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역은 '황정민' 말고 할 사람이 없다…하게끔" 여전히 뜨겁게 [인터뷰]
영화 '베테랑2'에서 배우 황정민과 처음 호흡을 맞춘 정해인은 "저도 어디 가면 열정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은 아닌데, 상대적으로 선배님과 함께하며 제가 더 부족해 보이는 순간이 많았다"라고 이야기했다. 대중이 '베테랑'을 통해 서도철 형사를 만난 건 2015년이었고, 9년 만에 황정민은 다시 서도철의 옷을 입었다. 하지만, 그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정해인의 말처럼 현장에서부터, 촬영 준비 기간부터 그랬을 거다.
'베테랑'은 죄짓고 사는 놈들을 응징하는 서도철 형사(황정민)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015년 개봉한 '베테랑'에서는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끝내 잡아넣었고,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베테랑2'에서는 악랄한 살인자를 같은 방식으로 살해하고 이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는 연쇄살인범 '해치'를 향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선과 악이 뚜렷했던 전편과 달리, '정의' 질문을 담았다. 그리고 그 미묘한 심리를 서도철을 통해 보여준다. 그가 '후' 내뱉으며 들이켜는 라면 한 그릇에 관객들도 숨을 '후' 내뱉을 수 있는 그 순간은 황정민을 통해 완성됐다.
Q. '베테랑'을 이야기할 때, "누구보다 더 애정을 가졌던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영화 '신세계'를 찍은 후였다. 개인적인 이유로, 나름대로 힘든 시기였다. 일하면서 누구나 자괴감이 들 때가 있지 않나. 대본을 선택해서, 관객에게 좋은 선물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지 않나. '왜 관객들은 재미없어하지?'라는 생각에서 오는 부담감이 쌓여있었던 것 같다. 그때 류승완 감독님과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재미있게 해보자'라고 의기투합해서 만든 작품이 '베테랑'이다. 저에게도 힐링이 되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개봉과 동시에 잘 되어서 또 큰 복덩이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Q. 9년 만에 돌아왔다. 제작보고회에서 '베테랑1'이 밀크 초콜릿이라면, '베테랑2'는 다크 초콜릿이라고 표현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차이점이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같다. 서도철은 그대로인데 아들이 컸다. 초등학교 3학년 아버지였다가,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의 아버지가 된 거다. 쉽게 지나갈 수도 있지만, 아버지에게는 되게 큰 거다. 실제로 제가 '베테랑' 1편을 찍을 때 제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베테랑' 2편을 찍을 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런 부분이 다르게 녹아든 것 같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집안에서 남편, 아버지로서의 삶과 사회에서 형사로서의 삶 등 모든 것이 서도철을 보여준다. 저와 다르지 않다. 저도 직업은 배우이지만, 집에서는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삶을 산다.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서도철을 이해하고, 편하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 같다."
Q. 캐릭터를 맡을 때 '그 옷을 입었다'고 하는데 1편에서 서도철 형사가 입었던 옷을 실제로 보관하고 있다가, 9년 만에 말 그대로 다시 꺼내 입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베테랑2' 촬영에 돌입한다고 하면 '벌써 9년이나 지났다고?'라며 놀라는 분들이 많았다. 아마도 명절 때마다 '베테랑'을 틀어주신 덕분에 얼마 전에 개봉한 작품처럼 느껴지시나 보다. 그래서 '베테랑2'를 볼 때, 1편 이후 시간이 얼마 지난 것 같지 않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몫이라고 생각했다. 1편 때 옷을 그대로 입고 싶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실제 그 옷을 입으니 너무 신기했다. '베테랑' 1편을 찍는 느낌이었다. 2편 때 찍은 옷을 잘 보관하고 있다. 만약 3편을 찍게 된다면, 또 입을 수 있을 거다. 똑같은 옷 세 벌을 만들었다. 보호대가 티가 나지 않도록, 사이즈를 좀 달리해서 만들었다. 황정민은 늙지만 서도철은 늙지 않는다. 그 옷을 다시 입고 싶다."
Q. 류승완 감독은 영화 '베테랑2' 속 액션을 떠올리며 '정형외과 액션'이라는 표현을 했다. 정말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베테랑' 1편에서 제가 부딪혔을 때 관객들이 '악'하고 소리 질렀던 순간을 떠올리며, 류승완 감독님께서 다양한 지점을 담으셨다. 그런데 시사회를 아이맥스 관에서 봐서 '악' 소리를 못 들었다. 나중에 작은 관에서 보고 싶다. (웃음) 액션보다 날씨가 더 문제였다. 옥상에서 촬영할 때, 너무 추웠다. 워낙 액션을 잘 찍는 감독님이시니까, 모든 것이 머릿속에 이미 계산이 되어있었다. 춥지만 않았으면, 쉽게 끝났을 것 같다. 추워서 고생했다."
Q. 서도철 같은 베테랑 형사가 박선우의 음흉함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었다. 정해인과의 호흡은 어땠나.
"아무리 백전노장이라도 어떻게 처음 본 그 착하디착하게 생긴 아이의 이면을 알겠냐. 모를 수 있다. 정해인이 두 얼굴을 가진 묘함이 있다. 류승완 감독님이 그걸 이용하신 것 같다. 정해인이 너무 잘한다. 몸을 기본적으로 잘 쓰는 친구다. 저에겐 '베테랑2'에서 '럭키비키(잘못된 것도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한 순간이 정해인을 만난 거다. 사실 빌런 역을 하려는 배우가 없다. 했을 때, 잘못될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쉽게 이것을 선택할 배우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정해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럭키비키한 상황 아닌가 싶다."
Q. 최근 웹 예능에서 활약도 화제가 됐다. 특히 '핑계고'에서 과거 낚시 여행처럼 앱 없이 즉석에서 여행을 가는 '풍향고'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풍향고'는 갑니다. 말실수 때문에 말도 안 되게 된 거다. 그런데 가자고 해서 가게 됐다. 앱 없이 간다. 갔다가 바로 돌아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에는 모든 걸 앱으로 예약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바로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간다."
Q. 영화 등으로 큰 사랑을 받은 후, 무대에서도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황정민의 '도전'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한 사람의 광대로서,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관객과 같이 소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예술가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못 만나고 놓치는 것 아닌가. 어떤 역이든 '이 역은 황정민 말고 할 사람이 없다'라고 생각하게끔 하고 싶은 게 제 욕심이다. 미친 듯이 열심히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그래서 감독님들이 좋아하시는 것 같다. '서울의 봄' 때 다른 일정으로 무대인사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우성이 하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웠다. '베테랑2' 때는 정우성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하고 싶다."
Q. 황정민처럼 연기를 잘하는 방법이 있을까.
"연기는 태어나자마자 타고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공부가 필요하다. 몸이 악기이기 때문에 자꾸 훈련을 시켜줘야 한다. 많이 봐야 하고, 많이 읽고, 많이 고민해야 한다. 관객들이 보면, 단시간에 잘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차곡차곡 쌓인 시간이 보여지는 것 같다. 제가 30대 때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영화를 공부하고, 고민한 것들이 지금 잘 쌓여서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가 저에게 와서 그런 질문을 하면 '얼굴로 승부할거야, 연기로 승부할거야'라고 물어본다. '연기로 승부하겠다'라고 답하면, '그러면 나를 찾아오면 안 되지'라고 이야기할 거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