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AI문화경영연구소 소장

한국은 명실공히 문화예술·콘텐츠 강국이다. 최근 Sora와 Gen 3등, 문화예술·콘텐츠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인 생성형 AI들이 급속도로 발전, 향후 문화 강국으로서 한국의 글로벌 위상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직업들이 가장 늦게 AI로 대체될 것이라는 그간의 예상들이 모두 빗나간 작금, 문화예술·콘텐츠 분야에서는 인간의 창의성에 관한 새로운 논의들이 발현되고 있어 이채롭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성형 AI로부터 촉발되는 인간의 생성 공감각(generative synesthesia)의 공진(共振)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새로운 형태와 함의를 지닌 신(新) 예술 장르의 등장을 견인해 왔다. 신(新) 예술 장르란, 테크의 진보와 더불어 낯선 영역에 도전하려는 예술가들의 실험 정신, 기존 관념에 갇히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강렬한 예술혼의 융합적 산물인 ‘뉴 폼 아트(New Form Art)’로 명명될 수 있다. 종합예술의 경지에 오른 영화의 발자취도 그러했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공개 상영함으로써 새로운 시발점을 알린, 당시 무엇이라 정확히 워딩하기 어려웠던 이 새로운 예술 장르는, 일종의 시각적 유희로서 평가 절하되었던 동적 기록인 활동사진 시대를 거쳐, 무성에서 유성으로 끊임없이 그 형태를 탈피하며 스스로의 변곡점을 계시해 왔다.

이처럼 코페르니쿠스적 패러다임 쉬프트를 유도했던 뉴 미디어의 등장에 열광한 이들이 있었으니, 이는 다름 아닌 시대를 풍미한 유명 미술가들이었다. 일례로 1930년에 공개한 초현실주의 실험 영화 <황금시대> 제작에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미술가 살바토르 달리(Salvador Dali)가 참여함으로써, 달리 특유의 독특한 예술적 향취가 영상의 작품성과 톤앤매너를 완성했다. 일상의 비상식적 상황과 부르주아 계층의 모순적 행동, 기존 가치 체계와 권력의 전복 등 파격적인 주제를 담은 <황금시대>는, 달리의 작품 세계와 만나 영화 속 미장셴(영화 속 '화면'에 조형적 요소와 상징을 시각적으로 배치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시켰다. 이처럼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고양한 인간의 새로운 감각 내지는 창의성은 전에 없던 혁신적인 예술 장르를 발현시킴으로써 예술가, 더 나아가 next answer로서 예술 그 자체의 존재 이유를 강화해 왔다.

다시, 생성형 AI가 촉발한 인간의 생성 공감각 주제로 돌아가자. 보스턴대학 연구진들은 Midjourney, Stable Diffusion, Dall-E와 같은 이미지 생성형 AI가 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상기 개념을 규명하였다. 공감각은 원래 두 가지 이상 서로 다른 감각을 동시적으로 느낀다는 뜻으로, 해당 연구진들은 ‘AI가 아이디어를 제공함과 동시에 표현까지 담당한다’는 맥락에서 생성 공감각을 설명하였다. 생성형 AI를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이들이라면 어떤 맥락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으리라. AI를 활용한 뉴 폼 아트 관련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필자는, 여기에 ‘인간과 생성형 AI 간 특유의 상호 작용에서 기인되는 인간의 새로운 창의 매커니즘 내지는 인간의 선택과 지시에 교차적으로 응대하는 생성형 AI의 능동적 반응성’이라는 디테일을 덧붙이고자 한다.

AI 모던 오페라 <생성형-마술피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원작으로 하되,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 재구성, 작곡·연주에의 변주에 이르기까지 멀티모달 지향의 이미지·영상·사운드 생성형 AI를 전방위적으로 접목하여 탄생시킨 작품이다. 영화와 더불어 또 다른 결의 종합 예술로 평가받는 오페라는 유독 한국에서는 원작에 충실한 버전이 주로 공연되어 왔으며, (일부 오페라 애호가들을 제외한)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낯선 예술 장르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레지테아터(Regie-Theater : 연출가가 원작의 배경이나 분위기는 물론 결말까지 자유롭게 변형하는 형식) 개념 확대와 더불어, 유럽·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활발히 제작되고 있는 현대적 무드의 오페라 인기에 힘입어, 모던 오페라는 일종의 ‘전방위 예술 장르의 하이브리드 집약체’이자, ‘전통과 현대가 조우하는 힙트레디션(Hip-Tradition)의 결정판’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필자가 시도 중인 모던 오페라와 AI에서 만남은, 지구상에 존재해 온 모든 인류의 지성이 ‘예술’과 ‘과학’이라는 당위성 내에서 곁고 틀며 이루어낸 다차원적 협업의 면면들이 완전히 다른 지점에서 재구성·재조합되는 필연적 현상으로 풀이된다. 특히 멀티모달형 생성형 AI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인간의 시각과 청각이라는 개별적 감각들이 공감각적 측면에서 융합되기 시작한바, 이제는 보는 감각(visual sense)이 듣는 감각(auditory sense)으로서 동시적으로 치환되고 있으며, 데이터 씽킹(Data Thinking : 데이터에 입각하여 생각하는 사고 체계)은 그 자체로 혁신적이고 예술 행위이자 창조적인 마인드맵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생성형 AI로 촉발된 인간의 생성 공감각은 1 더하기 1의 경험적 결과치인 2를 넘어 새로운 무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같은, 기존의 문법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새로운 예술 장르의 탄생을 위한 마중물로 역할 가능하다.

한류의 진원지로서, 한국은 전 세계 문화예술·콘텐츠 강국으로 우뚝 섰다. 이때 개발하여야 할 예술가·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중요한 능력은 다름 아닌, 인간의 생성 공감각을 기반으로 기민하게 반응하는 다중 사고력과 창조성이다. 생성형 AI로 인해 촉발·고도화되는 생성 공감각은 이제 디폴트적 감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인바, 감각 대 감각의 1:1 결합을 넘어, N차 원적으로 무한 결합·확장되는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아직은 시각과 청각이 주로 시도되고 있으나, 머지않아 시각과 촉각, 후각과 청각 등 다양한 감각 간 교차 지점이 생겨날 것이며, 이 모든 감각이 동시적으로 상호작용 하며 또 다른 이름의 감각으로 발현되어 갈 것이다. 이렇듯 새로이 발견되는 인간의 감각에 맞추어 다중적으로 사고하고 창조하는 능력이야말로 이 시대 문화예술·콘텐츠 분야 인재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핵심적 역량이라 할 수 있다. AI 모던 오페라 <생성형-마술피리>는 2025년도 상반기에 개최되는 AI 휴머니티 예술제에서 공개될 예정으로, 공개 시점에 새로이 대두될 생성 공감각의 변화에 대해 필자 역시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과연, 생성형 AI는 인간의 새로운 감각을 어디까지 고양할 것인가. 그러한 감각이 촉발하는 예술은 과연, 인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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