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CH 김범준·김기석 교수팀
칼코젠 화합물 나선성 전하 밀도파 메커니즘 밝혀

김범준 POSTECH(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

국내 연구진이 나선성 메커니즘을 규명해 양자 컴퓨팅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 원리를 밝혀냈다.

POSTECH(포항공대)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와 김기석 교수 연구팀이 전이금속 칼코겐화합물(TMD)에서 ‘나선성 전하 밀도파(Chiral Charge Density Wave, CDW)’ 현상의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 게재되며 나선성 밀도파가 형성되는 주요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나선성(Chirality)은 물체가 자기 거울상과 대칭되지 않고 구별되는 현상이다. 일례로 손을 생각해 보면 한 손을 아무리 움직여도 다른 손 위에 정확히 겹치지 않는 것처럼 겹칠 수 없는 물리적 특성을 말한다. 어떤 기하학적 조작으로도 두 손은 동일한 공간과 모양을 이룰 수 없다. 구나 못처럼 겹칠 수 있는 물체는 비나선성이다.

이는 전자 등 입자 배치와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양자 컴퓨팅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어 스마트폰과 컴퓨터,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로 아원자(원자핵, 양성자, 전자) 수준부터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자연계에서 널리 존재하는 나선성의 형성 원리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전이금속 칼코겐화합물(1T-TiSe2)의 결정 구조와 전하 밀도파. ‘전하 밀도파(왼쪽 푸른색)’와 ‘결정 구조 변화(오른쪽 붉은색)’의 대칭성이 일치하지 않아 원자들이 추가로 이동하게 되고, 결국 모든 대칭성이 깨져 나선성 구조(아래 보라색)가 나타남을 POSTECH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와 김기석 교수 연구팀이 밝혀냈다. /POSTECH

연구팀은 전이금속에서 이전에 나선성 물질에서만 관찰되던 특성(원형 광전기 효과)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전이금속은 이전에는 비나선성으로 간주되던 이황화 타이타늄(TiSe₂)이다. 150년 된 대칭에 관한 과학적 가정을 조사해 이 물질이 겉보기에 비나선성 격자 구조에도 불구하고 나선성 전하 밀도파를 생성하는 방법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타이타늄(Ti)과 셀레늄(Se)으로 이루어진 1T-TiSe₂(원티-타이타늄 셀레늄 투)라는 전이금속 칼코겐화합물(TMDs3))에서 나타나는 ‘전하 밀도파’와 ‘격자 변형’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됐다. 이 두 현상은 전자의 움직임과 원자 진동, 그리고 구조 변화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전자가 재배치되면서 전하 밀도파가 발생할 때 원자들은 새로운 위치로 이동해 결정 구조가 변화하게 된다. 이 원자들의 움직임은 특정 형태의 진동이 고정되는 현상으로, 다양한 원자 진동을 관측함으로 미세한 구조 변화를 포착할 수 있다.

김범준 교수는 “TiSe₂는 1976년부터 알려졌고, 그 이 이 물질의 결정 구조는 자세히 연구되고 여러 차례 재검토됐다”며 “최근 연구들에서 TiSe₂가 전자적 특성과 관련된 구조가 나선성을 띤다는 광범위한 증거를 수집했고, 거울 대칭 요소가 결여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선성 전하 밀도파 또는 결정 구조 중 하나가 잘못됐을 것이라 믿었고, 이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 TiSe₂가 격자 왜곡과 전하 밀도파가 서로 다른 공간군 대칭성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흥미롭게도 이 대칭성은 추가적인 격자 왜곡을 유발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원자 진동을 지배하는 대칭성과 전하 밀도의 대칭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동안 ‘전하 밀도파’와 ‘격자 변형’이 동일한 대칭성을 가진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이 두 현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각기 다른 대칭성을 따랐다.

이후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라만 분광 장비와 미국 아르곤연구소와 함께 수행한 빛의 비탄성 산란 실험을 통해 물질 내 원자들의 진동을 추적하고, 나선성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이 대칭성의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한 원자들의 추가 진동으로 인해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며, 그 결과 모든 대칭성이 깨져 ’나선성 구조‘가 형성됐다. 두 현상 간 대칭성의 차이가 나선성 구조 발현 메커니즘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격자 왜곡이 매우 미세하고 섬세할 것이라고 예상해 전하 밀도파 형성에 따라 격자 진동 모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추적했다”며 이를 통해 대칭성 변화를 유추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나선성은 특정 물질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자연계 전반에 걸쳐 존재하며, 아원자 입자에서 분자,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발견될 수 있다”며 “나선성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미시적 메커니즘은 많은 경우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연구가 나선성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점에서 향후 양자 물질 설계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선성 발생 메커니즘을 규명한 포항공대 김범준 교수와 김기석 교수 연구팀 연구진. (왼쪽부터) 김범준 교수, 김기석 교수, 김광래·김현우·하승혁·복진모 대학원생). /POSTECH

[김범준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와의 일문일답]

- 다른 전이금속 칼코겐화합물(TMD)에도 나선성 CDW 구조가 적용될 수 있나.

“TiSe₂ 물질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현상이 여러 TMD 물질에서도 관측되고 있어, 다른 물질에서도 나선성 CDW를 구현할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한다.”

- 이번 연구 결과가 실제 양자 컴퓨팅에 적용될 때까지의 예상 시간과 필요한 추가 연구는 무엇인가.

“나선성을 양자 기술에 활용하자는 논의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기초학문 수준에서 가능성을 탐구하는 정도다. 구체적으로 양자 컴퓨팅에 언제 적용될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 양자 컴퓨팅 외에 나선성 전하 밀도파(CDW)가 활용될 수 있는 다른 산업이나 응용 분야가 있나.

“나선성은 양자 소자, 양자 센서, 양자 통신뿐만 아니라 제약, 촉매, 광학 기기 등에서도 널리 응용될 수 있다.”

- 나선성 구조가 양자 컴퓨팅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나.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의는 나선성 발생 원리를 규명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나선성 구조를 갖는 새로운 물질을 설계할 수 있게 되었고, 향후 양자 컴퓨팅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특성 연구도 가능해질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한 연구와 실험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본다.”

- 이번 연구에서 겪은 기술적·이론적 어려움은 무엇인가.

“나선성을 이해하려면 군론(group theory)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특히 결정 구조가 복잡한 계에서는 군론을 적용한 분석이 어려워진다.. 다행히 이번 연구의 물질은 비교적 결정 구조가 쉬운 편이었지만,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물질에는 같은 방법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후속 실험 계획은.

“4세대 가속기(자유전자 레이저)를 이용해 전자와 격자 상태를 따로 볼 수 있는 실험을 내년쯤에 계획하고 있다.”

- 양자 컴퓨팅 관련 기업들이 이 연구를 적용하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당장 이 물질이 양자 컴퓨팅에 활용될지는 미지수다. 현재로서는 학계에서 나선성 물질을 더 개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자체 개발한 라만 분광 장비와 미국 아르곤연구소와의 협력이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나선성을 가진 전자 구조가 있을 때 격자 구조도 나선성을 띄어야 하지만, 결정 구조의 변화가 미세해 회절 실험만으로는 관측이 어려웠다. 이를 위해 라만 분광 장비와 엑스선 산란 장비를 사용해 격자 진동 모드를 관찰했는데, 두 기법은 서로 상보적인 정보를 제공하므로 모두 사용했다. 특히 라만 분광 장비는 아주 미세한 격자 변화도 탐지할 수 있도록 자체 개발한 것이다.”

- 양자 컴퓨팅 실용화에 있어 국내외 협력 방안은.

“양자 컴퓨팅 실용화는 제 전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구체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렵지만, 학문 발전을 위해 다양한 연구소 및 기업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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