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어려운" 배우 이동욱X"저를 보고 즐거우셨으면" 욱동이 [인터뷰]
"나는 너희 아니면 별 의미 없는 직업을 갖고 있어…내가 유명한 농구 감독님 말씀처럼 볼펜 한 자루를 만들어봤냐, 벽돌을 쌓아봤냐. 다 대중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온 거지. 나의 성공은 너의 사랑이 없었으면 소용없다."
배우 이동욱이 팬들과의 유료 소통 플랫폼에서 나눈 대화의 일부다. 이동욱은 해당 플랫폼을 통해 '욱동이'라는 이름으로 운동 경기를 보고, 고민을 들어주고, 응원을 전하기도 하는 등 팬들과 소소한 일상을 함께한다. 분명 '도깨비'의 저승이처럼 우뚝 서서 자욱한 연기 속을 걸어 다닐 것 같은데, 이동욱은 배우로서 작품에는 그만의 존재감을 펼치면서도, 일상에서는 뚜벅뚜벅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상을 걷는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영화 '하얼빈'에서 독립군 이창섭 역을 맡아 포스터에 '그리고 이동욱'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가면서도 2년 전부터 웹 예능 '핑계고'를 통해 홍보를 해온 이동욱의 생각이 말이다.
Q. 이창섭은 안중근 장군(현빈)과 같은 독립군의 장군이면서, 그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장 다른 지점은 '신아산 전투'를 승리로 이끈 후 일본인 포로들을 대하는 생각이다. 이창섭은 "죽여야 한다"라고 말하고, 안중근 장군은 "국제법에 따라 살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묘한 캐릭터를 준비하며 중점에 둔 생각이 궁금하다.
"사실 디테일하게 세부적으로 준비하지는 않았다. 시나리오 읽고 다가오는 느낌은 아마 모두가 같은 감정일 것 같다. 그 마음이 영화 전반적인 무드에 묻어나온다고 생각했다. 디테일한 준비보다는 '하얼빈' 안에서 '제가 할 몫을 해내자'라는 마음이 컸다. 그다음은 '이창섭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정한 길이 맞으면 그대로 간다'라는 지점이었다. 그 설정 정도만 생각하고 연기에 임했다. '하얼빈'은 지금까지 안중근 장군을 담은 작품과는 다른 각도로 그를 조명한다. 그 모습이 다른 신념을 가진 이창섭 캐릭터로 돋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얼빈'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훌륭한 배우들이 함께한다. 그 배우들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된다.', '열심히 하자'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Q. 이창섭 역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물론 총을 들고 일제에 맞서는 모습도 있었지만, 안중근 장군 역의 현빈과 둘이 술 한잔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 장면은 시나리오에 없는 장면이었다. (우민호) 감독님이 촬영 하루 전날 급하게 '이런 장면이 한 장면 있으면 좋겠다'라고 하셔서 즉석에서 만들어낸 장면이다. 리허설도 없이 감정만 가지고 현장에 갔다. 대사도 즉석에서 써 주셨다. 그 장면 하나로 안중근(현빈)과 이창섭의 전사가 쫙 설명되는 느낌이었다. 이 둘이 얼마나 함께 사선을 넘나들고, 우정을 넘나들고, 서로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는지가 드러난다. 안중근이 유일하게 이창섭에게 '내 무덤에 술 한 잔 놔달라'라고 이야기하지 않나. 찍을 때는 솔직히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현장에 앉아서 감독님의 '액션'에 맞춰서 서로를 딱 바라보는데, 둘 다 울컥하더라.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빈이 한참 말을 안 한다. 그 중간, 무음의 공백이 오히려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감독님께서도 촬영을 더 이어가지 않으셨다. '이 투샷이면 됐다'라고 하셨다. 그 장면은 저도 참 좋아합니다."
Q. '하얼빈' 제작보고회 당시 작품에 출연한 계기에 '현빈'도 있었다. 그렇게 만난 현빈과의 작업은 어땠나.
"현빈은 늘 궁금했다. 그의 결과물은 전 국민을 넘어 전 세계인이 보지 않나. 그 과정에 어떻게 임할까 궁금했다. 그 궁금증에서 작품 선택 이유에 '현빈이 있었다'라고 한 것 같다. 함께 작품에 임하며 '진중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디테일이나, 중요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잘 타협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저는 사실 연차가 쌓이며 거의 주인공을 하지 않나. 그래서 앞에서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하얼빈'은 한발 조금 뒤에서 보게 되니, 저에게 새로운 경험, 신선한 느낌, 좋은 자극이 된 것 같다."
Q. 한 발 뒤에서 바라본 다른 배우들의 모습은 어땠나.
"여기 함께하는 배우들과 다 작업해 보고 싶었다. 유재명과는 '라이프'에서 많이 의지했었고, 조우진은 '도깨비' 하며 한 장면 정도만 만나게 돼 아쉬웠다. 두 사람과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같이하며 행복했다. 박정민은 개인적으로, 그가 하는 연기를 보면서 팬이었다. 함께 연기를 하게 돼 굉장히 기뻤다. 전여빈과 연기하면서는 '진짜 지독하게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끈질기게 하는구나!' 본받아야겠다고 느꼈다."
Q. '우덕순' 역의 박정민은 로케이션 현장에서 이동욱이 먼저 촬영을 모두 마치고 떠나는 날이 선명하게 기억난다고, 울컥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현장에서 배우들끼리 쌓인 감정이 컸던 것 같다.
"현장에서 평소에도 '김동지', '이동지', '박동지'라고 그렇게 부르며 지냈다. 아무래도 로케이션도 많고, 붙어있는 시간도 길다 보니, 금방 마음을 나누게 되지 않았나 싶다. 영화 작업 자체도 다 같이 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함께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도 마음이 통했다. 본의 아니게, 제가 사적인 자리에서 대화를 리드하는 경우가 있었다. 조우진도 저에게 '일주일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되냐'라고 했다. 저도 그 추위에 동지들을 두고 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갈 사람은 가야지. 한국에 도착하고 한 이틀 만에 '핑계고'를 촬영했다. 그래서 거기서 더 이야기하게 된 것 같다. 굉장히 정이 빨리 많이 들었다. '하얼빈' 제작발표회 때 다 같이 모인 게 굉장히 오랜만인데, 너무 좋더라. 얼굴만 봐도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이들을 만나는 일정은 설렌다."
Q.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더 특별한 작품으로 남은 건가. '핑계고'에 출연해서 개봉 2년 전부터 홍보한 셈이 됐다.
"이 작품을 하고 있을 때, '핑계고'에 나가기도 했었고, 각별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으려고 한 거다. 누가 개봉 2년 전부터 홍보를 하냐. (웃음) 그런데 하다 보니 진심이 된 것 같다. 제작사에 선물 사달라고 하려고 한다. 나처럼 홍보 오래 한 배우가 어디 있냐고. (웃음)"
Q. 지난 1999 MBC 드라마 '베스트극장 - 길 밖에도 세상은 있어'로 데뷔한 이후 오랜 시간 배우라는 업을 이어왔다. 그러면서도 변하지 않는 배우 이동욱의 마음이 있을 것 같다.
"할수록 어렵고, 갈수록 책임감은 커진다. 우스갯소리로 '하얼빈'을 2년 전부터 홍보했다고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는 혼자서는 만들 수 없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100~2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함께한다. 그런데 제가 그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지 않나. 열심히 홍보도 하고, 작품이 잘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늘 가지고 있다. 이제는 연기를 안 하고 산 날보다, 연기를 하고 산 날이 더 많아졌다. 그러면 좀 쉬워질 법도 하지 않나. 그런데 늘 '왜 이렇게 어렵지'라는 생각을 한다. 변하지 않는 신념이 있다면, '하얼빈' 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에 임할 때 '함께한 사람들이 어디 가서 창피하게 하지 말자'라는 그 마음은 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Q. 할수록 어렵게 생각되는 것은 '더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일까.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 것도 맞고,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맞다. 안주하면 안 되니까. 제가 늘 되새기는 말이 '현재를 살자'라는 말이다. 과거의 영광은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현재를 살지 않으면 도태된다."
Q. 그러면서도 동시에 웹 예능에서도 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재미있는 걸 좋아한다. 제가 가진 직업의 의무는 아니더라도, 갖춰야 할 소양이 있을 것 같다. 대중들이 제가 하는 걸 보고, 즐거움과 마음의 위안을 얻으시면 좋겠다. 그런 부분에서 저도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고, 웹 예능이나 토크쇼를 진행하고 싶은 마음도 맞닿아있는 것 같다. 애초에 그런 걸 어려워하는 성격은 아니라, 큰 부담감은 없다. 만약 '핑계고'에 나갔는데, 열심히 임했지만 조회수가 잘 안 나오면, 그건 (유)재석이 형 탓인 거다. (웃음)"
Q. 유료 플랫폼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도 온라인을 통해 화제가 되고 있다. 굉장히 솔직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놀라웠다.
"배우들은 사실 팬과 직접 소통하는 플랫폼이 없었다. 제 인스타그램도 제가 운영하는 것이 아닌, 소속사에서 관리해 주고 있다. 저는 잘할 줄 모른다. 그렇다 보니 팬들과 소통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팬들은 늘 그런 걸 원하지 않나. 처음에는 팬들과 소통할 플랫폼이 생겼다는 말을 회사에서 듣고, '안 한다'라고 했다. 아이돌의 창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거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해보자'라고 시작했는데, 많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거기에서 사용하는 말투가 제 실제 평소 말투다. 제가 친한 지인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그게 신선했나 보다. 그래서 캡처된 이미지로 온라인에서 퍼지더라. 부담감은 없는데, '이게 왜 재밌지?'라는 궁금증은 있다. 이건 현재를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게 좋다. 작년에 5년 만에 팬 미팅을 했다. 자주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렇게 소통할 기회가 있으니 좋은 것 같다. 그 플랫폼에는 저만 들어갈 수 있다. 제가 메시지를 입력하면, '진짜 보낼 거냐?'라고 한 번 확인한다. 최종적으로 보내겠다고 하면, 보내지는 거다."
Q. 지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SBS에서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프로그램을 이끌어왔다. 다시 한번 토크쇼를 한다면 누구를 게스트로 모시고 싶을까.
"무조건 (유)재석이 형은 나오라고 할 거다. 조건이 있다. 제발 답만 하라고, 진행은 내가 할 테니.(웃음) '하얼빈' 팀에서 함께 한다면 (우민호) 감독님 모시고 싶다. 감독님께서 은근히 수줍음도 많으시고 재미있다. 그런 모습을 좀 보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