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비밀의 숲2'나 '더 글로리' 속 제 모습을 많이 기억하시다 보니까, 대본도 계속 그런 것들만 들어왔었다. 늘 수트 입는 캐릭터였다. 그런 이미지에 저를 한정 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사한 작품도 꽤 있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펙트럼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른 섹시' 아이콘으로 부상한 정성일이 디즈니+ '트리거'에서 너드남 금쪽이로 변신했다. '비밀의 숲2', '더 글로리'에서 보여준 냉철한 모습을 한 꺼풀 벗고 대중 앞에 섰다. 연극 무대에서 탄탄히 다져온 연기력 덕분에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다"라던 그의 바람은 순항 중이다.

'트리거'는 나쁜 놈들의 잘못을 활짝 까발리기 위해 일단 카메라부터 들이대고 보는 지독한 탐사보도 프로 놈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극 중 정성일은 '트리거' 팀에 느닷없이 불시착한 낙하산 중고 신입 '한도' 역을 맡았다. '트리거'를 통해 호평을 얻고 있는 정성일과 작품 종영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트리거'는 배우가 기존에 보여준 캐릭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다. MZ 캐릭터라는 설정을 소화하기도 했는데 '한도'의 어떤 매력에 끌렸나.

"MZ세대가 자기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도는 MZ세대인 것 같다. 잘못된 것이 아닌 이상, 내 생각이 맞다고 판단하면 상하를 구분하지 않고 표현하는 점이 좋았다."

Q. 극 중 한도가 1990년생이라는 설정이 화제를 모았다. 실제 본인보다 열 살이나 어린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저도 피해자다. (웃음)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는 제 나이보다 다섯 살 정도 어릴 거로 생각했는데, 방송 보니 이력서에 90년생으로 되어 있어서 저도 놀라웠다. 그렇다고 더 어려 보이려고 한 건 없었다. 어차피 중고 신입에 낙하산 PD라 나이에 연연하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욕을 많이 먹기는 했다. '네가 어떻게 90이냐?' 하면서 여파가 있었다."

"만약에 한도가 90년생인 걸 알고 시작했으면 선뜻 출연하기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른 식으로 접근은 할 수 있겠지만, 열 살이라는 갭은 생각이나 경험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나. 그걸 알고 연기하기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Q. 한도는 '어른이' 같은 모습도 있다. 항상 입에 사탕을 물고 다니고 매니큐어도 바르지 않나. 그런 설정에 배우의 의견이 들어간 부분도 있을까.

"사탕과 매니큐어는 감독님의 제안이었다. 사탕은 불안함을 해소하려고 늘 입안에 넣고 있는 그런 설정이었다. 처음에는 맛있으니까 촬영할 때 사탕을 계속 먹었다. 그러다 당이 올라갈까 봐 중간에 감독님께 오징어로 좀 바꿔 달라고 했다. (웃음)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도가) 불안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으니까 (사탕을) 빼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사탕 먹는 게 조금씩 사라지게 됐다."

"한도가 어릴 때 아버지 때문에 얻은 손가락 흉터가 있지 않았나. 사람들이 쳐다보니까 신경이 쓰였던 시기를 지나서 오히려 더 돋보이도록 매니큐어를 바른 거다. '나는 전혀 너를 신경 쓰지 않아'라는 한도를,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사실 매니큐어를 처음 발라본 것도 아니었다. 누나가 있어서 어릴 때 메이크업이며 매니큐어며 누나의 연습 상대가 된 적이 많다."

Q. '트리거'를 통해 김혜수 배우와 첫 호흡을 맞춘 소감도 궁금하다. 극 중 '트리거'의 중심인 오소룡과 현장의 중심인 김혜수 배우의 닮은 점도 있던가.

"일단 (김혜수) 누나는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한 번 좋아하면 진짜 다 주시더라. 음식이나 머플러, 선글라스도 선물 받았다. 그중에서도 정신적인 부분을 가장 많이 받은 것 같다. 제가 이렇게 대단한 분과 연기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까 많이 떨리고 긴장하기도 했는데, 혜수 누나가 늘 칭찬해 주시고 '잘하고 있다'라고 응원해 주셔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한번은 촬영 중간에 저에게 고맙다고 말씀해 주신 적도 있다. 누나가 초반에 중심이 조금 흔들렸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중심을 잘 잡아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렇게 저를 배우 대 배우로 대해주신 게 정말 힘이 많이 됐다."

"오소룡 팀장과 누나의 닮은 점은 'GO' 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점, 그리고 앞뒤가 똑같다는 거다. 사람이 이렇게 앞뒤가 똑같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하고 팀원들을 이끌어 주는 것도 비슷하다. 누나는 여러모로 오소룡 팀장 같은 면이 있었다."

Q. '트리거'는 공개 후 6개국 디즈니+ 시리즈 글로벌 상위 10위에 진입하는 등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다만 플랫폼과 공개 방식이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다. 주연으로서 느끼는 바가 있을까.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처음에 주변에서 '한꺼번에 공개하면 좋을 텐데', '플랫폼이 어디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그래도 재밌으니까 (대중들이) 봐주시겠지 싶은 마음이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혜수 누나에게도, 디즈니+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제가 더 연기를 잘하고 인지도 있는 배우였다면 시청자분들이 많이 봐주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생각이 안 들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착한 척하는 게 아니고 정말이다."

"제가 댓글이나 반응을 잘 찾아보지 않는 편인데, 그래도 기사를 보니까 '나쁘지는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본 분들은 재밌다고 해주셔서 안도했다. 지금 공연 중이라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를 아직 못 봤는데, 양심상 '트리거'가 다 공개되면 그때 보려고 한다."

Q. '트리거'를 통해 이미지 변신에 나섰다. 대중이 생각하는 '배우 정성일'의 모습과 다른 '사람 정성일'은 어떤 사람인가.

"실제 저는 되게 허당이다. 낯도 많이 가린다. 저를 처음 뵈면 희멀건 놈이 안 웃고 있으니 좀 차갑게 보시는 것 같다.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도 아니라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다. 그런데 친해지면 엄청나게 웃기는 걸 좋아한다. 알고 보면 재밌는 사람이다."

Q. 여전히 정성일의 수트핏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 차기작에서는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수트핏도 사실 신경이 쓰인다. 제가 그렇게 부지런하지 못한 편인데 이제 좀 관리를 해보려고 한다. 제가 봤을 때는 제 키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고 어깨가 넓지도, 다리가 길지도 않아서 그렇게까지 핏이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말이 좀 위험하게 들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웃음)"

"다음 작품에서는 그놈의 수트를 또 입는다. 그 부분도 고민을 좀 했다. 대본도 정말 재밌고, 감독님, 배우들도 훌륭해서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감독님과 이야기해서 표현 방법에 변화를 준 부분이 있다. 수트를 입었지만, 또 다른 느낌의 캐릭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대해 주시면 좋겠다."

'트리거'로 2025년 활동 포문을 연 정성일은 차기작 역시 디즈니+와 협업한다. 그가 출연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는 격동의 1970년대, 부와 권력에 대한 야망을 지닌 백기태와 그를 막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검사 장건영이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올해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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