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계획'에서 엄마 영수 역으로 열연한 배우 배두나 / 사진 : 쿠팡플레이 제공

아마도 모두가 동의할 거다. '배두나'만이 가능한 영역이 있다. 그렇기에 봉준호 감독도('플란다스의 개', '괴물'), 바다 건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공기인형', '브로커'), 워쇼스키 형제도('클라우드 아틀라스', '주피터 어센딩') 그녀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29일 첫 공개된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에서 배두나의 공기가 제대로 담긴다.

'가족계획'은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다섯 명의 사람이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이들은 특수교육대에서 탈출했다. 특수교육대에서 영희(배두나)는 사람의 기억을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철수(류승범)와 함께 아기를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 한 글자를 따서 영수와 철희가 됐다. 할아버지 강성(백윤식), 두 아이 지훈(로몬), 지우(이수현)까지 다섯 가족은 금수시에서 벌어지는 악을 자신의 방식으로 처단하며 가족으로 나아간다. 이 가족을 지켜보게 하는 건 중심을 굳게 지키고 머뭇거림 없이 칼을 든 엄마 영수 역의 배두나에게 있다. 배두나는 말도 안 되는 공기를 현실로 가져온다. 지극히 '배두나' 적인 질감으로 말이다.

'가족계획' 스틸컷 / 사진 : 쿠팡플레이 제공

Q. '가족계획' 속 영수는 제작발표회 때 표현처럼 감정이 한치도 드러나지 않게 담아두어야 하는 캐릭터였다. 분명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이를 결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형사가 아니라 끌렸고요. (웃음) 잔인한 방법으로 악당을 혼내주는 영수의 모습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제가 블랙 코미디적인 느낌을 좋아해요. 대놓고 웃음을 강요하는 것보다 약간 엉뚱한 코미디를 좋아하거든요. '피식' 웃을 수 있는 작품이요. 그런 느낌의 대본이 저한테 끌렸어요. 저한테 그런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브로커', '다음 소희'가 결정타인 것 같은데요. 그 사이에 '레벨 문'을 하긴 했지만요. '린다, 린다, 린다' 같은 작품이나, '플란다스의 개'처럼 약간 사회적인 이슈를 발랄하게 풀어가는 작품에 대한 갈증이요. 어떻게 보면 겁 없이 부딪힌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나, 공기인형도 했는데'라고 생각하며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찍었고요. '나 왼손으로 탁구도 쳤는데,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또 어려운 것들을 해나가요. 그런 것들이 다 맷집이 되는 것 같아요."

Q. 영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지만, 아이들에 대해서만큼은 깊은 감정을 보여주려 애쓴다. 캐릭터에 중점을 둔 지점이 있을까.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극이 앞으로 흘러가야지, 제가 튀는 건 가장 배제하는 스타일의 연기예요. 엄마, 아빠(류승범)가 모두 색이 강한 배우잖아요. 그러면서 할아버지인 백윤식 선생님까지 되게 강하고요. 그런데도 저는 '가족계획'의 대본을 볼 때 두 아이가 더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고요. 영수와 철희가 어린 시절 누리지 못한 것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라고 딥하게 생각했어요. 평상시에도 표정을 겉으로 다 드러내는 연기는 지양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더 힘들었던 건, 평상시에는 70% 정도 누르고, 30% 정도 살짝 삐져나오는 감정을 관객에게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공감 능력이 없고, 특수교육대에서 감정을 깎아내리는 훈련을 받은 사람일 거로 생각해서 아예 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어요. 꽉 채우고 덜 보여주는 스타일의 연기를 즐겼다면, 이제는 삐져나오는 감정까지 없어야 하기에 조금 어려웠어요. 또 영수가 감정이 없는 건 아닌 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사랑을 글로 배웠다'라는 말처럼, 글로 배운 모성애를 보여주는 인물로 설정했어요. 철희랑 강성을 대할 때는 냉정하지만,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싶게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글로 배운 듯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거죠."

'가족계획' 스틸컷 / 사진 : 쿠팡플레이 제공

Q. '가족계획' 속 인물들은 실제 혈연으로 묶인 가족은 아니지 않나. 그런 유사 가족의 이야기는 과거 함께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하는데, 그 영향을 받은 바 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가치관이 저에게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보며 감동받았고, 그 생각을 지지해요. 그래서 '가족계획'의 설정도 따뜻하게 다가왔어요. 이들을 응원하게 된 거 같고요. 사실 이들도 선하기만 한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사람을 많이 죽였을 거고, 고문했을 거고요. 그런데도 가족을 지키겠다고, 다섯 명이 정말 똘똘 뭉쳐서 끝까지 가요. 히어로가 세계를 구원하는 이야기보다 저는 이들의 이야기가 더 와닿더라고요."

Q. 아빠 역의 류승범은 앞선 인터뷰에서 배두나에 대해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라고 극찬을 했다. 류승범과의 호흡은 어땠나.

"보시다시피 호흡 너무 잘 맞았고요. 저는 사실 그 분이 현장에 안 계셨으면 멘탈 브레이크가 올 수도 있었어요. 쉬운 작품이 아니었어요. 그분이 좋은 에너지를 주셨고요. 경력이 25년이 넘어가면, 타성에 젖을 수도 있는데 정말 맑은 영혼의 소유자세요. 그래서 '철희'로 있을 때도 정말 많이 의지했지만, '류승범'이라는 배우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됐고요. 정말 최고예요. 앞서 공개된 '무빙'으로 액션도 잘한다는 인식이 각인돼 있지만, '가족계획'에서도 엄청나거든요. 5, 6분쯤 철희의 순애보가 나옵니다. 저는 울면 안 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너무 훌륭한 배우시고,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연기적으로도요."

'가족계획'에서 엄마 영수 역으로 열연한 배우 배두나 / 사진 : 쿠팡플레이 제공

Q. 현장 분위기가 느껴졌던 게 사실 그 오묘한 타이밍이었다. '가족계획'에서 피식 웃게 하는 건 대사와 대사 사이 약간의 침묵이나 묘한 엇박자였는데, 그런 지점을 다섯 명의 가족이 완벽하게 살리는 느낌이었다.

"배우라는 직업이 좋은 이유가 그것 같아요. 현장에서 연기할 때, 모두 한마음이 되거든요. 사람이 그러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 장면 재미있게 만들자'라는 한 마음으로 경쟁이 없어요. 서로 상부상조할 수밖에 없어요. 이 사람이 좋은 호흡을 던져주면, 저도 더 좋아져요. 그래서 항상 도움을 받아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요. 그래야 더 좋은 장면이 나오니까요. 특히 영수는 많이 무표정하고, 반응이 없는 캐릭터라서 상대 배우가 힘들 수 있거든요. 리액션이 있어야 핑퐁이 되는데, 영수의 적막을 다 상대 배우들이 감당해 주잖아요. 그래서 영수를 만들어준 게 가족들인 것 같아요."

Q. 영수가 특수교육대에서 두 아이를 안고 탈출을 감행하지 않나. 그 이유나, 전사가 후반부에 이어질까.

"특수교육대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그렇게 영수의 전사가 설명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작가님께 많이 여쭤보고, 많이 들었어요. 영수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면, 제가 알아야 하니까요. '내가 지켜줄게'라고 영수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한 건, 그가 가진 결핍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것도 그렇고요. 절대 티가 나면 안 되지만, 사실 영수의 엄마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엄마도 사실 같은 능력이 있었거든요.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모계로 능력이 이어지는 것처럼요. 엄마가 영수의 기억을 지운 설정을 듣고, 계속 생각했어요. 그 공허함과, 엄마에 대한 기억과 마음을 지훈(로몬)이와 지우(이수현)를 대할 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보기에는 코믹 연기지만, 사실 속내에는 딥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아마 회를 보시다 보면,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왜 제가 딥하게 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요."

'가족계획'에서 엄마 영수 역으로 열연한 배우 배두나 / 사진 : 쿠팡플레이 제공

Q. 배우 배두나가 보여준 캐릭터들을 보면, 항상 물음표를 갖고 보기 시작해서 느낌표로 끝나는 명확한 느낌이 있다. 그 비결이 '딥하게' 들어가는 것에 있을까.

"저에게 중요한 연기는 진짜 그 사람이 어디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그렇게 보여주면, 제 일을 다 한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소설 한 편을 씁니다. 그 사람의 과거를 상상하는 작업을 해요. 그 사람이 되려면, 그 사람이 쌓아둔 기억들이 있어야 하잖아요. 제가 캐릭터가 되어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감정이 폭발해요. 그러려면 쌓아 올린 기억과 이야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캐릭터의 진짜 감정이 나와야 실제 있는 사람으로 보일 거 같아서요. 그래서 스토리를 켜켜이 만들어 기억을 쌓아갑니다. 예를 들면 세트장에서도 혼자서 상상해요. 세트 벽지가 물방울무늬라면 '내가 예전에 물방울무늬를 좋아해서 아빠가 이걸 붙여놓으셨구나' 이런 말도 안 될 수 있지만 저에게는 캐릭터로 이입하는 킥이 돼요."

Q. 차기작 계획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아직 확정된 건 없습니다. 제가 2010년부터 한 10년 동안 정말 다작을 한 것 같아요. 어떤 문체든, 소재든, 주제든 관계없어요. 시나리오가 저를 반하게 하면, 저는 5분 만에 하겠다고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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