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인의 약 50%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는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위선암, 위림프종 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위암 발생률이 높은 국가에서는 감염률이 더욱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많은 이가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되면, 위암 발생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제균 치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헬리코박터균 감염자의 대부분은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며, 제균 치료 시행으로 인한 항생제 내성 문제가 있어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를 일률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중앙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김범진 교수는 “헬리코박터균 감염은 위암 발생과 관계가 있어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에 관한 명확한 연구는 부족한 상황으로 제균 치료의 필요성에 논란이 있어 왔다”며,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항생제들에 대한 내성은 치료 실패의 중요한 이유가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내성률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제균 치료의 핵심 약제들에 대한 항생제 내성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의 부작용으로는 설사, 무른 변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구역감이나 복통 등의 증상도 나타나기도 한다. 이외에 쓴맛, 금속 맛 등의 미각 이상, 발진이나 두드러기 등의 피부 과민반응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중앙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김범진 교수가 위내시경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중앙대학교병원

우리나라 헬리코박터 진료 지침에서는 소화성 궤양의 병력, 림프종, 조기 위암의 내시경 절제술 후에는 반드시 제균 치료가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실제 위축성 위염 환자, 위암의 가족력이 있는 환자, 일부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는 제균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최근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으며, 위암으로 인한 사망도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국내 한 대학병원이 대한소화기학회지에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헬리코박터 양성인 건강한 사람과 위 신생물로 내시경 절제술을 시행한 헬리코박터 양성 환자를 대상으로 약 2년 이상 조사한 결과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 위험을 약 50%가량 유의하게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미국 카이저 퍼머넌트 노선 캘리포니아(Kaiser Permanente Northern California) 단 리(Dan Li) 박사 연구팀이 1997~2015년 사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검사 또는 치료를 받은 71만 6,567명을 대상으로 2018년 12월 31일까지 추적 관찰한 결과, 일반인과 비교해 제균 치료 10년 후에는 위선암 발생 위험이 49%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발표된 국내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이용한 빅데이터 연구에서도 위 선종으로 내시경 점막하박리술 후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를 한 경우 평균 5.6년의 추적 관찰 기간 이시성 위암 발생 위험이 1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헬리코박터균이 위암이나 위장질환뿐만 아니라 심혈관계질환, 당뇨병, 퇴행성 신경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김 교수는 “최근의 여러 연구에서 헬리코박터균과 허혈성 심질환의 연관성에 대해 보고되고 있는데, 균에 의해 촉발된 만성적 감염이 혈관 벽 손상 및 죽상판(atheromatous plaque) 발생에 영향을 미쳐 죽상경화증 초기 단계에 작용하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약 6만 명의 건강검진 수검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여러 종류의 지질 수치 분석을 통해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심혈관계 위험 요인과 연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급성 관상동맥증후군의 발생 위험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당 조절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인슐린 저항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와 제균 치료 후 당뇨 환자의 미세알부민뇨가 호전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 여부에 대한 다양한 찬반 주장이 있지만, 무증상 보균자 전체에 대해 제균 치료를 시행함으로써 위암 발생률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의 과학적 근거가 높아지고 있다”며, “헬리코박터균 검사를 통한 환자의 병력, 가족력 등을 고려해 전문의 판단에 따라 환자 개인의 경우에 맞게 제균 치료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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