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가득한 로터스 'F1 레이스카·하이퍼 GT 에메야' 연결고리
1969년 로터스 Type 49에 적용된 F1 최초의 '액티브 리어 윙'… 에메야에 한층 발전돼 적용
로터스자동차코리아가 브랜드 최초 4도어 GT '에메야'를 한국 시장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5.1m를 초과하는 웅장한 차체와 18분(350kW, 10→80% 급속 충전 기준)에 불과한 동급 최고 수준의 급속 충전 속도, Cd 0.21의 공기저항계수, 최대 918마력(에메야 R 기준)의 압도적인 출력 등 에메야는 '하이퍼'라는 수식에 걸맞은 우월한 '스펙'을 앞세워 고성능 럭셔리 전기차(EV) 세그먼트에 도전장을 던졌다.
F1 레이스카, 그리고 경량 2도어 가솔린 스포츠카만 빚어온 로터스에게 '헤비급' 럭셔리 EV 세단의 등장은 다소 급진적이다. 하지만 '수치'로 드러난 부분 외에, 에메야의 차체 곳곳엔 로터스의 오랜 브랜드 유산과 제조 노하우, 모터스포츠 DNA를 알 수 있는 기술 요소가 녹아 있다. 바람과 '아귀다툼' 벌일 첨단 공기역학 기술, '피지컬'의 한계 극복할 서스펜션 기술이 대표적이다.
F1 레이스카에서 시작한 로터스의 공력 설계
에메야에 탑재된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는 고속에서 최대 150kg 이상의 다운포스를 만들어, 커다란 차체를 노면에 단단히 밀착시킨다. 남다른 주행 안정감은 물론, 체급을 뛰어넘는 코너링 스피드를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제동할 땐 항공기의 에어 브레이크처럼 날개를 수직에 가깝게 세운다. 물리 브레이크 및 회생제동과의 막강한 시너지를 기대하는 이유다.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의 역사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터스는 Type 49를 통해 F1 역사상 최초로 '액티브 리어 윙'을 선보였다. 로터스는 고정된 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당 기술을 고안했다. 스포일러가 있으면 코너링 스피드는 증가하지만, 역으로 공기저항에 맞닥뜨려 직선 속도는 줄어든다. 이에 주행 상황에 따라 날개 각도를 조절해 극복했다.
'Cd 0.21'에 불과한 에메야의 공기저항계수도 돋보인다. 차체 하부에서 발생하는 공기 와류까지 고려해 치밀하게 설계한 결과다. 이러한 설계 사상은 1977년 로터스 Type 79에서 시작했다. F1을 현대 공기역학 시대로 이끈 주역으로, 차체 하부의 공기 흐름을 후방까지 매끄럽게 유도해 막강한 접지력을 뽐냈다. 이른바 '콜라병 사이드 포드' 역시 바람과 싸울 칼날 같은 묘안이었다.
"마치 런던 버스를 운전하는 것처럼 편안해요" 당시 Type 79의 운전대를 잡은 F1 챔피언 마리오 안드레티는 Type 79의 주행 성능을 이렇게 평가했다. 공력 성능의 개선은 '통통' 튀는 레이스카의 접지력을 개선할 수 있었고 나아가 승차감까지 향상시켜 드라이버의 피로도를 크게 줄였다. 즉, 로터스는 바람과 슬기롭게 싸우는 방법을 터득해 한계를 꾸준히 돌파할 수 있었다.
안락한 럭셔리 세단과 고성능 스포츠카를 넘나드는 서스펜션
서스펜션에서도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에메야가 사용하는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은 노면을 밀리초(1/1000초) 단위로 스캔해 댐핑 압력을 최적으로 제어한다. 이러한 지능형 서스펜션의 역사는 1983년 Type 92부터 시작했다. 로터스는 유압 제어 방식의 액티브 서스펜션을 고안했고, 1987년엔 F1 디트로이트 그랑프리에서 아일톤 세나와 함께 우승컵을 들었다.
액티브 서스펜션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당시 개발을 주도한 로터스 엔지니어 피터 라이트에 따르면 하중 변화에 따라 차체 높이를 제어할 수 있고, 선회 시 차체 기울어짐을 막을 수 있으며, 가속 또는 제동 시 발생하는 피칭 현상도 제어할 수 있었다. 무려 40년 전 고안한 기술이란 점은 로터스가 대단히 뛰어난 엔지니어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로터스가 모터스포츠에서 치열하게 쌓은 노하우와 데이터는 최신 로터스 라인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심지어 라이다(LiDAR)까지 공기저항을 고려해 디자인했다는 사실은, 로터스가 공기역학을 통한 주행 성능 향상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장르와 파워트레인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했지만, 로터스의 제조 철학은 F1에서 활약했던 시절 그대로다.
창립자 콜린 채프먼의 염원, 로터스 4도어 세단
1975년, 로터스는 4인승 럭셔리 GT인 엘리트와 에클라트를 선보이며 북미 진출의 활로를 모색했다. 패스트백 모델로, 넓은 트렁크와 자동변속기를 갖췄고 4.5m에 달하는 전장은 로터스 기준으로 꽤 큰 차였다. 당시 자동차 언론은 에클라트의 핸들링과 접지력을 호평했고, 이에 로터스는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 파올로 마틴에게 '새로운 4인승 GT' 제작을 의뢰했다.
1980년, 로터스 2000 에미넌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쭉한 보닛과 트렌디한 쐐기형 디자인, 널찍한 도어가 시선을 모았다. 이런 겉모습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고성능차에 사용하는 백본 섀시와 V8 3946cc 비스포크 엔진, 케블라와 유리섬유로 짠 차체는 혁신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당시 2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의 여파로, 에미넌스는 끝내 양산 모델로 거듭나지 못했다.
실제 로터스 창립자 콜린 채프먼은 로터스를 항상 새로운 분야로 밀어붙이길 바랐고, 에미넌스를 통해 브랜드 영역을 확장시키고자 했다.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췄던 에미넌스 프로젝트는 약 40년 만에 에메야로 꽃을 피웠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디자인 해법과 4인 가족을 위한 넉넉한 뒷좌석, 강력한 파워트레인 등 에미넌스의 유산은 오늘날 에메야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이처럼 혁신적인 순수전기 하이퍼 GT 에메야의 등장은 표면적으론 급진적이나 속에 담긴 이야기와 도전 정신은 '로터스' 그 자체다. 로터스는 EV 시대에도 고성능차 본연의 '손맛'을 누구보다 강조한다. 100% 자율주행을 위한 밑 그릇은 이미 갖췄으나, F1에서 단련한 아날로그적 요소는 여느 EV처럼 컴퓨터에 주도권 넘길 생각이 없단 사실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