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욱여넣고 불 뿜고…계속되는 "나의 쓰임새"에 대하여 [인터뷰]
배우에게 어떤 주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경력이 쌓이고, 주연작을 하고, 분명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는 때가 되면 당연해지는 것들이 있는데 주지훈은 늘 특정할 수 없다. 분명 쉬운 길이 아님에도 도전을 피하지 않는다. 심지어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에서는 그 옛날 '주유소 습격 사건' 같은 복장을 하고, 입에 술을 넣고 불까지 뿜었다. 주지훈에게 중요한 건 '변신'이 아니다. 그는 "나의 쓰임새"라고 이야기했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는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 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주지훈은 인생 한 방을 노리는 레커차 기사 '조박' 역을 맡았다. 그는 '탈출'에 대해 "팝콘 무비"라고 소개했다. 무거운 메시지보다 재난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같이 쫓아갈 수 있는 영화다. 그 속에서 주지훈이 맡은 '조박'은 숨 쉴 틈을 만들어주면서 동시에 터부시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작은 화두를 던진다.
Q. '비공식 작전' 이후 약 1년 만에 극장가의 여름에 돌아왔다.
"저는 일을 매일매일 하고 있어서,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요.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여름, 겨울 전쟁터에서. 늘 부담되고, 늘 긴장됩니다. 계속 환경도 변화하잖아요. 영화 작업에는 시간이 걸리고, 불안 요소도 많아서 늘 긴장됩니다. 밥상 물가가 높아진 요즘 같은 때에는 긴장감이 더 가중되죠."
Q. 처음 '탈출'에 합류하게 될 때가 궁금하다. 어떤 포인트로 결정했나.
"저는 팝콘 무비로 재미있게 봤어요. 관객에게 주는 재미가 있고, 전개도 빠르고, 긴장 포인트도 있고, 웃음도 있고, 결말도 명확하고요.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고, 제가 이 작품을 하고 싶어했던 이유와도 맞닿아 있었던 것 같아요."
Q. 조박은 극 중 숨 쉴 틈을 만들어주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시작과 끝의 얼굴이 달라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인물을 위해 어떤 선택을 했나.
"팝콘 무비라고 했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그렇게만 다가가지는 않아요. 터부시되고 있는데 사실 '이기심'도 인간의 감정이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의 톤이 무겁지 않기에 조박은 이기심을 조금씩 드러낼 수 있었어요. 이기심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잖아요. 사실 조박은 이기심보다는 개인주의 같은 느낌이 더 있죠. 자기가 살겠다고 남을 죽음으로 밀어 넣거나 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그런 점이 재미있었어요. 전반적으로 팝콘 무비 속에서도 조박같은 캐릭터가 관객에게 스몰 토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오면서 친구한테 '너는 저런 개가 쫓아오면 나 구할 거냐?'라고 물어보고, '당연히 도망가야지'라고 대답할 수 있잖아요. 엄청나게 철학적인 건 아니더라도, 사실 그 짧은 대화들이 마음에 남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웃음)"
Q. 김태곤 감독은 앞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주지훈이 먼저 망가짐을 제안했다'라고 하더라. 예고편과 스틸컷이 공개된 후 '얼굴 낭비한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웃기려고 한 건 아닌데요. 조박이 주유소에서 손님의 돈을 빼돌리는 나쁜 짓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요즘에는 없는데, 저 어릴 때 가스배달 하던 무서운 형들이 떠올랐어요. 표현하자면, 왠지 돈이 없으니, 미용실도 못 가고 과산화수소로 탈색할 것 같은 느낌이죠. 제가 코믹을 좋아하긴 해요. 어릴 때부터 주성치는 저에게 굉장한 호감을 느낀 배우 중 한 명이었어요. 변신 욕심은 없어요. 어릴 때는 그런 생각도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살펴보니, 제가 A를 보여주고 싶다고 A가 되지 않더라고요. 관객이 B를 느끼면, B가 되는 거예요.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되지도 않아요. 결국 관객이 걱정하는 거예요."
Q. 문성근, 예수정, 박희본, 박주현, 김수안, 그리고 故 이선균 등 '탈출'에서는 살아남는 사람들이 그 자체로 앙상블이 되었다. 하룻밤 사이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앙상블을 완성해 갔나.
"사실 박희본이 공식 석상에서 '편했다'라고 하지만 진짜 그랬는지 모르잖아요. (웃음) 그들을 빼면 제가 막내거든요. 저는 (김)희원이형, (이)선균이형, 문성근 선배님, 예수정 선배님 모두 편해요.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현장이었어요. 제 느낌에는 선배님들께서 훨씬 오픈 마인드였어요. 아니었다면 진짜 불편했을 거예요. 계속 뭉쳐 다니잖아요. (웃음)"
Q. 그 속에서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선균은 어떤 선배였나. 함께한 작품의 개봉을 앞두고 마음이 남다를 것 같다.
"좋은 선배였고, 좋은 형이었죠. 제가 형의 전작도 많이 봤고, 후배니까 느끼는 건데요. 형은 신뢰할 수 있는 배우잖아요. 한쪽 파트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와 함께 연기하는 건 정말 편해요. (이)선균 형은 한예종(한국종합예술학교) 특유의 디테일함이 있어요. 아빠가 딸을 두고 가는 게 맞는 건지에 대한 고민도 대화로 나눴거든요. 개봉을 앞두고, 예고편도 보게 되고, 후시 녹음을 하러 가서 함께한 장면들도 보게 되니까요. 그냥 편안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Q. 웹 예능에 출연해 내면이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 리트리버'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선후배를 대할 때 비결이 있나. 스스로 '꼰대'(기성세대를 뜻하는 은어) 검열하는 건가.
"선배를 대할 때, 편하다는 말의 의미가 제가 누워서 반말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기본적인 매너를 잘 지키면 어려울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후배는 왜 어렵냐면, 제가 지키는 매너가 이들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선배님께는 편하게 '형 끝나고 한잔하실래요?'라고 물을 수 있어요. 선배님께서 '들어갈 거야'라고 답하시면 끝이거든요. 그런데 후배들에게 물으면 피곤해도 제가 물어보는 거라 가는 걸 수도 있잖아요. 저는 꼰대예요. 노력하지 않아요. 10분 정도 늦으면 '뭘 10분 갖고 그래'라는 말을 해요. 그럼 저는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게 아니야, 지켜야 하는 거야'라고 답해요. 이런 말을 하고 있어요.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랑 자라서요. 어쩔 수 없어요. (웃음)"
Q. '탈출'은 안개 속에서 매우 많은 부분이 핸드헬드(손을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는 촬영 기법)로 촬영됐다. 고충이 있었을 것 같다.
"'탈출'이 가진 작업 강도가 높죠. 달려야 하고, 규모가 있는 작품이잖아요. 그러면 준비 과정에서 정말 열심히 해요. 오히려 사고는 긴장을 덜 하는 작품에서 나는 것 같아요. 수채화 같은 작품의 현장이 더 힘든 경우가 많아요. '탈출'은 실제로 안전상의 이유가 있기도 했고, 준비를 철저히 했어요. 일하는 데 불편함은 전혀 없었습니다."
Q. 그러면서도 직접 불을 뿜는 등 고충이 많았을 것 같다.
"고충이라면, 제가 차 트렁크에 들어가 있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왜 거기는 CG(컴퓨터 그래픽) 안 해줬을까. 정말 통증이에요. 온몸이 다 뒤틀려서 너무 아팠거든요. 실제 트렁크였어요. 제 키가 188cm인데 트렁크에 몸을 욱여넣어서 5일 동안 찍었거든요. 통증과의 사투였습니다. 불을 뿜는 건 원래 CG로 한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한다고 했어요. 제작자인 김용화 감독님('신과 함께' 연출)도 '왜 네가 하니?'라고 연락이 왔었어요.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중요한 위기를 타파하는 수단이잖아요. 또, 조박이 도망가는 대신 한 선택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조박이 프로 차력사가 아닌 만큼, 너무 멋지게 해내도 이상할 것 같았어요. 얘가 히어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찝찝하게라도 전우애 비슷하게 생긴 걸로 뿜어내는 거로 생각했어요. 그 불이 정말 위스키를 머금고 낸 거거든요. 엄청나게 쓰니, 저도 모르게 일그러지는 표정이나, 입가가 살짝 마비돼 흐르는 술이나, 그런 선물 같은 순간들이 카메라에 담겼죠. 그 순간이 관객에게 전달되길 바랐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뿜을 수밖에 없는 거죠."
Q. 한국 영화 위기론이 계속 대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지훈이 가장 마음을 쏟게 되는 지점은 어느 지점일까.
"요즘 저는 명확한 것에 마음이 가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기획 의도와 내용이 일치하는 것에 눈이 가요. 이 작품은 누가 봐도 어둡고 진지한 작품인데, 제작사나 감독님께서 흐름을 빠르게 해서 기획 의도를 비틀어 셀링 포인트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하면, 저는 참여하지 않아요. 리스크가 너무 커요. 느려도 사랑받는 작품은 여전히 존재 하잖아요. 저는 셀링 포인트가 확실한 작품이 좋아요. 그리고 그 장점을 부각하려는 제작진과 함께하는 걸 좋아하고요."
Q. 제작 전반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제작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아직 오픈은 안 했지만, 이미 제작에 참여하고 있어요. 제 소속사가 '지배종'에도 '젠틀맨'에도 공동 제작으로 참여했잖아요.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에서는 저도 같이 참여하는 거죠. 저는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걸 좋아하는 게 천성인 것 같아요. 제가 보내는 여가시간을 살펴보면 과반수 이상을 감독, 작가, 제작자와 보내고 있더라고요. 그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아이디어를 내고, 글을 쓰는 능력이 있는 친구가 그걸 구체화 시켜줘요. 그런데 저는 경영적인 면은 또 모르잖아요. 그러니 제작사를 찾아서 감독님을 연결하며 더 작품에 다가가는 거죠. 지금까지 돈이 나가고 있을 뿐, 하나도 안 되고 있어요. (웃음) 그런데 재밌어요."
Q. 계속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웹 예능에 출연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예능에 대한 생각도 있나.
"작년 1월 방송된 tvN '두발로 티케팅'처럼 쓰임새가 있고 싶어요. 예능이라는 분야에도 시스템이 있고, 수년간 함께한 호흡이 있잖아요. 웃기고 싶은 마음에 한 말이 그 흐름을 끊게 되면 되게 위축되더라고요. 저의 쓰임새가 마이너스는 아닐까 두렵더라고요. 저는 예능이든 어디든 저의 쓰임새가 있다면 언제나 열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