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 이후 배우 ‘안소희’로 보낸 10여 년…"정말 간절히" [인터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너무 소중한 시간으로 남아있어요. 육체적으로는 지금과 비교가 안 되게 힘들긴 했지만 ‘지금이 더 좋아요’라고 말하기엔 그 시간에 미안해요. 그게 없으면 지금 제가 없을 걸 알기에.”
안소희가 과거 원더걸스 멤버였던 소희를 향한 속내를 툭 꺼내놨다. 늘 궁금했던,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나”라는 말이 나오면, 아직도 시그니처 같은 안소희의 얼굴이 떠오른다. 안소희는 그룹 원더걸스의 막내로 데뷔했고, 지난 2015년 그룹에서 탈퇴한 후 배우로 전향했다. 그리고 10여 년을 배우로 걸어왔다. 그 길 위에는 영화 ‘부산행’으로 얻게 된 ‘천만 배우’ 타이틀도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늘 불안했다. 스스로도 ‘배우’라고 자신을 부르는 것을 망설이는 듯 보였다. 그런데 영화 ‘대치동 스캔들’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안소희는 달라졌다. 자신의 속내를 자연스럽게 꺼냈고, 그 과정에서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영화 ‘대치동 스캔들’은 안소희가 처음으로 가장 앞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촬영 스케줄표에 안소희로 시작해서 안소희로 끝나는” 그런 영화다. 다수의 작품에 임했지만, 주연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경험은 처음이다. 그렇기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그가 맡은 윤임은 대치동 학원에서 국어 강사를 하고 있지만, 도통 속내를 알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래서 주변 학부모들의 시선을 받으며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대치동에 위치한 중학교의 국어 선생님이자 전 남자 친구였던 기행(박상남)을 통해 꾹꾹 덮어놨던 과거를 열어보게 된다. 어쩌면, 윤임은 ‘안소희’ 여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Q. 안소희라는 이름이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첫 영화다. 남다른 책임감이 있을 것 같다.
“어떤 역을 하든지 책임감을 느끼고 하지만, 확실히 책임감의 무게가 더 크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당연히 드라마, 영화 촬영 때도 제가 하는 장면 앞뒤로 현장에 있으려고 하는데요. ‘대치동 스캔들’ 때는 촬영 스케줄표에 시작부터 끝까지 ‘윤임’이었어요. 현장에 임하다 보니, 스태프들과 마주치며 더 크고 깊게 바라볼 수밖에 없더라고요. 스태프들도 제가 부족하지만, 더 챙기려고 했고, 그런 마음이다 보니 더 여러 가지를 보게 됐고요. 그런 면에서 저에게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었고, 현장이었어요.”
Q. “촬영 앞뒤로 현장에 있으려고 한다”라고 이야기했는데, 혹시 이유가 있을까.
“현장에 미리 도착하면, 제가 미리 준비할 수 있고, 현장이 더 편해지더라고요. 지금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또, 요즘 드라마 한 작품을 촬영하면 보통 6~9개월 정도 작업 기간이 걸리거든요. 같이 오래 있다 보니, 작은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분들이 어떤 걸 하는지 봐야지 작은 말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또 제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서툴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배님들께서 스태프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곁에서 지켜보며 많이 배웠어요. 그렇게 배운 걸 ‘대치동 스캔들’에서 많이 써먹은 것 같아요. (웃음)”
Q. ‘대치동 스캔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학원 강사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안소희’의 모습 때문이었다. 강단 앞에서 발성까지 달리한 느낌이다.
“제가 실제로 대치동에 있는 학원은 가보지 못했지만, 제 제일 친한 친구가 영어 강사예요. 친한 친구도 여러 결이 있는데 그 친구는 일하면서도 정말 자주 만나는 친한 친구거든요. 그 친구가 한성대 입구 쪽 대형 학원에 있는데요. 그 친구에게 학원 강사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대치동 스캔들’ 시나리오를 받을 때 낯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자료 조사를 위해 유튜브를 통해 1등 유명 강사님 영상을 많이 봤어요. 계속 보다 보니, 강사님들의 기본적인 톤이 있더라고요. 학원 강사님들은 중요한 걸 알려주기 위해 이야기하는 분들이잖아요. 그 생각을 중심에 두니, 자연스럽게 톤이 맞혔어요. ‘이 음역으로 해봐야겠다’라는 생각보다 ‘얘들이 내 말을 이해하고 있나?’, ‘지금 이해하겠어?’라고 이야기하려고 한 거죠. 주말에 학원 쉬는 날, 연습도 많이 했어요. 친구 앞에서 해보기도 하고, 친구한테 제 앞에서 해달라고도 했고요. 그 학원도 규모가 큰 편이라 다양한 강의실에서 연습해 볼 수 있었어요. 교무실에 가서 제 친구 자리를 보며 세팅도 살펴보고요. (웃음)”
Q. ‘대치동 스캔들’은 대치동 학원 국어 강사인 윤임(안소희)과 국어 선생님인 기행(박상남)의 만남이 학부모 사이에 ‘스캔들’로 퍼지며 시작되는 영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치동에 ‘유명해지기 위해’ 들어온 윤임을 만든 그의 과거를 조심히 열어보는 영화이기도 하다. 감정 표현에 고민이 컸을 것 같다.
“윤임이의 20대는 확실히 밝게 보였죠. 그리고 친구에게 보낸 상처가 가장 컸을 거고요. 전 그 친구들이 윤임이가 10대부터 20대까지 만난 사람 중 감정적으로 제대로 느낀 ‘첫 번째 친구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소중했고, 그래서 그 상처가 트라우마가 된 거죠. 그리고 그 후에도 또 크고 작은 경험들이 있었겠죠. 윤임이 현재 있는 곳이 대치동이라는 치열한 곳이잖아요. 꼭 그렇게 치열한 곳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사회에서 다양한 일을 겪으며 자기만의 갑옷을 장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종류도 많아지고, 두께도 두꺼워지고요.”
Q.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 나은(조은유)는 윤임에게 이런 글을 남긴다. ‘나는 가끔 궁금해졌다. 너에게도 간절한 바람 따위가 있었을까?’ 그래서 안소희에게도 그런 간절한 바람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처음 JYP엔터테인먼트로 오디션을 보러 갈 때, 춤, 노래, 그리고 연기까지 준비해 갔었어요. 그때는 ‘가수가 될래’, ‘배우가 될래’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바람이 컸거든요. 뭐든 다 하고 싶었어요. 그걸 회사에서도 알고 있었기에, 연습생인 저에게 연기 개인지도도 시켜주셨어요. 아마 데뷔하고 한 달 후쯤 같은데요.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2008) 오디션을 회사에서 먼저 제안해 주셨어요. 그리고 운 좋게 오디션에서 합격해서 영화 촬영에 임하게 됐는데요. 그때 느꼈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처음 연극 무대에 섰을 때 느낌이랑 비슷했던 것 같아요. ‘현장 너무 좋네, 재밌네, 나 연기하고 싶다, 제대로’라고 그때부터 생각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팀 활동이 우선이었고, 미국에도 가면서 시간이 필요했죠. 회사에 중간중간 ‘연기 제대로 하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리긴 했는데요. 시간적으로 어렵고 안 되더라고요. 간절했죠.”
Q. 외부로부터 시선을 받는 윤임에게 감정적으로 가까이 다가선 지점도 있었을 것 같다.
“직업이나 상황들은 너무 다르지만, 제 경험으로 윤임을 이해했어요. ‘정말 나 간절한데, 무대 열심히 준비했고, 연기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라고 생각하지만, 밖에서 저를 그렇게 봐주지 않을 때도 있었고요. 작게는 친구 관계 속에서도 저는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대하는데, ‘너 차갑다, 정 없다’라고 이야기하던 친구도 있었고요. 그런 경험을 윤임의 마음으로 이해했어요. ‘그때 어떤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을까?’ 생각하며 연기에 사용해 보기도 했어요. 제가 왜 시크하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뚱해 보인다고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런 걸 생각해 보면서 제 표정을 바라봤어요. 제가 저를 참고하며 만들어갔네요. (웃음)”
Q. 연기에 대한 간절함으로 걸어온 10여 년의 시간이었다. 이제 배우 안소희의 필모그래피도 쌓였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배우 10년의 세월은 어땠나. 원더걸스 시절 데뷔와 동시에 큰 사랑을 받았기에, 다른 속도감에서 오는 고민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속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요. 저도 그 부분을 많이 느꼈어요. 가수 생활할 때는 성과가 나는 것도 빠르고, 바로 보였거든요. 정말 감사하게도 이른 시간 안에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이죠. 배우로 전향한 후에는 달랐어요. 그런 부분이 많이 고민이 되기도 했어요. 솔직히 조급했던 적도 있고요. 이전에 받아본 적 없는 평가를 받기도 했어요. 불안하기도 했고, 작아지기도 했어요. 그 과정들을 지나온 지금은 ‘천천히’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잘 걸어왔구나’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성장했다고 생각했고요. 또 ‘성장하려고 애쓰고 있구나’라고 저 자신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Q. 그런 고민에서인지 연극 ‘클로저’ 무대에도 오르고 있다. 혹시 뮤지컬에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까.
“(연극은) 너무 재미있어요. 정말 정말 요. 당연히 쉽지 않았어요. 공연마다 달라요. 또 다른 어려움들이 늘 생겨요. 그런데도 너무 재미있어요. 제가 첫 공연, 첫 장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생각했어요. ‘너무 재미있는데? 이렇게까지 재밌어도 되나?’라고요. 배우로 처음 무대에 올라서 지금은 연극을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그런데 무대 경험을 쌓다 보면 언젠가 뮤지컬 욕심도 생길 수 있겠죠?”
Q.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지금 바로 말씀드릴 수 있는 차기작은 없는데요. 모두 열어두고 보고 있어요. 연극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고 싶어요. 차기작은 연극이 될 수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양하게 열어두고 보고 있습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