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경, 데뷔 21년째 '수상한 그녀'…"아직도 매일 생각해요, 이대로 괜찮은걸까" [인터뷰]
대중들은 그를 11살 때부터 봐왔다. 심은경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누구보다 활짝 웃었고, 그렇기에 모두 생각했다. 친숙한, 옆집 여동생 같은 심은경을 말이다. 옆집 여동생 같다는 표현은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말수가 적고, 생각이 깊은 옆집 여동생이다. 잘한다고 칭찬받으면서도, '잘하는 걸까'를 고민하는 여동생이다. 그런 여동생은 늘 도전으로 고민을 앞선다. 그래서 늘 궁금하고, 수상하다. 데뷔 21년 만에 처음 도전한, 어쩌면 한국 영화에서도 첫 도전인 시네마 앤솔로지 '더 킬러스'도 그 일부다.
'더 킬러스'는 헤밍웨이가 쓴 동명의 단편 소설 '살인자들(The Killers)'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네 명의 감독 이명세, 장항준, 노덕, 김종관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해석하고 탄생시킨 살인극을 담은 시네마 앤솔로지다. '더 킬러스'에는 김종관 감독이 연출한 '변신', 노덕 감독이 연출한 '업자들',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명세 감독이 연출한 '무성영화' 순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네 작품에서 모두 배우 심은경이 등장한다.
Q. '더 킬러스'는 영화 '궁합'(2018) 이후,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는 한국 영화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제가 계속 한국 작품을 촬영했어요. 지난 2022년 '별빛이 내린다'라는 작품을 이솜, 옹성우 배우님과 같이 찍기도 했고요. 지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잠깐 등장하는 것도 찍었고요. 하루하루 설레고 있습니다. 긴장도 그만큼 되는 것도 사실이고요. 오랜만에 제가 해보고자 했던, 배우로서 언젠가 이런 작품을 선보여야지 생각했던 작품을 예상보다 빨리 선보이게 된 자리라서 무엇보다 많이 기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실험적인 도전을 담은 연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정말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30대가 되었을 때, 이 작품이 찾아와주며, 저에게 전환점이 될 수 있었고, 나침반이 되어준 것 같은 의미가 깊은 작품입니다."
Q. 나침반이 되어준 작품이라고 하면, 배우 심은경으로서 '대중성'이 아닌 자신만의 방향성을 찾아낸 걸까.
"완벽하게 '이 방향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조금 더 제 중심을 잡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제가 앞으로도 도전하는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영화의 팬으로서 그런 영화를 응원하고 싶고,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저는 '더 킬러스'도 대중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관객이 봤을 때, 완성이 되는 거잖아요. 대중성이라는 측면이 아닌, 다양하게 바라보며 연기하고 싶다는 '확장성'에 무게가 실리는 것 같아요."
Q. '더 킬러스'의 첫 제안은 이명세 감독님에게 받았다고 알려졌다. '무성영화'는 움직임이 부각되는 작품인데 촬영하면서 어떤 지점을 느꼈나.
"'무성영화'의 제안을 처음 받았어요. 제가 워낙 존경하는 감독님이셔서 '무조건 하겠습니다'라고 했고, 이후에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그리고 한 두분 씩 대본을 주셨고, 헤밍웨이 '더 킬러스'를 원작으로, 에드워드 호퍼의 바 세트를 이용해서 만들어지는 영화에, 하나로 연결고리가 되는 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합쳐져 감사한 기회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명세 감독님을 전적으로 믿었어요. 콘티도 여러 버전으로 있었는데, 봐도 모르겠더라고요. '진짜 예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진심으로 말했을 정도였어요. 이명세 감독님께 '무성영화'와 '선샤인'에 대해 여쭤봤는데, 감독님은 '본질적으로 영화란 무엇이었을까, 처음으로 돌아가 질문하고 싶었다'라고 답하셨어요. 저는 영화를 저만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해소할 수 있겠냐고 여쭤보니, 감독님께서는 '나는 이미지를 봐. 대사는 기억 안 날 때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해소할 필요 없어. 너에게 확 다가와 이해가 될 때가 있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위안이 됐고 힌트가 되어줬어요. 노트 한 권 들고 현장에 가서 감독님 말씀을 다 받아적으며, 대본 연습도 하고, 리허설도 하고, 그렇게 임했습니다."
Q. 영화 '더 킬러스' 속에서 앞서 언급한 이명세 감독님을 비롯해 총 네 명의 감독님과 함께했다. 김종관, 노덕, 장항준 감독님과도 함께한 소감이 궁금하다.
"'모두들 그를 기다린다'를 보면서 가장 헤밍웨이 소설을 많이 차용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영화를 쭉 보면 장항준 감독님, 이명세 감독님 작품이 좀 연결되는 느낌도 살짝 있고요. 아마 두 분 감독님께서 헤밍웨이 소설을 해석하신 엇비슷한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김종관 감독님 작품에는 제가 아이디어를 많이 던졌거든요. 스탠릭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을 보면 잭 니컬슨이 환각을 볼 때 바텐더가 나오거든요. 그런 분위기의 바텐더면 좋겠다고, 그 지점을 오마주해보고 싶다는 의견도 드렸고요. 노덕 감독님 작품이 제가 '더 킬러스'에서 처음으로 촬영한 작품이에요. 그래서 상당한 부담감이 있었고, 동시에 소민이라는 역할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제가 소민이 대사의 어미까지 고민해서, 사소한 것까지 문자를 보냈는데요. 노덕 감독님께서 '잘할 거면서 걱정이 많으시네'라고 하실 정도로 믿어주셨어요. 감독님께서 많이 도와주셨고, 의지가 됐고요."
Q.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즈음, 돌연 일본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2020년 영화 '신문기자'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그 경험이 도전의 씨앗이 된 걸까. 어떤 배움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해외 진출을 해서 그런 마음이 생겼다기보다, 항상 제 안에 있었어요. 일본에서 일단, 일본어를 배웠고요. 언어가 처음에는 저에게 벽에 탁 부딪히는 지점으로 다가와서, 이 간극을 어떻게 좁힐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작품들이 저를 빨리 찾아와준 것 같아요. 아직 그때는 일본어가 지금보다도 못할 때니까 번역 대본을 숙지하기 위해 일본어 대본을 달달 외웠어요. 매일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 읽었어요. 그때 했던 연습들이 지난날 제가 잊고 있었던 연기 연습 방식을 떠올리게 해줬어요. 제가 촬영한 드라마 대본들이 아직도 집에 있는데요. 되게 헤져있거든요. 그 정도로 반복해서 밑줄치고 읽으며 연기 연습을 했었어요. 그러다 성인이 되고, 나만의 스타일을 잡아보고 싶고, 방식을 다르게 바꿔보고 싶은 시도를 해보며 연습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어요. 연습보다 내가 가진 날 것을 현장에서 터트리자고요. 그런데 계속 내 안에서 맴도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게 뭘까?' 생각했는데, 일본에서 매일 대본 연습을 해보니 '아, 이거였지?' 싶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을 계속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전체가 보이는 거예요. 전체를 바라봐야 했던 거예요. '그렇지, 연습이 참 중요했던 거지'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Q. 장항준 감독이 '대한민국 감독 중 심은경과 작업하고 싶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단단한 배우 심은경만의 영역을 구축해 가고 있다. 11살부터 시작된 배우 생활을 21년 동안 이어오며, 자신만의 강점으로 생각하는 게 있을까.
"어릴 때는 유머조차 할 수 없었어요. 워낙 내성적이었고요, 겉으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이 몸에 배어있었어요. 배우는 차분하고, 진중해야 한다고 그렇게 연기를 배웠고요. 그런데 한 살, 두 살 먹어가며 그냥 실없는 농담도 하게 되고, '더 킬러스'에서 함께한 모든 감독님 성대모사를 제가 똑같이 할 수 있거든요. 그 특징이 있어요. 나중에 내 걸로 만들어서 어딘가에서 써먹어야지 싶고요. (웃음) 제 강점은 아직 모르겠어요. 아직도 잊지 않아 주시고,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연락해 주시고, 발전할 수 있게 도와주시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강점이라기보다,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게 없어요. 그냥 현장에서 지키려고 하는 건 있어요. 핸드폰을 안 보려고 해요. 딴짓도 안 하려고 해요. 그냥 현장의 분위기를 보고 있는 게 도움이 돼요. 제가 촬영할 장면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흐름이 보이거든요. 딴짓하면 분산이 되니까, 올곧이 현장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Q. '더 킬러스'로 한 가지의 꿈을 이뤘다고 표현했다. 지금 꾸고 있는 꿈이 있을까.
"제가 좋아하는 일본 만화 중에 '몬스터'라는 작품이 있거든요. 언젠가는 그 작품 속 '요한' 같은 역할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그런 말씀을 드리곤 했는데, 아직 이뤄지지 않고 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요한이 존재하는 그 존재감이나, 그가 지닌 메시지에 매료가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