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최민식이 갖는 태도에 대하여 [인터뷰 종합]
"얼마 전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왔다. 그분들도 그렇게 하시는데. 연기 인생 35년이라는 건, 누군가 세주셔서 안다. 그걸 제가 세면 안 된다. 그건 자꾸 뒤로 주저 앉으려는 거다. 아직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작업도 많다. 노인을 흉내 내고 싶지 않다."
지난 22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최민식이 말했다. 드라마 '서울의 달', 시리즈 '카지노', 영화 '올드보이', '범죄와의 전쟁', '명량', '악마를 보았다', 그리고 22일 개봉한 '파묘'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배우 최민식은 한 번도 같은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 행보는 '파묘'에서도 이어진다. 그가 맡은 풍수사 상덕은 그의 표현처럼 "누가 보면 배 나온 아저씨"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땅의 맛을 보고 악지와 길지임을 구별한다. "약 40년 동안 땅을 파먹고 살아온 인물"의 상덕의 세월을 최민식은 고스란히 지고 간다.
"40년 세월을 어떻게 메꾸겠냐. 책을 본다고 그게 만들어질 리 만무하지 않냐. 그래도 그거 하나는 표현하고 싶었다. 이 사람은 평생을 자연을 보며 살아왔다는 것. 자연을 바라보며 어디가 흉지이고, 길지인지를 구별했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터의 모양새, 형태, 질감 등으로 평생을 연구한 사람이다. 그래서 등산할 때도 일반 사람들처럼 올라가서 '야호'하고 내려오듯 바라보지 않았다. 뭔가를 깊이 바라보겠다고 생각했다. 흙냄새, 흙의 맛, 그리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바라봐도 깊이 바라보는 태도를 담고 싶었다. 이게 '상덕'의 가장 큰 줄기가 아닐까 싶다. 그거 하나 작품에 담으려고 했다."
최민식은 '파묘'를 선택한 이유로 "장재현 감독"을 언급한 바 있다. 심지어 "영화의 기획 단계부터 장재현 감독의 조감독처럼 생각하고 임했다"라는 말로 누구보다 깊은 신뢰감을 표현했다. 최민식은 장재현 감독을 이야기하며 한 예로 '깜짝 놀란 게, 할머니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펑펑 울더라. '왜 울어?'라고 물어보니, 돌아가신 자기 할머니 생각이 난다고 하더라. 그게 예쁘지 않냐. 요즘 그런 인간이 어딨냐. 마흔도 넘은 사람이 펑펑 울더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장 감독이 예전에 술자리에서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파묘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뽑아내고, 약 발라주고 싶다고. 그 말이 마음에 왔다. 전작에서도 신에게 질문하는 이야기를 화두로 던졌고, 그 지점이 불편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본인도 기독교이고, 불교나 다른 종교로 확장하는 것에 열려있는 친구다. 관념적인 이야기를 잘 만드는 건 '실력'인 것 같다."
"어찌 보면 무속이라는 것은 제가 어릴 때부터 늘 옆에 있었던 거다. 사실 제가 어릴 때 폐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병원에서도 손을 놓은 상황이라 어머니가 절에 가서 기도했다. 의사는 포기했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으셨다. 그런데 희한하게 나았다. 그런 신비로운 경험이 저에게도 있다. 신에 대한 감사보다, 저는 어머니의 정성이라고 느낀다. 살면서 논리적,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 있지 않냐. 미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재산을 날리는 상황이 아니라면 좋다는데 안 할 이유도 없지 않냐. 제가 군대에 갔을 때 우리 외할머니는 매일 정화수 떠 놓고 기도하셨다. 그 마음이 종교 같다. 그런 정서 속에서 살고 자라서 그런지, '파묘' 속 풍수나 굿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최민식은 상덕 역을 맡아 삽질부터 험한 것과 마주하는 장면까지 '힘'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촬영 중에 갈비뼈에 금이 가는 상황까지 있었다. 최민식은 "그게 뭐 별거냐. 크고 작은 부상은 누구에게나 있다"라고 쿨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어 "아무리 조심하고, 안전장치가 되어있어도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제가 오버하다 다친 거다. 첫 촬영에서 너무 심하게 뒤로 넘어져서 실금이 갔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묘벤져스(파묘+어벤져스 합성어)'라고 불릴 정도로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 넷의 케미는 훌륭했다. '파묘' 속 음양오행의 조화가 이들에게도 딱 맞는 말이었다. 무속인이 음양이라면, 풍수사와 장의사는 오행이었다. 최민식 역시 넷의 활약상과 '묘벤져스'라는 말에 뿌듯한 내색을 보였다.
"사실 풍수사와 장의사는 한 팀이다. 오랜 세월 같이 일 한 사이다. 그런데 화림이랑 봉길이는 MZ다. 신발도 좋은 걸로 신고 다닌다. 이들은 서로 비즈니스 파트너다. 영화 속에서도 바로 '몇 %로 나눌지'를 이야기하지 않나. 그렇게 협업하는 느낌이 보여야 했다. 유해진은 워낙 작품에서도 많이 보고 했지만, (김)고은이, (이)도현이는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다. 전혀 아니었다. 둘 다 넉살 좋고, 술 좋아하고. 옛날부터 작업을 많이 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묘벤져스'를 표현하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다는 믿음이 갔다."
'파묘'는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있다. 전반부에 '파묘'를 의뢰하는 부자 박씨 집안의 이야기가 문을 연다면, 후반부에는 그 묫자리에 더 깊이 담겨있는 험한 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를 쭉 이끌고 나가는 것이 '묘벤져스' 네 사람이다. 최민식은 그 원동력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처음에 상덕은 알고 있지 않냐. 누구보다 묫자리 하나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화림(김고은)이가 '애가 아프다잖아요'라고 한다. 그래서 상덕이가 '파묘'를 결정하고, 본능적으로 절대 묘가 들어설 터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 묘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보국사도 가보고, 나름의 조사를 하게 된다. 상덕이 말하지 않냐. '내 손주가 밟고 살아갈 땅'이라고. '거기에 흉한 걸 꽂아놓고 방치하는 건 양심상 못하겠다, 돈 안 되는 일이지만, 우리가 뽑아보자'라고 생각한 것 같다."
최민식은 앞서 '파묘'에 대해 "인간, 자연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한 영화"라고 소개한 바 있다. '내 손주가 밟고 살아갈 땅'이라는 상덕의 말은 그 소개와 연결된다.
"바라보는 시각이다. 단순히 귀신, 공포영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장재현 감독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재미있게만 만드는 게 아니라, 땅에 대한 생각, 정령, 혼령, 신, 그리고 인간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잇는지에 대해 고찰하고 영화화한 거다. 그 태도가 너무 좋았고 신선했다. 단순히 머리 풀어 헤치고 나오는 말초신경을 자극해서 무서움을 주는 자극적인 영화가 아닌, 뭔가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는 점이 좋았다."
영화 '파묘'의 개봉을 앞두고, 최민식은 12년 만에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 그는 자신의 연기 인생 35년을 이야기할 때 유독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엔 이유가 있었다. 최민식은 "내가 '왕년에'라는 건 창작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아니다. 예술가로 존경받는 분들은 그런 게 없다. 늘 '청년'이다. 몸이 말을 안 들을 때까지 미친 듯이 작업한다"라고 여전히 자신을 '청년'으로 칭했다.
"아직 못해본 게 너무 많다. 여태까지 한 작품은 빙산의 일각도 안 된다. 일단 멜로도 못 해봤지 않냐. ('파이란'을 언급하자) 얼굴도 못 봤다. 그게 무슨 멜로냐. 다시는 그런 연애는 안 한다. 얼굴도 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게 멜로지.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다. 사랑에 대한 정의도 고민해 보고 싶다. 이성 간의 사랑만이 아닌, 누군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도 궁금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공감하고 교감하는 그 냄새와 모양새를 어떻게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다 다를 거다. 너무 궁금한 것도 많고, 표현하고 싶은 것도 많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최민식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 답을 듣고 싶어진 이유다.
"제 삶은 하자투성이다. 실수도 많이 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저라고 왜 구멍이 없겠냐. 어릴 때부터 이 작업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 그런데 다행히 저에게 좋은 영향을 준 분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저는 '복 받은 놈'이다. 참 좋은 분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여태 엇나가지 않고, 오늘날까지 한길만 걸을 수 있게 됐다. 영화는 혼자 그림 그리고, 글 쓰고, 마음에 안 들면 찢어버릴 수 있는 작업이 아니지 않냐. 여러 사람이 협업해서, 골치 아프고, 괴롭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믿고 나아가는 거다. 그리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면 안 되지 않냐. 내 것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같이 나아가는 건 어쩌면 '부처님'이나 할 수 있는 일 같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제가 많이 공부하고, 배우는 것 같다."
수많은 매체가 참석한 공간에서 최민식은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는 상덕이 보였고, 차무식도(카지노), 천만덕(대호), 이순신(명량) 등이 스쳐 지나갔다. 이들 모두가 최민식에게 담겨있다. 그런 그는 여전히 자신을 '청년'이라고 칭하니, 우리는 얼마나 복 받은 관객인가. 인터뷰 말미, 스쳐 지나간 생각이다.