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지연 "200% 자신 있습니다"
임지연은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로 박연진이라는 이름을 하나 얻었다. 모두가 '연진아'를 외칠 때에도 그는 자신 있었다. 이후 '마당이 있는 집'으로 대중 앞에 섰을 때에도 '박연진의 그림자'를 지울 수 있을까 우려했다. 기우였다. 임지연은 자장면을 먹는 그 장면 하나로 한 많은 '추상은'이 됐다. 그리고 영화 '리볼버'로 오랜만에 관객과 만난다. '유체이탈자'(2021) 이후, 약 3년 만이다. 그는 여전히 팔랑팔랑 나비같이 날아들어 펄떡펄떡 심장을 뛰게 한다.
'리볼버'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던 전직 경찰 수영(전도연)이 출소 후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임지연은 극 중 마담 정윤선 역을 맡았다. 누군가에게 기생해 가진 것을 "요만큼만" 나눠 먹으려는 인물이다. 수영의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호한 상태로 등장해 점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그 미묘한 변화가 '리볼버' 속 전도연과 임지연의 케미이기도 하고, 보는 이에 따라 오승욱 감독의 전작 '무뢰한'과 '리볼버'의 대화로 느껴지기도 한다.
Q. '리볼버'를 본 소감이 어땠나. 스스로 느낀 성취감이 있을 것 같다.
"일단 영화가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스크린에 제 모습이 나와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성취감이었고요. 저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작품이었어요. 저는 항상 잘하고 싶고, 매력 있게 만들고 싶어서 공부도 많이 하고, 분석도 많이 하고, 캐릭터의 서사도 엄청나게 길게 고민해서, 인물의 움직임에 이유를 만들고, 모든 호흡을 다 계산합니다. '더 글로리' 속 연진이도 다 계산된 거예요. '리볼버'는 엄청난 선배님들 사이에서 큰 부담 속에 시작한 작품이거든요. 그런데 처음으로 내려놓자고 생각한 작품이에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많이 생각하지 말자, 현장에서 공기를 느끼자, 이 사람이 주는 것에 제대로 반응해 보자'라고 생각하며 많이 계산하지 않고 현장에 간 유일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Q. 내려놓기까지 어떤 생각의 과정이 있었나.
"서사가 필요하니까, 정윤선에 대해 생각했어요. '무뢰한'의 어린 김혜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톡톡 튀면서 더 활발한 김혜경인 거죠. 정윤선은 마담이고, 그 생활도 꽤 했어요. 나쁜 짓도 했고, 남자도 많이 만났고요. 그 사이에 임석용(이정재)도 있었고요. 누군가를 뜯어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싫지만, 그게 당연하게 살아온 여자예요. 그러다 '하수영'을 만나게 되죠, 그런데 생각보다 쿨하고 멋있는 거예요. 징징댈 상황이고,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쿨하네'라고 그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Q. 많은 준비를 하다 내려놓는 과정에서 불안함도 컸을 것 같다.
"엄청 무서웠죠. 많이 쫄았습니다. 잘하고 싶었으니까요. (김)종수 선배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윤선이가 그냥 너야 지연아, 술 마실 때 나오는 모멘트, 그거 써'라고요. 알을 깨보는 용기를 낼 기회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많이 준비하지 않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해보고 이런 도전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 나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배우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Q. 계산하지 않은 현장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모습도 있을 것 같다.
"저도 놀랐어요. 정말 되게 많이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저는 (제 모습이) 예뻐 보였어요. 일그러지고, 입이 찢어지게 웃고, 되게 '왁' 하는 얼굴 표정들이 예뻐 보여서 좀 좋았던 것 같아요. 윤선이는 느끼는 대로 다 전달하는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더 계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Q. '리볼버' 제작보고회에서 '한예종 전도연'으로 자신을 지칭했다고 고백했다. 리얼 전도연과의 호흡은 어땠나.
"저는 성격상 엄청 많이 표현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스타일인데요. 선배님께서 '하수영'으로 집중하실 때 방해되고 싶지 않았어요. 저를 정윤선으로만 생각하시길 바라는 마음에 현장에서는 못 다가갔어요. 그게 선배님과 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어요. 그 대신 정말 많이 배웠어요. (전도연) 선배님 촬영하실 때, 제 것보다 더 많이 봤어요. '우와' 하며 매 순간이 배움이었습니다. 어릴 때 그렇게 존경하고 동경한 선배님과 하수영, 정윤선이라는 작품 속 인물로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어요."
Q. '리볼버'를 보며 웃음 지었던 장면 중 하나가 조사장 역의 정만식과의 호흡이었다. 두 사람이 주차장으로 내려올 때 티키타카가 인상 깊었다.
"현장에서 제가 '만식이 형'이라고 불렀어요. 선배님도 저를 예뻐해 주셨던 것 같아요. 하늘 같은 선배님이시지만, 딱 조사장과 정윤선, 그 바보 같은 둘의 이야기를 만끽한 것 같아요. 계산을 안 하고, 몸짓을 막 쓰거나, 기괴한 걸음걸이나 표정도 (정)만식이 형을 보니 나오더라고요. 조사장을 무시하는 정윤선의 모습이 재미있었고, 제가 하는 족족 다 받아주시는 (정)만식이 형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천잰데?'라고 하신 것도 다 받아주신 거예요. 그렇게 표현하실 줄 몰랐어요. (웃음)"
Q. '더 글로리' 속 연진이도, '마당이 있는 집' 추상은의 자장면 먹는 장면도, 뭔가 임지연이 하는 연기에는 대중에게 확 임팩트가 되는 장면이 있는 것 같다. '리볼버'에서도 그런 장면을 꼽아볼 수 있을까.
"사실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더 글로리'도 그랬지만, 자장면 먹는 장면이 사랑을 받을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만약에 '리볼버' 속에서 굳이 고르자면 '에브리띵(everything)'을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처음으로 윤선이가 가장 진솔하게 말한 장면이기도 하고요. 굳이 한 장면 고르자면 그 장면 같아요."
Q. 작품을 거듭하며 연이어 연기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호평이 때로는 부담이라는 무게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글로리' 연진이가 강렬한 캐릭터였잖아요. 연진이로 알아봐 주신 분들도 많고 큰 사랑을 받은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도 연진이 이름이 나오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은 하나도 안 합니다. 솔직히 자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연진이를 피할 거야'라는 생각도 안 할거고요. '연진이 이야기 좀 그만했으면'이라는 생각도 안 할 겁니다. 왜요? 사랑받은 만큼 연진이가 오래오래 기억되면 좋겠어요. 그동안 갈고 닦은 저만의 필모그래피가 다 소중하고요. 그 필모그래피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고요. 제가 성장하고, 좌절하고, 성취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소중한 기회도 잡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도전할 거고요. 혼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또 다른 노력을 더 할 거고요. 전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요. 저는 솔직히 '자신 있는 노력파'예요. 저는 누구보다 대단한 재능은 없지만, 노력만큼은 주연상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Q. 그만큼 작품을 고르는 눈도 중요한 것 같다.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지점이 뭘까.
"저는 약간 상상이 안 되면 선택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내가 정윤선?, 마담이라니?, 전혀 그려지지 않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만들어봐?'라고 이어지는 것 같아요.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 내 얼굴, 내 몸에서 그 아우라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찾아오면 선택하는 것 같아요."
Q. '리볼버' 이후 만날 수 있는 차기작 소식도 있을까.
"사극 드라마가 한 편 곧 마무리될 것 같아요. 올해 1월부터 촬영했거든요. 정말 많은 서사가 있는 인물이에요.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립니다."
Q. 많은 서사가 있는 인물이라는 말에 다시금 궁금해진다. 정윤선이 생각나지 않는 인물일까.
"200% 자신 있습니다. 사극이라는 장르 속에서 임지연을 새롭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사극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여성 서사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힘을 가진 드라마가 될 것 같아요. 몸 바쳐 열심히 촬영했습니다."
Q. 앞서 한 시상식에서 이도현이 소감을 전하는 중 공개적으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리볼버'의 개봉을 앞두고 응원해 주고 있나.
"엄청나게 응원을 많이 해줍니다. 좋은 친구이기도 하고, 배우로서 서로 리스펙트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나 싶어요. 건강하게 잘 지내면 좋겠습니다. (웃음)"
Q. 무더운 여름, 쟁쟁한 작품들이 극장을 찾아왔다. '리볼버'의 관객들에게 짧고 굵은 소개를 하자면.
"다른 훌륭한 영화와 함께 '리볼버'가 극장을 채울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무대 인사 때 감사한 마음 더 가까이 전할 거고요. 여름에 어울리는 의미 있고, 매력적인 영화가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에브리띵(everything)' 사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