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동원 "'전,란' 엔딩 장면에서 번쩍 든 손…박정민 향한 인사"
* 해당 인터뷰에는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강동원이 푸른 도포를 입고, '지키기 위한' 검을 들었다. 넷플릭스 영화 '전, 란' 속에서 강동원은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2014), '형사 Duelist'(2005)에 이어 다시 한번 검을 쥐었다. 강동원의 사극은 유독 짙은 잔상을 남긴다. '군도'에서는 그에게만 벚꽃이 날리는 착시를 만들어낼 정도였다. '전, 란'에서도 그 활약은 이어진다.
'전, 란'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앞서 박정민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필연적으로 떠올리며 종려의 감정에 임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강동원의 해석은 달랐다. 시대가 갈라놓은 두 사람의 사랑, 우정, 혹은 그 무엇은 국내 관객을 넘어 전 세계 관객에게 '인간'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Q. '전, 란'이 공개 2주 차도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영화 (비영어) 부문 3위에 등극했다.
"좀 더 올라가면 좋겠다. 사극이라도 장르는 '액션'이니까, 많이 봐주시는 것 같다. 사극으로 포장돼 시청자들의 손길이 안 닿을까 걱정했다. 아직도 미국 친구들에게 연락이 온다. 인터뷰 30분 전에도 '파친코'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왜 이제 봤지' 싶었다. (웃음)"
Q. 해외에 있는 친구들의 반응은 어떤가. '파친코' 프로듀서면 좀 더 분석적인 이야기를 해주나.
"일단 주변 반응은 비슷하다. '와, 너 칼 진짜 잘 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제 같이 식사한 분이 '혹시 어릴 때부터 검도했냐?'라고 물으셔서 아니라고 했다. 주로 전해지는 반응은 칼싸움 잘한다는 것이었다. 해외에 있는 친구들의 반응은 심플하다. 'So good(정말 멋지다)', 'So fun(정말 재밌다)' 이런 반응이다. 감상평 같은 건 없다. 'the best swordsman in Korea(한국에서 가장 칼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Q. 웹 예능에 출연해서 검을 쓰는 장면의 비결로 '만화책'을 통해 폼을 연구했다고 전했다. 만화책 속 그림의 자세를 동작으로 연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간극의 노력이 궁금하다.
"제가 기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고, 많이 한다. 칼 쓰는 것도 운동의 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대각선으로 칼을 가르는 것도 그렇다. 거울 보고서도 연습했다. '군도' 촬영 당시 제가 기본자세를 짜서 많이 연습했다. 이를테면 상단 백번, 대각선 백번, 수평 백번, 왼쪽 찌르기 백번 등 하루에 천 번씩 찌르기를 한다. 그걸 다 한 후에 액션스쿨에서 맞춰준 합을 연습했다. '형사' 촬영 당시에는 좀 더 무용에 중심을 뒀다. '전, 란'의 천영이는 '군도'와 '형사' 때 익힌 것을 모두 썼다."
Q. 검을 유려하게 사용하는 것도 그렇지만, '전, 란' 속 천영의 검은 유독 감정이 담겨있어서 더 마음속에 각인이 된 것 같다. 의견을 낸 지점도 있었나.
"오랜 시간 함께한 무술팀과 합을 맞췄다. 그래서 '좀 더 새롭게 하자'라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합을 짜면 의견을 주고받았다. 감정은 시나리오에 잘 담겨있었다. 어릴 때는 진짜 노는 것처럼 검을 사용했다. 천영과 종려의 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7년 만에 만났을 때는 죽일 듯이 검을 썼다. 겐신(정성일)과 싸울 때는 '유일한 상대를 만났다'라는 생각으로 놀듯이 검을 썼다. 대본 속에는 '싸운다' 였는데, 그보다 더 '즐긴다'는 느낌을 담은 것 같다."
Q. 검을 쓰는 장면만큼 강렬했던 장면이 입속에 칼을 넣는 장면이었다. 입으로 칼을 씹어 올렸던 그 장면의 비화도 궁금하다.
"이 네다섯 개 정도에 마우스피스를 꼈다. 실제 칼의 끝에 고무를 붙였었나, 붙였다 떼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끝은 안전상의 이유로 조금 둥글게 다듬었다. '이게 될까?' 싶었는데 바로 되더라. 첫 테이크에 바로 됐다. 실제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입안에 들어간 것 같은데, 화면으로 보니 거의 한 손가락 정도 들어간 듯 보이더라. 저도 화면 보고 너무 잔인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칼을 입에 문 채로 들어 올리지 않나. 원래는 실을 들고 했었는데, 그냥 실없이도 되더라. 그래서 그냥 했다."
Q. 종려를 바라보는 천영의 감정을 어떻게 두고 임했나.
"어릴 때는 진짜 힘든 노비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친구. 그런데 아무리 아버지가 시킨 거라 해도, 천영이를 해치려 하지 않았나. 그 배신감도 있고, 7년 후에는 정말 애정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증오가 되어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저는 7년 후 천영의 얼굴이 편안할 거로 생각했다. 진짜 힘들었지만 천영이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 같았다. 가족 같고 친구 같은 존재도 생기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면서 7년을 보냈으니까. 아이러니하죠. 천영은 평화가 찾아오면, 다시 자유가 없어지는 존재다."
Q. 천영(강동원)과 종려(박정민)의 온도가 더 뜨겁게 느껴졌다. 박정민은 인터뷰에서 김상만 감독에게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떠올리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언급하기도 했다.
"(박)정민 씨가 눈물을 글썽일 때마다, '얘는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나' 진짜 생각 많이 했다.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나.' 그래서 저희끼리는 '멜로눈깔'이라고 불렀다. (박)정민 씨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생각한 것 같다. 본인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특히, 둘이 헤어질 때, 대본에 '글썽인다'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거의 울먹였다. (현장에 있던 신철 작가는 '후반 작업에서 박정민의 울먹이는 사운드를 낮췄다고 덧붙였다.) 저는 감독님께 '셰익스피어 비극'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급제까지 해서 어사화도 바쳤는데, 면천(천민을 면해준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심지어 죽이려 했으니 얼만 화가 났겠냐. 종려의 뜨거움을 받기는 했는데, 어디까지 해야 할지 몰랐다."
Q. 하지만 그 감정이 있었기에 종려의 안개 속 마지막 대사가 더 각인되었던 것 같다.
"사실 시나리오 속 마지막 대사는 '미안하다'가 아니었다. '꼭 살아야 한다.' 였는데 '미안하다'로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살아야 한다'가 더 좋은데. (웃음) 천영 입장에서는 그게 더 슬펐다. (박정민이) 촬영을 두 가지 버전으로 다 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미안하다'가 너무 좋다고 하셨다. 그때 제가 추구한 건, 천영이가 종려의 이름을 한 번도 안 부른다. 계속 '도련님'이라고 한다. 그런데 '종려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다'라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다. 그것도 들어갔다. (박)정민 씨는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라고 하게 됐다고 말했다."
Q. '전,란'은 처음 정여립이 주장한 '천하는 주인이 따로 없다'라는 '대동'으로 시작해, 마지막 엔딩 크레딧 역시 주·조연 순이 아닌, 등장 순으로 올라가며 끝난다. 천영으로 임하며 어떤 작품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저도 '부산국제영화제' 때 엔딩 크레딧을 처음 봤다. '등장 순으로 했구나' 생각하며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저는 '전,란'이 장르는 액션인 영화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주제가 되게 좋았다. 그렇다고 표면적으로 많이 드러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심을 놓치지도 않는다. 저는 작품 속에 주제를 레이어로 쌓아놓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이 딱 그랬다. 처음 시나리오를 열었을 때부터 마지막 대사 '범동계 어때?'라는 대사까지 그랬다. 천영이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에게 띠를 나눠지 않나. 저는 그것이 종려의 뜻을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종려는 자신을 평등하게 대해주지 않았나. 그 의지를 이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가 위에서 멀어질 때, 자세히 보면 중간에서 칼 두 개 찬 천영이가 혼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그게 과거 시험 보러 갈 때, 종려와 나눈 인사다. 하늘에 있는 종려에게 '내가 너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라고 인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Q. 웹 예능에 출연해 박정민의 넷플릭스 추천작 '조용한 희망'을 본인이 출연한다면 본사에서 판권을 사오겠다고 까지 말하며 강한 신뢰감을 보였다. 박정민은 인터뷰에서 과거 강동원이 요즘 눈여겨 보고 있는 배우로 자신을 꼽은 적이 있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판권을 사 오는 것보다 출연하겠다는 도장을 찍는 게 먼저 같다. 사 왔는데 출연하지 않으면 어떡하냐. (웃음) (박)정민 씨는 참 좋더라. 늘 자연스럽다. 꾸밈이 없고, 참 좋은 사람 같다.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깊은 대화를 서로 나눈 적이 없다. "
Q. 그렇다면 요즘 괜찮다고 눈여겨 보고 있는 배우는 누가 있을까.
"박정민. 김신록. (웃음)"
Q.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전지현 시어머니도 기대하는 조합이라는 캐스팅 라인업으로 화제가 된 드라마 '북극성' 촬영 중인가.
"전지현 씨 모시고 열심히 찍고 있다. 극 중 정말 모셔야 하는 캐릭터다. 나이 들어서 많이 모시게 된다. 예전에 '군도' 촬영 당시 정만식 선배님이 저를 모셔주셨는데, 그 고충을 요즘 잘 느끼고 있다. (웃음) 그 후에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코믹 장르를 하지 않을까 싶다. 심각한 거 지겨워서, 신나는 거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