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니안 정글의 핫 페퍼, 한국인 맵부심을 자극하다
‘맵부심’(매운 맛을 잘 먹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매운 음식을 즐기는 이가 많아지며, 매운맛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이제 무작정 매운 음식보다는 좀 더 맛있게 매운맛을 찾는 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깔끔한 매운맛의 ‘청양고추’, 극강의 매운맛을 내는 ‘하바네로’, 맛보다 향이 훨씬 매운 ‘할라피뇨’ 등 고추 품종에 따른 매운맛을 구분하는 것은 물론, 특색있는 매운맛을 찾기 위해 해외 식재료에 눈을 돌리는 이도 많아졌다.
사이판에서 8km 떨어진 티니안에는 이러한 맵부심을 충족시킬 색다른 음식이 있다. 바로 티니안의 열대 정글에서 자생하는 작은 고추 ‘도니살리(Doni Sali)’다. 티니안의 특산물인 도니살리는 티니안을 포함한 마리아나의 식문화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다.
현재 티니안에서 생산되는 도니살리는 살리(Sali)라는 검은 새가 열매를 쪼아먹은 후 티니안 정글 곳곳에 배설한 씨에서 난 자연산으로, 사람이 정글 구석구석을 다니며 일일이 채취해야 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격전지였던 티니안 정글에는 오래된 포탄 등의 전쟁 잔해물이 남아있어 도니살리를 채취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에 티니안의 도니살리 총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고, 가격도 1파운드(약 0.454kg)에 25달러 정도로 높은 편이다.
도니살리는 아주 조금만 사용해도 음식에 강렬한 매운맛을 더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가벼운 듯하지만, 곧 혀끝부터 폭발한 강렬한 매운맛은 오랫동안 입안 전체를 점령한다. 이에 혹자는 도니살리를 세계 3대 매운 고추로 꼽기도 하는데, 양이 많지 않아서인지 도니살리의 코스빌 지수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 없다.
티니안과 마리아나 제도의 요리는 토종 재료인 도니살리를 사용함으로써 독특한 맛과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도니살리로 만든 핫 페퍼 소스는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음식이다. 사이판, 티니안, 로타에서는 집집마다 고유의 도니살리 핫 페퍼 소스 레시피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티니안에서 대를 이어 도니살리를 가공하고 있는 카브레라(Cabrera) 가족은 도니살리 핫 페퍼 소스 만들기를 즉석에서 시연해 보였다.
뜨거운 물에 넣어 살균하는 과정을 거친 도니살리는 마늘을 넣고 곱게 간 후 식초, 레몬 파우더, 소금을 더해 가열하는 것만으로 금세 완성됐다.
갓 만들어진 도니살리 핫 페퍼 소스는 햇고추장처럼 풋풋한 매력이 가득했다. 고추장보다 매운맛은 강했지만, 상큼한 감칠맛에 자꾸 입맛을 당겼다. 소스가 숙성되면 갓 갈아낸 고추의 풋풋한 맛 대신 감칠맛이 좀 더 깊어진다. 이에 도니살리 핫 페퍼 소스는 바비큐, 파스타 등 다양한 요리에 감초처럼 사용된다.
도니살리 핫 페퍼 소스의 권장 소비기한은 개봉 전 6개월, 개봉 후 1개월 정도로 짧은 편이라 카브레라 가족은 티니안 최초로 도니살리 고춧가루를 만드는 등 다양한 가공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티니안에서는 매월 2월 도니살리를 주제로 한 ‘티니안 핫 페퍼 페스티벌(Tinian Hot Pepper Festival)’이 개최된다. 북마리아나제도에서 가장 큰 축제인 페스티벌 기간에는 정글에서 함께 도니살리를 수확하며, 도니살리 많이 먹기 대회를 비롯해 차모로족의 전통 음식과 전통 공연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기는 시간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