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박쥐와 복숭아
우리나라에서 박쥐는 만나기 어려운 동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동남아시아 여행 중에 박쥐를 만나면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정이 가지는 않는다. 어느 해인가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굴에 황금박쥐가 살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후 찾아가 보았다. 동굴 입구에서는 금방이라도 황금박쥐를 만날 수 있을 것처럼 분위기를 띄웠으나 실제는 동굴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까지 황금박쥐의 뒤통수도 보지 못했다. 전체 동굴 중 일부만을 개방했기에 황금박쥐를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허무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이 떼로 몰려오는데 황금박쥐가 “나 여기 있소.” 하지는 않을 테니 이해할 만하다. 황금박쥐가 동굴 깊숙이 숨어 오래오래 살기 바라는 마음이다.
중국 조지겸의 그림 <복수도(福壽圖)>를 보자. 복숭아를 탐하는 박쥐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쥐는 본래 야행성인데 환한 대낮에 복숭아를 탐하다니 비현실적이다. 또한 나무에 열린 복숭아는 멍든 것처럼 싱싱해 보이지도 않는다.
전설에 의하면 서왕모가 키우는 반도(蟠桃)는 세 종류가 있다. 3천 년에 한 번 열리는 것을 먹으면 신선이 되고, 6천 년에 한 번 열리는 것을 먹으면 불로장생하고, 9천 년에 한 번 열리는 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귀한 9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복숭아에는 자줏빛 반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 속의 복숭아가 멍든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박쥐는 복(福)을, 복숭아는 수(壽)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림의 제목이 복수도가 되었다.(앞의 글 <동방삭과 복숭아>, <박쥐와 행복> 참고) 그래서 이 작품은 “행복하게 오래 사세요.”라는 축원의 글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 이정의 <복수도(福壽圖)>를 보자. 그림의 상단 여백을 하늘 삼아 박쥐 다섯 마리가 날고 있다. 오복을 기원하는 뜻이다. 그리고 그림 가운데 노인이 복숭아를 들고 있다. 그런데 그 노인의 모습이 기이하다. 노인의 얼굴은 복숭아 바로 옆에 있지만, 얼굴 위로 이마가 길게 늘어나 산처럼 솟아 있다. 이런 기이한 외모의 노인을 ‘수성(壽星)노인’이라고 한다. 박물관이나 사찰 벽화에서 이마가 높이 솟은 노인을 그린 그림을 만나면 그 주인공이 바로 수성노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성노인(壽星老人)은 민간에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신격화되어 장수를 상징하는 그림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이정의 <복수도> 역시 장수(복숭아)와 행복(박쥐)을 기원하는 그림인데, 수성노인이 등장하여 복숭아를 들고 있으니 장수에 방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림 상단 왼쪽에 세로로 수복쌍전(壽福雙全, ‘수’와 ‘복’ 두 가지가 온전하다)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장수와 행복을 축원하기 위해 그렸다는 것을 뜻한다.
<복수도(福壽圖)>의 내용이 행복과 장수인데, 이 두 가지의 필요조건은 건강이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한다. 스트레스를 이기는 방법, 스트레스의 반대는 스트레칭이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