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에서 우덕순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정민 / 사진 : 샘컴퍼니

영화 '하얼빈'의 중심에는 안중근 장군(현빈)이 있지만, 영화가 분명히 조명하고 있는 것은 그와 함께하는 '동지'들이다. 안중근 장군의 거사가 하얼빈에서 성공하기까지는 독립군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이창섭(이동욱), 공부인(전여빈), 최재형(유재명) 등이 자리했다. 그렇기에 우민호 감독은 현빈의 얼굴을 크게 드러내는 클로즈업보다 '인물들'이 함께 어둠과 빛에 선 모습을 선택했다. '하얼빈'을 본 후, 이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빛이 잘 들어오지 않은 연기 자욱한 공간을 연상케 된다.

그 속에서 박정민은 유독 빛난다. 홀로 우뚝 서서 빛나는 것이 아닌, 그 속에서 빛난다. 어둠 속에서도 그는 '우덕순'이었고, 밝음 속에서도 그는 '우덕순'으로 자리했다. 포커스가 누구에게 맞춰져 있든, 화면 속 그는 굳건하게 '우덕순' 그 자체로 있었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박정민'이 영화 '하얼빈' 속에 있었다. 실존 인물인 독립운동가 우덕순 역을 맡은 고민이 그 속에 있었고, 또 실존 인물이 아닌 김상현과 쫀득쫀득한 케미가 '하얼빈'의 재미를 더했다. 박정민이 채워나간 밀도가 '올해의 박정민'만큼이나 궁금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 사진 : CJ ENM

Q. 지난 2016년 개봉한 영화 '동주' 속 송몽규 열사에 이어 영화 '하얼빈'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독립군 우덕순 역을 맡았다. 과거 송몽규 열사의 묘소에 찾아간 이야기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번 준비 과정은 어땠나.

"비슷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실존 인물을 입는다는 건 굉장히 예민하게 작업해야 하는 것이기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요. 그랬습니다. 과거 '동주' 촬영을 위해 제가 한 개인적인 노력을 다들 알고 계셔서, 마치 그렇게 안 하면 열심히 안 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조심스러운데요. (웃음)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처럼 제 입으로 뭔가를 나열하고 싶은 마음이 덜 들어서요. 열심히 했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Q. 영화 '하얼빈'을 보면, 별을 보고 태어난 '영웅'만이 독립군이 되는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독립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작품에 어떻게 접근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 영화는 안중근 장군을 앞세우지만, 사실 그 시대, 그 시절 독립군들, 옳은 일을 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 굉장히 끌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조금 더 그때 그분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에 대해 고민해 보는 준비 과정을 가진 것 같아요. 한 개인이 의지만 가지고 행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힘들고, 떨리고, 무섭지는 않았을까. 사실 어릴 때,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며 그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내가 그때 살았더라면, 이 인물들처럼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자문해 봤는데요. 부끄럽지만 대부분 그때마다 '나는 못할 것이다'라고 자답했습니다. 저는 그 정도의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나라면 못할 것 같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거대한 적 앞에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하겠다'라고 생각한 순간과 의지만으로도 '그분들은 충분히 영웅일 수 있는 사람들이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 사진 : CJ ENM

Q. '하얼빈' 속에서 우덕순은 일본 포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가도, 안중근 장군(현빈) 말에 그 총을 내려놓는다. 그가 생각한 안중근 장군을 향한 마음을 어떻게 고민하고 임했나.

"저는 우덕순이라는 사람 안에 안중근 장군이 굉장히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신아산 전투에서 우민호 감독님의 디렉션으로 더 깊고 크게 생각한 것 같아요. 원래 리허설할 때, 우덕순이 일본군 포로를 발로 차고 욕을 하며 총을 겨누는데 (현)빈 형이 '동지, 그만하시오'라는 외침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오시더니 '그냥 (우덕순) 어깨에 손을 한 번 올려보는 건 어떠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것만으로도 우덕순은 자신의 행동을 멈출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실제로 연기해 보니 충분히 가능하겠더라고요. 그날 우덕순에게 안중근은 얼마나 큰 인물이었을까 깊이 생각했고요. 그 생각을 촬영 끝까지 이어간 것 같아요."

Q. 우덕순과 김상현의 쫀득쫀득한 케미는 '하얼빈' 속 가장 오락적인 요소였을 수도 있다. 앞서 우민호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로 '두 사람의 술집 대화 장면'을 꼽기도 했다. 배우 조우진과 어떤 대화를 하며 만들어갔는지 궁금하다.

"(조)우진이 형님이 테스트 촬영을 마치고 내려가는 차 안에서 그 말씀을 하셨어요. '어느 한 장면이 너무 안 풀리는데,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같이 리딩하며 방향을 찾아가면 좋겠다'고요. 저는 그때 살면서 선배님께서 후배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 처음 본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놀랐고, 감사했고, 그 제안이 제가 (조)우진이 형에게 마음이 확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말한 장면이 '술집 대화 장면'이었어요. 라트비아에서 이 장면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는데요. 말씀처럼 저희 둘이 이야기한 장면에는 조금 더 오락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현장에 가보고, 리허설을 해보고, 감독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조금 더 진하게 장면을 만들어가야겠구나'라는 판단이 들었고요. 그래서 또 다른 분위기의 장면이 완성돼 저도 그 장면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자주 찾아오는 순간은 아닌데, 제가 개인적으로 그럴 때가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상대 배우의 연기를 넋 놓고 구경하고 있을 때 가요.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그냥 구경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그 장면이었습니다. (조)우진이 형님이 해석한 김상현이라는 사람을 제가 어느 순간 정신 놓고 구경하고 있더라고요. 빨리 정신을 차려야 했고, 어렵고, 신기하고, 행복했던 장면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 사진 : CJ ENM

Q. 배우 조우진은 어떤 선배였기에 그런 순간이 찾아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제 직업은 배우고, 현장은 일터고, 연기가 제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 일에 내 개인적인 삶을 어디까지 쏟아부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어느 순간 너무 고통스럽고, '내가 일 때문에 개인적인 삶에서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진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또 한 번 그 큰 고민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데뷔하고 10여 년이 지난 순간까지 그 생각들과 항상 싸워왔던 것 같고요. '덜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가지고 이 일을 해온 것 같아요. 그리고 덜 고통스러우면서도 이 일을 잘할 방법을 모색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고요. 그런데 저보다 경험도 많은 한 배우가 아직도 하나의 영화 속 하나의 역할에 불나방처럼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건가'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기꺼이 내 삶을 던져서라도 이 일을 지켜가야겠다'라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는데, 왜 생각이 많아졌을까 하는 반성이 들게 하는 순간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을 때까지 배우 조우진을 지지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지'라는 표현을 썼지만, 제 마음을 충족하는 단어는 아니에요. 그때 (조우진) 형님께서 하셨던 모든 도전과 고생들과 연기를 향한 자세가 저에게 너무나도 큰 영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조우진 배우를 지지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Q. 현장에서 마주한 배우 현빈, 이동욱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이 또한 생각이 참 많아집니다. 이 또한 현빈, 이동욱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두 분을 각각 처음 만났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처음 두 형님을 만났을 때 '이 형님들과 함께라면, 나는 마음껏 연기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만남부터 마치 동지가 된 것처럼, 이분들이 저에게 보여주신 진심과 지지가 마음이 저에게 꽤 많이 용기가 된 것 같아요. 마음 놓고 연기했고요. 이런 표현이 애매하지만, 매 순간 재미이었고, 아직도 한 순간이 기억납니다. (이)동욱이 형이 라트비아에서 촬영이 끝나고, 저희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는데요. 모두가 함께 나와서 배웅했습니다. 그런데 (이동욱) 형이 떠나는 봉고차 뒤 트렁크가 너무 애잔한 거예요. 가지 않았으면 좋겠고, 끝까지 함께해주면 좋겠고,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이 형들을 너무 좋아하게 됐구나.' 저는 사실 눈물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요. 그때도 감정이 좀 올라왔습니다. 그 정도로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현장이었습니다."

영화 '하얼빈'에서 우덕순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정민 / 사진 : 샘컴퍼니

Q. 앞선 인터뷰와 웹 예능 등에서 오는 2025년 휴식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쿠팡플레이 '뉴토피아' 등 공개 예정작도 있고, 디즈니+ 시리즈 '조명 가게'에서 영탁으로 깜짝 등장하며 '무빙' 세계관 진입이 예고돼 기대감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영탁'으로 합류하게 된 건가. 내년에 촬영한다면, 어떻게 할 예정인가.

"쉬면 얻어지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열심히 쉬고, 열심히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빙'과 관련해서는 정말 들은 게 없습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서요. 저는 그냥 (강풀) 작가님께서 '특별출연 한 번 해주면 안 되냐?'라고 하셔서, 예전에 말씀하신 것도 있고, '하루 가는 건데, 어렵지 않죠'라고 했습니다. 또 '조명 가게'를 연출한 (김)희원 선배님과도 친분이 있고, 제가 좋아하는 선배님이기도 하시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촬영했는데요. 그다음은 제 의지가 아니잖아요. (웃음) 기다려보겠습니다. 내년에 안 할 것 같은데요. 혹시나 시켜주신다면, 잘 조율해서 해보겠습니다."

Q. 올해 박정민에게는 정말 여러 일이 있었다. 배우로서도 영화 '전,란', '1승', '하얼빈', 그리고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를 통해 대중과 만났고, 출판사 '무제'의 대표로, 다양한 웹 예능과 '고민중독' 등을 라이브로 소화한 엔터테이너로 다채로운 사랑을 받았다. 박정민의 올해는 어떤 한 해였나.

"정말 많은 걸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데뷔하고 나서 가장 빨리 지나간 한 해로 기억될 것 같아요.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사실 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기회들이 왔는지 모르겠지만, 웹 예능도 나가보고, 또 그 모습을 좋아해 주시기도 하셨고, 어디 가서 노래도 불러보고, 갑자기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지만 출판사도 운영해 봤고요. 시간이 빨리 간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살았던, 그래서 시간이 굉장히 빨리 지나간 한 해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영화 '하얼빈'에서 우덕순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정민 / 사진 : 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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