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식욕까지 끊어낸…"간절함"으로 [인터뷰]
“규남을 얼굴과 몸 전체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먹는 것에 대한 절제를 매우 심하게 한 것 같아요. 제가 쓸 수 있는 에너지와 움직임만으로요. 식이섬유를 채우기 위해 야채를 섭취하고, 탄수화물은 극한으로 줄였어요. 그래서 촬영하면서 ‘어지럽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찍은 것 같아요. 순간순간 몸에서 당분을 너무 원했는데, 그 순간에도 고민이 되는 거예요. 그만큼 몰입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잘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며, 결과적으로 촬영이 끝났을 때 ‘규남으로 할 수 있는 걸 다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른 장작이 되어 자유를 갈망하는 날 것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서 더 몰아붙인 것 같아요.”
이제훈이 말했다. 영화 ‘탈주’에서 이제훈은 꿈을 몸으로 보여줬다. 그가 맡은 캐릭터 규남은 자신의 삶을 정할 수 없는 북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쪽으로 온 몸을 던져 질주하는 인물이다. 그 절박함과 절실함을 이제훈은 연기로만 표현하지 않았다. 그의 표현처럼 자신의 몸을 마른 장작처럼 만들었고, 불씨를 댕겼다. 화르르 타는 그 몸은 남으로 질주하는 규남의 에너지를 눈에 보일 듯이 스크린에 옮겨냈다. 자유라는 꿈을 꾼 규남처럼, 이제훈은 영화라는 꿈을 꿨다. 그리고 매순간 질주하는 규남처럼, '탈주'를 위해 매순간 몸을 꽉 조였다.
Q. ‘탈주’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꿈꾸며 북에서 남으로 질주하는 규남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목표점이 명확한 규남의 매력을 어떻게 생각했나.
“이 작품이 보여줘야 하는 목적성이 규남을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환경이 쉽지 않아도, 도착점에 무엇이 있을지도 몰라도, 일단 꿈을 위해 나아가잖아요. 그 꿈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더라도 꿈을 꾼다는 점에서 ‘탈주’의 메시지가 규남과 동일시된 것 같아요. 장애물이 많아도, 절대 타협도 없고, 앞뒤도 없잖아요. 뒤는 죽음뿐이고요. 저도 배우라는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사실 배우라는 업이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하고 싶다고 보장되는 게 없잖아요. 연기는 누군가 선택해 줘야 계속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누군가 사랑해 줘야 성장할 수 있고요. 그런 미지수 가득한 삶이라도 그 꿈을 향해서 살아왔고, 다시 돌아가도 그 꿈을 향하고 싶어요. 도착해봐야 알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곳 역시 험난할 수 있지만, 그곳을 향해 질주하는 규남이 멋지고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Q. 규남에게 ‘자유’ 같은 간절한 꿈이 이제훈에게 ‘연기’라고 읽힌 걸까.
“다양한 도전을 이어온 것이 결국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그것이 없으면 제가 이 자리에 있기도 힘들 거고요.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도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특별하게 제가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작품 속 배우들을 보며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는 열망과 꿈을 꿨어요. 그러면서 학교도 가고, 이렇게 걸어온 날들이 한편으로는 기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근원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죠. 그것이 없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만큼 두려움도 있어요. 영화를 계속하려면 선택을 받아야 하고,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면?’이라는 상상도 하게 돼요.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롭거든요.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너무나도 힘들고 지친 상황 속에서도 영화를 보면 행복하거든요. ‘저런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 같이 하고 싶어’라는 의지가 들끓어 올라요. 그럼, 원동력으로 쉬지 않고 발걸음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식단 조절 등 노력을 기울인 기간이 정확히 어느 정도 될까.
“SBS ‘모범택시1’을 찍은 후 ‘탈주’를 찍어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끝남과 동시에 준비 과정까지 최소 6개월 정도 식단 조절 등을 통해 규남의 모습을 유지하며 만든 것 같아요. 보면 안쓰럽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배우로서는 ‘응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어적인 면에서는 실제로 함흥에서 태어나 황해도에서 군 생활을 했던 분께 레슨을 받았어요. 그분을 통해 따라 하는 것 이상으로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었어요. 대사를 하나하나 검수받아 녹음한 후, 카피캣이 되어서 대사를 표현했어요. 촬영 때, 장면마다 그분이 상주하고 계셨거든요. 감독님께서 ‘오케이’라고 하셔도, 그분이 갸우뚱하면 제가 ‘한 번만 다시 하고 싶다’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규남의 말을 감히 창작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Q. 과거 ‘청룡영화상’에서 러브콜을 보낸 배우 구교환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규남을 맹렬하게 쫓는 북한 장교 현상 역의 구교환과 함께한 소감이 궁금하다.
“저는 구교환 배우님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전, ‘꿈의 제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알게 됐어요. 또 영화 ‘파수꾼’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님의 작품 중 ‘아이들’이라는 단편영화가 있는데, 그 작품에도 구교환 배우가 나오거든요. 또, 이분이 감독으로 보여주는 매력도 어마어마하거든요. 저는 오래전부터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과 흠모를 하고 있었죠.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어진 대본과 다른 사심을 표현했는데, 그것이 당황스러울 수 있는데 기쁘게 제가 날린 하트를 하트로 받아주셔서 기뻤어요. 그리고 제작사에 ‘탈주’ 시나리오를 보내드리자고 했고요. 촬영하면서 ‘이 사람의 매력 끝이 어딜까’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현상(구교환)이 물티슈로 비둘기가 나올 것 같은 제스쳐를 보여주잖아요. 이를 통해 현상과 규남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유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선적으로는 ‘특이한 사람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전사를 생각할 때 여러 상상이 가능한 거죠. 그걸 짧은 한 컷에 보여준 탁월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냉혈한 같은 면모도 있고요. 온도 차가 큰 인물이라 더 매력적이고, 이 캐릭터는 구교환 배우님 외에는 다른 인물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모범택시3’, ‘시그널2’ 등 기대작으로 대중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부담감이 느껴질 것도 같다.
“매우 있죠. 신인 때는 ‘연기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저를 많이 알아봐 주시고, 타이틀롤로 작품에 임하고, 그 결과물과 평가에 대한 이야기들에 신경 쓰게 돼요. 좋지 못하게 보신 분들이 있으면 속상하고요. 그런 부분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만 하면 제 꿈을 펼칠 수 없으니까요. 저는 계속 사랑받으며 일하고 싶은데, 그게 보장된 삶이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계속 도전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모든 피드백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고 매우 귀담아듣고 있어요. 더 나아지고,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사실 ‘배우 이제훈’으로서도 극한의 상황까지 자신을 몰아치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사람 이제훈’으로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느낌이다. 대중에게 보내는 하트 포즈부터 팬 미팅 때 보여준 완벽한 댄스 무대까지 매 순간의 ‘최선’이 느껴진다.
“이 일을 하면서 저에게 관심을 갖고 애정을 주시는 팬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은 매 작품 응원해 주시고, 보러와 주시는데요. 무대 인사 외에는 가까이 뵐 기회가 많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팬 미팅 때 시간 내주셔서 저를 찾아와주신 분들께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데, 제가 특별함이 없어서 무리를 해서 춤과 노래를 연습해서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웃음) 사실 보시는 분들은 그것마저도 ‘실수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보실 거예요. 그래도 팬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준비해요. 자려고 누웠다가 ‘이게 맞았나?’ 생각하며 다시 침대에서 내려와서 혼자 춰보고 다시 누워 잠들고 이래요. (웃음) 제가 태양(빅뱅)과 정국(방탄소년단)이라는 솔로 아티스트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됐는데요. 정말 K팝 아이돌은 위대합니다. 아무나 할 수 없어요. 선택받은 자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Q. 늘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대중에게 깊은 신뢰 쌓아가고 있다. 혹시 보여주고 싶은 캐릭터가 있을까.
“제가 그래도 안 해본 것들이 꽤 많아요. 직업적으로 의사 가운도 안 입어봤고요. 그래서 메디컬 드라마나, 법조계 드라마도 생각해 봤습니다. 안 해본 장르도 많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을 원하는 것 같아요. 지금 촬영 중인 작품에도 사랑 이야기가 전혀 없고요. ‘시그널2’에는 있으려나. 하지만 저는 너무 원해요. (웃음)”
Q. 어떤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본인의 사랑도 꿈꾸고 있는 건가.
“제가 영화 ‘건축학 개론’을 통해 20대의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래서 지금 제 나이에 맞는 사람들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가져와서 작품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김은숙 작가님, 박지은 작가님, 그리고 박해영 작가님도 너무 좋아합니다.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쓰시는 작가님들의 작품에 배우로 녹아들고 싶어요. 저도 정신없이 삶을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이 나이가 됐는데요. 언젠가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할 고민을 하거든요. 기회가 갈수록 줄어드니까요. 집에서는 걱정하시는데, 힘드네요.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운명 같은 사랑이 나타난다면 바로 프러포즈하고 싶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