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아티스트컴퍼니 제공

배우가 성장하며 겪는 몇 가지 과업이 있다. 해내야만 하는 일, 책임을 지는 일, 주연이라는 무게감이다. 그 과업을 차곡차곡 해내고 있던 임지연이 '옥씨부인전'을 통해 처음으로 타이틀롤에 도전했다. 그는 "이제는 무난하게 작품을 잘 끌고 가는, 그런 주연배우의 몫을 해내야 하는 시기가 오지 않았나 싶다"라며 스스로를 내려놓고 작품에 임했다고 말했다. '더글로리', '마당이 있는 집', '리볼버' 등 강렬한 역할로 신을 사로잡았던 임지연은 공감에 집중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옥씨부인전'은 이름도, 신분도, 남편도 모든 것이 가짜였던 외지부 옥태영(임지연)과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예인 천승휘(추영우)의 치열한 생존 사기극을 담은 드라마다. 극 중 임지연은 우연한 기회로 양반 '옥태영'의 삶을 살게 된 노비 '구덕이'를 연기했다. 그저 '곱게 늙어 죽는 것'이 꿈이던 구덕이는 주인 김낙수 부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추노가 된다. 유독 총명했던 구덕이는 자신을 친구로 대해 준 아씨 '옥태영'이 죽자 그녀의 신분으로 새로운 삶을 산다.

지난 23일 서울 성수동 한 카페에서 임지연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이 매회 화제성을 입증하며 토일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임지연은 "사랑을 받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다.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라며 인터뷰 포문을 열었다.

사진: 아티스트컴퍼니 제공

"구덕이에게 유독 헤어 나오기가 힘들었다. 너무너무 사랑하는 캐릭터였고 아주 많이 닮고 싶었다"라며 종영을 앞둔 소감을 말할 땐 애틋한 마음이 전해질 정도였다. 그만큼 작품과 캐릭터에 애정을 쏟았으리라. 임지연은 어떤 마음으로 '옥씨부인전'을 시작했을까. 영화 '간신', 드라마 '대박'에 이어 9년여 만에 사극인 데다 타이틀롤. 임지연은 부담감을 느끼기도 잠시, 초심을 떠올리며 참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때는 신인으로서 처음 도전하는 사극이었고, 이번에는 타이틀롤이라는 점이 달랐다. 전에는 워낙 부족한 점이 많았고 제가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서 멀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옥씨부인전' 대본을 보고 아차 싶었다. 지레 겁을 먹고 도전하지 않는 제 모습,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하는 제 모습이 창피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보여주자'라는 마음으로 도전했기에 더 애정이 가는 것 같다.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를 이겨낸 것 같다."

"제가 타이틀롤 경험이 없는 배우지 않나. 많은 분들이 이 작품에 되게 많은 걸 쏟아부으시는데, '나를 믿음직스럽지 않게 생각하시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있었다. 자신감 부족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와 역시 우리 주연배우'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했고, 선배님들께도 '꼭 해낼 거라고' 말씀드리고 다녔다. 이번 작품을 통해 '주연 배우로서의 부담감과 중압감이 이런 거구나'라는 걸 배웠다."

사진: SLL, 코퍼스코리아 제공

임지연은 구덕이에서 옥태영으로 이어지는 그 틈을 유려한 연기력으로 채웠다. 180도 다른 비주얼과 애티튜드를 보여줘야 하는바,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터다. 임지연은 그저 구덕이에 집중했다.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에 쉽게 다가갔다. 그렇게 구덕이에 동화됐다.

"구덕이가 옥태영의 삶을 살면서 아씨가 되지만, 구덕이의 본질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처음에 캐릭터 분석할 때도 거의 구덕이에게만 집중했다. 구덕이가 어떤 심성을 가졌고, 그런 구덕이가 다른 삶을 산다면 그 마음은 어떨지 생각했다. 그 속에서 태영 아씨의 모습이 조금씩 나오기를 바랐다. 다른 인물이지만 항상 같은 인물이라는 본질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또 의상을 입으면 (역할에 맞게)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사진: SLL, 코퍼스코리아 제공

임지연은 외형부터 말투, 제스처까지 모든 부분이 다른 인물을 한 작품에서 보여줬다. 의상의 덕을 많이 봤다고 말한 그는 가뜩이라 마른 체형에 체중 감량까지 하며 비주얼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구덕이는 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4~5kg 정도 뺐다. 마님이 됐을 때는 기품 있는 자태와 어울리도록 포동하게 살이 올라온 얼굴이기를 바랐다. 촬영을 섞어서 찍다 보니까 (차이를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잘 나온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다."

"소년미 속에 약간의 사랑스러움이 있는 노비 구덕이로서의 모습도 어울리고 싶었고, 마님 옥태영으로서도 예쁘고 싶었다. 잘 어울리는 한복을 찾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외지부로서는 완벽한 카리스마가 필요했다. '옥씨부인전'이 퓨전 사극이기도 해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극 말투에 갇히지 않기를 바랐다."

사진: 아티스트컴퍼니 제공

'옥씨부인전'은 구덕이의 성장기이기도 하지만 인기 요인은 단연 로맨스 서사다. 구덕이를 위해 신분까지 바꾼 천승휘 역에는 라이징 스타 추영우가 발탁됐다. 극 중 1인 2역을 소화한 추영우를 옆에서 지켜본 임지연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진 배우"라며 "오래오래 응원하게 될 나의 파트너"라고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추영우 배우가 두 인물을 연기하니까 초반에는 '둘이 다른 배우다'라고 생각하고 연기하기도 했다. 쉽지 않은 연기인데도 과하지 않게 미묘한 차이를 잘 둔 것에 대해 칭찬해 주고 싶다. 그걸 잘 해낸 영우가 대견했다."

"영우는 배우로서 이미 많은 것들을 가진 친구라 제가 더 많이 의지했다. 정말 능청스럽게 캐릭터를 자기화하는 걸 잘하더라. 저는 항상 치밀하게 계산하고 연습해야 될까말까인데 영우는 현장에 집중해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걸 해내는 배우라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방송을 보면서 영우에게 감동한 부분도 있다. 영우 덕분에 구덕이의 사랑이 잘 보여서 고마운 마음이 크다."

사진: '옥씨부인전' 홈페이지

임지연은 '옥씨부인전'을 통해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더글로리' 박연진부터 '마당이 있는 집'의 추상은, 영화 '리볼버' 속 마담 정윤선까지, 신을 압도하는 존재감이 그녀의 주특기였다. 그런 임지연이 '옥씨부인전'에서는 카리스마에 공감을 더한 인물로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전과 다른 결의 인물에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물었다.

"사실 그동안 임팩트 있는 캐릭터를 보고 작품을 고른 건 아니었다. '더글로리' 연진이 이후에 계속 연기를 하다 보니까 그런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다. 이제는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보실 수 있도록 조연을 빛내주고 무난하게 극을 끌어가는 그런 주연 배우로서의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동안 감정적으로 극한을 연기했던 것 같다. 어떤 때는 모노톤의 연기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항상 극한의 상황에 몰려서 색깔이 뚜렷한 캐릭터를 보여드려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걸 좀 내려놓고, 임지연스러운 모습이 있는,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어 보고 싶었다. 그런 걸 좀 겪어봐야겠다는 고민을 하는 시점에서 만난 게 '옥씨부인전'이다."

사진: 아티스트컴퍼니 제공

아직도 '임지연' 하면 '연진이'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이전 캐릭터로 불리는 것에 대해 임지연은 "배우가 역할로 불린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아직도 연진이라 부르는 분도 많고, 요즘에는 구덕이, 태영이로도 불러주신다. 저는 그렇게 오래오래 불러주시면 좋겠다"라며 "이 작품을 할 때도 '연진이를 뛰어넘어야겠다'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또 보여드릴 새로운 인물로 많이 불리고 싶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이젠 대중에게 '사람 임지연'을 더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차기작 '얄미운 사랑'과 예능 프로그램 '언니네 산지직송2'으로 대중을 만날 예정이다. '얄미운 사랑'은 '닥터 차정숙'을 집필한 정여랑 작가와 '굿파트너' 김가람 감독이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형사 전문 배우와 기자의 사랑을 다룬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다. 임지연은 18살 연상인 이정재와 로맨스 케미를 펼친다. 차기작에서는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 임지연의 또 다른 모습이 기대된다.

홈으로 이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