강조하며, 기존 예방 중심 정책에서 치료 중심 관리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만, 왜 ‘질병’으로 인정해야 하나?

최근 의료계에서는 비만을 신체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만성질환으로 공식 인정하고, 이에 맞는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학회는 이와 같은 견해를 뒷받침할 근거로 지난 1월 국제 학술지 란셋(Lancet)에 발표된 ‘임상적 비만병 진단 및 관리 모델’을 소개했다. 이 모델에서는 비만을 ‘임상적 비만병 전 단계’와 ‘임상적 비만병’으로 구분하며, 비만이 단순한 BMI 수치로만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 기관의 기능 변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질환임을 강조했다. 즉, 비만을 단순한 위험 요인이 아닌 신체 기능에 손상을 주는 독립적인 만성질환으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실제 비만은 신체 대사와 호르몬 작용을 변화시키는 질병적 특성이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방 조직은 단순한 에너지 저장소가 아니라, 염증 반응과 대사 이상을 유발하는 활성 조직으로 작용한다. 과도한 지방 축적은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고, 만성 염증을 유발하며, 심혈관 및 대사질환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된다.

또한, 비만은 조기 사망 위험을 증가시키며, 심혈관 질환과 같은 만성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비만은 심혈관 질환, 2형 당뇨병, 특정 암(대장암·유방암·췌장암 등)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며, 조기 사망률을 30~50% 높이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비만이 한 번 발생하면, 단순한 다이어트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비만 환자는 체중 감량 후에도 체내 항상성(homeostasis) 메커니즘이 작동해 신진대사와 호르몬 변화가 발생하며, 감량된 체중을 다시 회복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밖에 학회는 비만으로 인해 저하된 신체 기능을 단순한 체중 감량만으로는 이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도 비만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비만이 지속되면 심혈관계(고혈압, 심부전), 호흡기(폐쇄성 수면무호흡증), 대사(고혈당, 고지혈증), 근골격계(관절염, 척추 질환) 등의 기능 저하가 나타나며,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체중 감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예방만으로는 한계…치료 중심의 접근 필요

현재 국내 비만 정책은 주로 식생활 개선, 운동 장려 등 생활 습관 변화를 중심으로 한 예방적 접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만으로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비만율을 낮추기에 한계가 있다.

남가은 대한비만학회 보험법제이사(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비만이 진행된 이후에는 단순한 예방 전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미 신체적 기능 변화가 진행된 상태에서는 치료적 개입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의료 시스템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비만율 증가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학회 발표에 따르면, 비만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흡연과 음주로 인한 비용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부담은 국민 의료비 증가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학회는 비만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적 개선이 시급하며, 효과적인 치료 개입이 가능하도록 의료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적용 확대와 함께 일차 의료 중심의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대사 건강 상태와 합병증을 고려한 새로운 분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 이사는 “비만 치료를 위한 건강보험 급여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비용 부담으로 인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건강보험 급여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에 대해 BMI 30 이상 또는 BMI 25 이상이면서 심혈관계 질환을 동반한 성인을 우선으로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비만 치료를 위한 정책적 변화 마련해야

학회는 비만을 단순한 생활 습관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만성질환으로 공식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마련하고, 의료 인프라를 정비하며, 예방을 넘어 치료 중심의 정책을 강화해야만 비만율 증가를 막고 사회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민선 대한비만학회 이사장은 “우리는 이제 여러 장기의 기능을 동반한 비만을 ‘비만병’으로 인식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할 때가 왔다”며, 비만을 질병으로 공식 인정하고 이에 맞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비만을 유발하는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하며, “비만 문제를 개인의 노력에 맡기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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