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원더랜드' 박보검의 바람 "감수성과 공감 능력 잃지 않길"
"AI 박보검을 만든다면요? 저는 감수성과 공감 능력은 잃고 싶지 않아요. 감정을 교류하면서 일을 하는데, 그 감정을 잃으면 어떡하지 싶더라고요. 책을 읽고, 자연물과 사람을 보며 느낀 사소한 감정들이 연기할 때 도움이 돼요. 그런 마음을 배우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살아갈 때도 잃지 않고 싶고, 상대방을 더 헤아리고 싶어요."
선한 이미지에 성실한 성품, 긍정 에너지까지. 박보검을 보면 '1가구 1박보검'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박보검의 눈빛 속에는 타인을 향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감수성이 깃들어 있다.
영화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극 중 박보검은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후 다시 마주하게 된 모든 것이 낯설고 혼란스러운 남자 '태주'로 분했다.
'원더랜드'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4년 전 촬영에 돌입했다. 촬영 때는 20대, 이제 박보검은 30대가 됐다. 비로소 작품을 선보이게 된 소감을 묻자, 박보검은 해사한 미소로 운을 뗐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작품인데 마침내 보여드리게 돼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 작품에 참여했을 때는 그리운 사람을 AI로 복원해서 만나는 이야기라 언젠가는 그런 시간이 오겠지 하는 설레는 시간으로 작품을 촬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민과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요.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원더랜드'는 어쩌면 곧 일어날 근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AI 서비스가 생활에 스며들고 있는 현대라면 충분히 생각해 봄직한 소재다. 죽거나 죽음을 앞둔 사람을 데이터화해 AI로 만든다는 설정, 사랑하는 이를 잃어본 사람이라면 꿈꿀만한 이야기다. 박보검 역시 작품의 소재에 끌렸다고 말했다.
"그리운 사람을 영상통화로 만난다는 소재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 슬픔을 기술로 이겨낼 수 있을까, 그 슬픔을 조금 미뤄낼 수 있을까, 저 또한 고민했거든요. 작품에 참여했을 때 이 이야기가 던지는 메시지의 힘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원더랜드'를 보면 '나도 이 서비스를 이용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박보검의 대답은 촬영 전후로 바뀌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마음에 감동이 있었고 그래서 정말 하고 싶었어요. '나라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할까? 하지만 온기를 느낄 수는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정말 신청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신청하고 싶어도 꾹 참을 것 같아요.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기술이 다 채워지기에는... 마음이 힘들 것 같아요."
박보검은 이상적인 공감남 AI 태주, 인지장애를 겪는 현실 태주를 오가며 입체적 모습을 소화했다. AI 태주는 언제나 정인(수지)만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배려한다. 인자하고 사랑스럽고 넓은 마음을 가진 이상적인 남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AI 태주는 실제 태주와 괴리가 있다. 엄연히 AI 태주는 정인이가 바라는 모습대로 만들어진 가상인물이다. 박보검은 현실 속 태주와 가상현실 속 태주 사이, 차별점을 두는 일에 집중했다.
"AI 태주는 (정인이의) 행복한 순간으로 기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현된 인물이에요. 그래서 정인이와 있을 때는 활동적이고 활발하고, 이상적인 인물이겠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감독님께서 현실로 돌아온 태주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으면 좋겠다고 하신 기억이 나요. 정인이가 느끼기에도 (AI 태주와) 깨어난 태주 사이에 괴리감이 있을 테고요. 내가 누구일까. AI 태주가 나인지 그런 혼란스러움과 내 존재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한 인물로 그리려고 했죠."
정인 역의 수지와는 완벽한 비주얼과 연기 호흡을 선보였다. 특히 영화 개봉 전부터 SNS에 수지와의 투샷을 게재하며 연인 호흡을 자랑한 박보검은 "이렇게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이었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수지 씨와 정말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촬영했어요. 시나리오에서 그려지지 않았던 관계들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도 많이 했죠. 그래서 '우리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 태주가 정인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사진으로 담아두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수지 씨도 오케이를 해주셔서 사진을 많이 찍었죠."
"수지 씨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해요. 수지 씨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가 있잖아요. 어떻게 그 분위기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신기했고, 시간이 지나도 똑같더라고요. 변치 않았다라기보다는 '이 배우가 가진 힘'이라는 걸 느꼈고, 같이 연기하면서 놀라기도 했어요. 글로 읽었던 정인이 그 이상을 표현해 주시는 걸 보고 수지 씨도 이 작품을 사랑하고 있구나 느꼈어요. 참 복된 배우를 만났고, 복된 현장이 된 것 같아요."
박보검은 '원더랜드'를 찍고 군 복무에 돌입했다. 해군 문화홍보병으로 복무를 마친 그는 군에서 변화를 겪었다. 변화는 또 다른 동력이 됐다.
"저는 다 열려있어요. 군대 다녀온 이후로 하고 싶은 장르와 작품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이전에는 아무래도 만나는 사람들에 한계가 있었거든요. 군대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성향도 있구나'라는 걸 판단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점점 나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되면서 장르와 작품을 보는 폭이 넓어졌어요."
"군대 가기 전에는 저보다 상대방의 마음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상대가 편하면 나도 편하고요. 그런데 군대에서 계급이 올라갈 때마다 '나는 후임들을 챙겨주는데 나는 누가 챙겨주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동기들이 있어서 저를 잘 챙겨줬어요.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충전하는 시간을 가졌고, 덕분에 군대 다녀와서 뮤지컬도 처음 해보고,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정말 많아졌어요."
최근 드라마 '굿보이' 촬영에 한창인 박보검은 "소원을 풀었다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액션을 해보게 됐다"라며 새로운 모습에 기대감을 전했다. 전역 후 욕심이 많아진 만큼,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도 궁금했다.
"배우로서 항상 생각한 건,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입장 바꿔 생각했을 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 밝은 기운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힘을 받잖아요. 결국 제가 되고 싶은 건 내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인 거죠. 그 마음을 변치 않으려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어요."
한편, 박보검은 드라마 '굿보이'에 앞서 오는 21일 JTBC 새 예능 프로그램 'My name is 가브리엘'으로 대중을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